1969년생으로 스위스에서 태어나 영국에서 활동하는 철학자이자 현대 문학가이다.우연히 나 말고 다 안다 할 정도로 유명하다는 그의 글들을 읽었고, 홀린 듯 책들을몇권구입했다.
책장이 네 개가 한 줄로 들어가는 방이 있는 집으로 이사를 한 뒤에야 지난 10년간 다락방에 묵힌 내 책들을 친정에서 가지고 왔다. 책장에 꽂힌 책들 중에서 알랭드보통의 책이 눈에 띄었다. 그의 이름보다 책 제목이내 시선을 오래 잡아둔다. 책 내용도 내용이지만 알랭드보통은 제목을 참 멋들어지게 잘 짓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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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지도 기억이 가물가물한 어느날이었다. 내한한 알랭드보통이 한국의 어느 예능 프로그램에서 인터뷰를 했다. 그는 정해진 시간에만 글을 쓴다 했다(아마도 오전이었던 것 같다).
나름 다작을 하고 워낙 세계적으로 유명한 존재이다 보니 집필에만 하루를 다 쓰지 못하는 그의 사정이 이해가 갔다
하지만하루에 딱 몇 시간으로 정해진 동안에만 집중하여 글을 쓴다는 건 아니 그렇게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이 의외였다.
내 궁금증을 알기라도 하듯 그는 계속된 인터뷰에서 답을 쉬이 내놓았다.
정해진 시간에만 글을 쓰다 보니, 쓰고 싶은 이야기를 집중해서 쓸 수 있다고. 인간이 한계에 다다르면 초월적인 힘을 발휘하듯, 리밋이 걸린 시간 동안 써나가야 할 이야기는 막힘도 거침도 없을 것이리라.
프로까지는 아니더라도 아마추어 N잡러인 나도 지금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이 매우 한정적이다. 애셋육아에살림을 하고일도 하고 얼마 전 시작한 학점은행제 공부까지 하고 있으니 하루가 정말 짧다. 그렇다고그 일들이 글쓰기란 내취미와주객전도되면 안 된다.
그래서 더 목마르고 애가 타는지도 모르겠다. 자는 시간 먹는 시간을 줄이며 이렇게 자투리 시간마다 글자를 뱉어내는 날 보면 마치 알랭 드 보통이 된 것 같은 착각을 하게된다. 뭐 대단한 거 한다고 하면서도.
미리 말하지만 착각은 어디까지나 자유다.
요시모토 바나나
1964년생으로 일본의 소설가이자 진보주의 사상가이다.
나는 일본 문학에 대한 조예가 얕아 일본 소설을 그리 즐기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대학생활을 한 기간인 2000년대는, 비교적 가벼운 일본 문학 읽기가 대세였다. 그때 유명한 몇몇 일본 작가들의 글을 나 역시 필수불가결처럼 읽었다. 그때도 나는 나름 꾸준히 책을 읽는 편이었으니까.
무라카미하루키, 냉정과 열정사이의 에쿠리가오니와 츠지 히토나리, 그리고 요시모토 바나나.
특히 요시모토 바나나의 소설을 읽을 때마다 한 가지 결론으로 귀결되었다. 그녀의 책 내용보다는 그녀의 손에서 만들어진, 가독성 좋으면서도 할 말을 다 담은 짧은 문장이참 부럽다고.
나는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일이다. 이번엔 작정하고 짧게 쓸 거라 마음을 단단히 먹고 써낸 한 문장도 너무 길게 쓰는, 나는야 투머치토커이다.
나도 문장에 군더더기나 미사여구가 필요 없는 요시모토 바나나의 글처럼 간결한 문장을 쓰고싶다.
김진명
1957년생 부산출신의 소설가이자 밀리언셀러이
다.
세상에 단 하나뿐인 나의 최애 작가이다.
그의 글을 오롯이 다이해하기는 힘들던 청소년기 시절부터 나는 정말 정말 그의 글을 좋아했다. 아이를 키우는 동안에도 유일하게 도서관에서 빌려보더라도 반드시 출간작은 다 읽었다 할 수 있는 책이 김진명 작가의 소설이다.
김진명의 글은 이 것이 분명픽션인걸 알고 있는데,리얼로 착각하게 되는 마법이 있다. 그래서 책을 한 번 읽기 시작하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글에 흠뻑빠져든 나를 볼 수 있다. 이게 나한테 있었나 싶을 정도의 몰입과 집중력이 최고로 발휘된다.
그리고 그렇게 신나게 다 읽고 책을 덮으면, 마치 내가 애국자가 된 듯한 울림이 있다. 그 여운으로 단 며칠만이라도나는 대한민국 만만세의 국뽕이 된다.
무엇보다 김진명 작가가 우상인 이유는 그의 필력의 위대함도 있지만, 무명이나 신인시절 없이 데뷔작(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만 해도 약 450만 부나 팔린 엄청난 이력의 소유자이기 때문이다.
나처럼 개천에서 용쓰는 놈 위에 기는 놈, 기는 놈 위에 걷고 뛰는 놈, 그 위에 나는 놈이 있다면 이분은 그냥 날개를 달고 태어난 것 같다.
나도 언젠가는 김진명처럼 탄탄한 글을 써보고 싶다. 그의 필력의 반의 반의 반만이라도 내 노력으로 갖춰질 수 있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