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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딱좋은나 Jul 13. 2023

나는 이 길이 좋아!

낳은 김에 키웁니다 11

나는 청개구리처럼 엄마가 키우는 대로 크지 않았으면서,

엄마가 된 이후 내 마음대로 아이를 키우려 하는 나를 자주 발견한다.


아파트 단지 내 어린이집으로 등원하는 곧을 길을 두고,

굳이  석가산을 지나고 미루나무 아래를 지나는 돌아가는 길을 택하는 아들.

등원 시간에 맞추기 위해 마음이 급한 건 나일뿐,

아이는 엄마와의 등원길마저 여행길처럼 그저 즐겁기만 하다.


같은 목적지를 향하면서도 이렇게 나의 아이는 나와 다른 생각, 다른 행동을 한다.



한 때 나도 이 길을 좋아했다, 바쁜 아침에 아들이 자꾸 둘러가기 전에는 말이다.




"엄마, 대학은 꼭 가야 해? 나는 대학 안 가고 싶은데."


둘째 예삐가 제법 진지하게 내게 물었다.


"꼭 가야 되는 건  아닌데, 아무래도 가면 직업을 뭘로 할지, 선택의 폭은 넓지."


"나는 요리하는 게 좋으니까 요리사 하려고.

그러니까 엄마, 나 대학 가는데 드는 돈만큼으로 나 가게 차려주면 안 돼?"


와우!!! 겨우 열 살을 넘긴 예삐가 충격적인 발언을 했다.

고슴도치도 제새끼는 예쁘다더니, 이런 말을 할 줄 아는 똑 부러지는 예삐가 참으로 대견하다!

이만하면 내가 정말 딸을 잘 키운 게 아닐까 싶다!


객관화가 된 것이다, 현실적이다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나 아닌 것에는 모두 비판적인 나란 엄마는,


스튜어디스가 되고 싶다는 예삐에게 넌 키가 작아서, 영어를 못해서 안된다

예쁜 얼굴로 연예인은 어떨까 하다가도 머리가 크고 팔다리가 짧아서 안된다

노래 부르기를 좋아하지만 가수를 하기엔 목소리가 성대결절로 고음불가라 안된다

아이들이 이쁘고 좋아서 유치원 선생님을 하고 싶다길래, 지랄 맞은 성격 때문에 안된다


하며 딸의 꿈을 싹이 트기도 전에 개박살 내버리던 사람이었다.


그러면서 내가 생각할 때 예삐에게 딱이다 싶은 직업은 강요를 했더랬다.

디제이소다 영상을 함께 찾아보며 예삐에게 디제잉을 하는 건 어떠냐며 종용같이 물었었다.

예삐는 요즘 아이들처럼 가무 즐기기를 좋아하고,

비록 고음불가로 노래는 못 불러도 차에 타면 듣고 싶은 노래는 잘 선곡한다.

큰아빠도 음악 쪽으로 일을 하고 계시니 믹싱 하는 것도 마음만 먹으면 배울 수 있다.

현실적으로나 적성면에서나 충분히 예삐가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역시나 엄마 말은 반기부터 드는 내 딸 예삐는 그다지 당기지 않는다며 거절했다.


"아.......... 너는 디제이가 딱인데!"


"아, 싫다고오!!!"


"잘 한번 생각해 봐. 디제이 하라는 엄마 흔하지 않다. 엄마 말이라 무조건 싫은 거지?"


"안 당긴다고!!!!!"


"거 엄마 말이라 안 당기는 걸 거야. 마약만 안 하면 이 직업도  적성엔 괜찮아. 잘 생각해 봐."


원래 하라고 등 떠밀면 죽어라 하기 싫고, 절대 절대 하지 말라면 더 하고 싶은 게 인간이다. 이쯤 되면 청개구리 근성이 내 딸에게만 나오는 건 아닌 것 같다.





"엄마 나 요리하는 거 좋아하니까, 요리사 하면 어떨까?"


언니와 수제비를 해 먹느라 주방이 밀가루물로 초토화가 되었다.

예삐가 만들어준 수제비가 맛있다고 첫째가 엄지를 치켜든다.

아빠 닮아 밀가루 애호가인 첫째는 빨간 다시다 국물맛이 마치 예삐의 손맛인 줄 착각하고 있다.


버럭하고 소리를 지르기 전에 일단 숨 고르기를 시작한다.

울음 많은 예삐가 일단 대화를 청해온 것이니, 한번 물러나서 나도 대화를 해야만 한다.


"요리사를 하려면 음식도 맛있게 만들 수 있어야지만, 뒷정리도 잘할 수 있어야 해."


개판이 된 주방을 일 마치고 지친 몸으로 마주하는 건 끔찍한 일이다. 그런데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다.

예삐는 라면을 하나 끓여 먹더라도 떡볶이를 하나 해 먹더라도 온 부엌을 총 동원하는 스타일이다.



"나는 요리하는 게 좋으니까 요리사 하려고."


"그래, 해라 해. 근데 요리사도 자격증 따야 하고, 대학 가면 배우는 거 많아."


예삐가 제시한 꿈 중에 유일하게 내가 안된다가 아니라 ~을 해야 한다 하는 전제조건을 붙인 요리사,

그 덕인지 이제 예삐는 정말 진지하게 요리사의 꿈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뒤 우리 집 냉장고에는 예삐가 운영하는 밀크식당 메뉴판이 붙었다.


"가스비도 내가 내고, 수도세도 내가 내고. 라면도 내가 사두는데!"


"그래서 돈을 쪼금만 받잖아, 이 엄마야! 나도 양심은 있다고."


제 딴엔  원가 생각을 하고 만든 메뉴판이다.


"근데 마사지가 여기 왜 있어. 식당에서 누가 마사지를 해."


"기다리는 동안 마사지받으면 되잖아. 나는 돈 벌어서 좋고!"


"네가 마사지도 하고 그럼 요리는 누가 해?"


"아! 그러네!"


하나만 알지 아직 둘은 모르는 예삐다. 어리니까 이 정도는 귀엽게 봐줄 수 있다.


"예삐야, 우린 다둥이야. 네 대학 등록금은 국가에서 지원해 줄 수도 있다고.  어지간하면 대학은 좀 가면 안 되겠니?"


"내 가게 차릴 건데 대학은 왜? 나는 공부 싫어, 그냥 돈이나 벌래."


세상에서 돈이 가장 좋은 우리 예삐는 오늘도 진짜 밀크식당 오픈 하는 날을 꿈꾸고 있다.

하나의 인생을 두고 나와는 정말 다르게 생각하고 다르게 행동하는 우리 예삐.

엄마도 너의 꿈에 지적질 대신 이제 응원을 해보마!


근데 예삐야, 아빠가 식당을 바로 차려 주는 건 안된대.

네가 아무리 열정 넘치게 한 오픈이라도, 망하는 건 훨씬 더 쉬운 법이라서.

네가 요리사가 아닌 식당 주인으로서 살아남기 위한 충분한 트레이닝의 시간이 필요하대.

그건 대학이 아닌 사회가 가르쳐줄 거라고 그러셔. 엄마도 200% 동의한단다!


꿈을 실현하기 위한 방법을 잘 생각해 보렴!

아직 네게 주어진 시간은 넉넉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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