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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딱좋은나 Jul 02. 2023

꿈을 찾아서 2

글쓰기에는 돈이 들지 않아

결혼 후 고향을 떠나와 사는 나처럼

남편 역시 부모 형제를 떠나 살긴 마찬가지다.

코로나까지 기승이니 밖을 나가는 것도 무섭고, 한 솥밥을 먹지 않는 타인을 마주치는 것만도 두렵다.

예상보다 길어진 고립의 시간을 견디는 낙으로 부부가 마주 앉아 저녁 식사시간에 술잔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술은 사람의 입을 열게하는 재주가 있다.


우리는 마주 앉아

과거 이야기를 하며 반성했다.

현재 이야기를 하며 격려했다.

미래 이야기를 하며 꿈꾸었다.


돈을 잃어 미웠다, 돈과 미래까지 다 뺏겼어.

돈이 없어 힘들다, 돈돈 거리면서 살아야 해?

돈을 많이 벌거다, 돈이 많은 것을 해결해 !


우리의 과거 현재 미래가 세속적 이게도 돈 하나에 돈 하나로 다 엮여 다.


나 참.....

생각할수록 낯 부끄럽고 어이가 없었다

기승전결 우리의 머리에 꽉 들어찬 돈 생각에 스스로를 비웃게 됐다.


"돈 얘기 아님 우린 대화가 안 되는구먼."


나의 말에 술을 따라 주던 남편이 화제를 돌리는 질문을 던졌.


"여보는 뭐가 하고 싶어?"


"응?"


의아함으로 되묻게 되는 뜬구름이 아닐 수 없다.

술 먹다가? 돈 얘기 하다가? 이렇게 갑자기 하고 싶은 거?

먹고 싶은 거, 사고 싶은 거, 가고 싶은 곳, 일단 뭘 하려고 하면 돈 들잖아. 돈 없다없다 하다 갑자기 뭘 해?


머릿속 생각들 빤히 드러나는 내 표정이 재밌는지 빙긋 웃고만 있던 남편이 말을 바꾸어 다시 질문했다.


"여보는 어릴 때 꿈이 뭐였어?"


"나? 내 꿈? 갑자기 내 꿈은 왜?"


난 또 뭐라고. 꿈이란 소리에 김이 빠진 나는 시큰둥하게 대답을 하며 채워진 잔을 들어 다시 비워버렸다.


차 오르는 건 이루지 못한 꿈에 대한 갈증이자 갈망이고, 비워버리고 싶은 건 아무것도 시도치 않으면서 심술부리듯 제멋대로 자란 미련이다.


"응. 여보 꿈은 한 번도 못 들은 거 같아서."


"내 꿈은 모르겠고, 그러고 보니 우리 엄마아빠 꿈은 이뤄졌네. 공부방 선생이라도 선생 소리는 듣고 사니까."


"장모님 장인어른이 여보 보고 선생님 하래?"


"그랬었지...."


엄마아빠는 내가 기억하는 내내 나더러 선생님이 돼라 하셨다. 누구보다 제멋대로인 내가 누구보다 바른 본보기로 살 길 바라셨음을 알지만 나는 그 말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던 청개구리의 표본이었다.


이번엔 내가 병을 들고 내 앞의 잔과 남편의 잔을 채웠다.

남편이 재차 물었다.


"그럼 여보는 뭐가 되고 싶었는데?"


누군가는 꿈을 두 번이고 세 번이고도 이루었을 마흔이 훨씬 넘은 나이에도 아직 심해 깊은 곳에 쳐박아 둔 작가란 꿈은 꿈쩍도 않는다.


글을 쓰는 사람. 작가.


여전히 내겐 익숙지 않고 입으로 꺼내기 부끄럽고 멋쩍은 단어, 하지만 맘껏 펼쳐보지도 못하고 접어 넣어버린 나의 오랜 이다.







가만, 내 앞에 앉은 이가 누구인가?


처음 만난 순간부터 나를 있는 그대로 봐주는 세상 유일무이한 사람이다. (내게 기대가 없는 건지 콩깍지도 한번 안 씌고 이날 이때껏 좋은 모습이든 흐트러진 모습이든 그 어떤 모습의 나도 있는 그대로 수용해주고있다.)


"작가."


수치심에 팔려가려는 영혼을 부여잡고 툭 하고 한마디 던졌다.


"작가? 글 쓰는 작가?"


되묻는 그의 말이 비웃음일까 염려하며 쳐다보니 그의 얼굴엔 좀 다른 의미의 미소가 걸려있다.


"어쩐지. 원래 예술하는 사람보다 더 또라이가 글쟁이인데. 네가 좀 그런데는 다 이유가 있었네."


미대 것들은 다 또라이라고 말한 것에 대한 복수인가?  

아니면 창작자로서 가지는 동질감의 표현인가?

알쏭달쏭 하지만 일단 좋은 말은 아닌 것 같으니 술김에 홧김에 핑계로 열폭 좀 해야 할 것 같다.


그 어느 때보다 진지하게 파묻어두었던 보석 조각을 겨우 용기 내 꺼내어 보였는데, 이 무슨 망언인가?


"뭐라 하노? 또라이? 니 미친나?"


조크도 다큐로 받아치는 나를 즐기는 그의 웃음이 잠시 나타났지만 금세 안면을 바꾸었다.


"근데 왜 안 했어, 작가님?"


나의 분노를 가볍게 무시하고 내게 다시 토스된 질문.


"글 쓰는 건 재미는 있는데 남들한테 읽힐 만큼 재능이나 재주는 없는 거 같아서."


"자꾸 써야 늘지. 첨부터 잘 하는 사람이 어딨어. 여보 SNS 글 쓰는 거 보니 잘 더니만. 한번 써 봐. 돈 드는 것도 아닌데."


내 남편은 스스로조차 부끄러워한 나의 꿈을 단 1 %의 비웃음도 없이 인정하고 지지해 주었다.


역시,  남자는 이렇게 결정적인 순간마다 나의 한 끝을 단단히 잡아주는 능력이 있다.

삐뚤빼뚤이어도 좋아, 나도 내 꿈을 빚어나가고 싶어서 용기 내어 본다.


글쓰기에는 돈이 들지 않는다.



그 말 한마디가 귀에 꽂혔다.



"여보가 SNS에 쓴 글이 좀 길어지면 에세이가 되고 수필이 되는 거지."


"에세이가 수필인데."


"이 와중에도 지적질을 하네."


"선생님이잖아."



돈 안 든다는 그 말에 용기 내어 컴퓨터 앞에 앉았고 한글 프로그램을 열었다. 뭐에 대해 쓰지?라고 고민하다 '아! 맞다!' 하고 약속 하나가 떠올랐다.


매일 열 시를 기다리며 열심히 읽고 있는 웹소설도 계속 읽다 보니 식상하다. 맨날 재벌 아니면 비서가 등장인물이고 몸정이 대세이고 주류이다. 정도는 나도 한 편 써낼 수 있을 것 같다.


캐릭터 그림을 잘 그리고 웹툰을 즐겨보는 아이와 이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우스개 소리 처럼 했던 약속이었다.


"내가 나중에 혹시나 웹소설을 쓰게 된다면 너랑 xx이 이름을 주인공 이름으로 쓸 거고 제목은  OOOOO 일 거니까 잘 찾아 ."


정신없이 살면서 잊었던 약속이 남편의 말 한마디로 떠올랐다.


커서만 깜빡이고 있는 흰 바탕을 글자로 채워본다.

시작이 반이라고 아무런 구성도 계획도 없이 키보드를 앞에 두고 자투리 시간마다 조금씩 쓰다 보니 웹소설을 세 편 썼다.


글쓰기를 따로 배운 적도 없고, 늘 말하듯 딱히 재주도 재능도 없는 것 같지만. 그냥 혼자 컴퓨터 앞에 앉아 오롯이 내 생각만으로 페이지를 채우며 보내는 시간이 재미있었다. 작가라는 꿈에 다가가지 못할지라도 자기만족에 하는 행위로써의 글쓰기가 시작되었다.


첫 글은 부족한 여유와 지구력 탓에 조금  안 풀린다 싶자 잽싸게 끝을 내버렸다. 다시 봐도 지금 봐도 급했다 싶은 엔딩.


세 편을 썼더라도 내 글은 매 회 클라이맥스가 들어가는

웹소설의 짧은 호흡과도 거리가 멀고, 휴대전화로도 가독성 좋은 짧은 문장도 아니며, 세밀하게 숨겨진 복선 같은 것도 없으며, 쓰다 보니 결국 식상한 기존의 틀을 벗어나지 못한 그저 그런 졸작이고 잡탕이었다.


 곳 많고 허점투성이에 부끄러움이 가득한 글이지만, 상대도 나처럼 기억도 못할 지도 모를 벼웠던 약속이지만.

적어도 기억하고 있는 난 약속을 지키고 싶었다. 그 약속이 내가 웹소설을 쓰게된 명분이 되어주었으니까. 또 오랫동안 잊고 지냈기에 더 조바심이 났다. 


오로지 그 아이에게 보여줄 생각으로 자유게시가 가능한 웹소설 사이트에 업로드를 했다. 약속했던 제목을 달고 한 편의 웹소설을 올리고 니 용기가 생겨 둘도 셋도 올렸다.ㅡ 누구 말 처럼 돈이 안 드니까 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 세 편 중 한 편의 조회수가 다른 두 편 대비 조금 더 잘 나왔다.(물론 잘 나가는 웹소설과는 비교가 안 되는 성적으로 2만뷰가 조금 넘은 수준이었지만 나는 만족했다)


ㅡ그리고 이 경험을 통해 단번에 1화부터 완결까지 올리는 것보다 연재가 더 큰 효과가 있음을 배웠다.


글을 처음 올릴 때만 해도 조회수나 선호작품지정, 댓글 이런  따윈 상관없다고. 내 글을 아무도 읽어주지도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었다.


나는 그저 누군가와 한 약속을 지킨 것이고, 단지 나는 나의 꿈을 위해 느린 발걸음을 한발짝 뗀 것뿐이다 생각했었다.


그런데 생각지 못한 첫 댓글이 달리자 마음이 정말 180도가 바뀌었다. 그 댓글 하나가 너무나 반가웠고, 내 글을 인정받은 것 같고 마치 커다란 상이라도 받은 것처럼 기뻤다.


글도 결국 작가와 독자의 소통창구이고, 소통의 기본은 공감이었다.  시답잖은 내 생각을, 내 표현을, 내 글을 알아주다니! 마치 엉터리 내 글이 가치 있어진 것 같았다.


댓글 하나에 이렇게 기분이 좋아질 수가 있구나!

이 맛에 글을 쓰는구나! 더 잘 쓰고 싶다!!


한 움큼 자란 내 꿈에 닿아야 할, 반드시 닿고 싶은 작은 목표가 덧붙여졌다.


앞으로도 꾸준히 써야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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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었던, 잃었던 내 꿈을 찾을 수 있게 해 준 사람.

늘 내게 동기부여를 해주며 내가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도록 해주는 남편. 아마 그가 아니었다면 내 꿈은 여전히 암흑 속에 갇혀 있었을 것이다.


장난으로이긴 하지만 처음으로 나를 '작가님'하고 불러준  그에게 정말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다. 


겨우 찾은 내 꿈을 펼치는 것은 내 몫이리라.

내 꿈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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