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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딱좋은나 Jul 20. 2023

칭찬이라는 보물찾기

낳은 김에 키웁니다 12


서양화를 전공한 미대오빠 우리 남편은

아이들이 그린 아주 작은 그림이나 크로키,

하다만 스케치에도 칭찬을 참 잘 해준다.


아이들과 주말동안 심심풀이로 꾸민 이 그림 세 점도 정말 크게 칭찬해주었었다. 작정하고 그린 작품도 아니었다. 스케치북에 대충 그렸다가 세 여자가 달라붙어 경쟁하듯 색을 입힌 이 그림을 남편은 예쁘게 재단하여 사무실 한 쪽에 걸어두었다. 갤러리도 아닌 까만색이 가득한 사무 공간에 알록달록한 이 그림 세 점이 어쩐지 멋스럽다.


남편의 사무실에 가 이 그림 앞에 서면 괜히 우리 모녀들은 의기양양해진다. 마치 우리가 전시회라도 여는 화가가 된 듯한 착각이라도 하듯이 말이다.


화가의 그림처럼 완벽한 그림이 아니란 것은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다. 남편도 우리가 화가만큼 잘 그렸다고 칭찬 하는 뜻이 아닌 걸 안다.

하지만 남편은 적어도 미술이라는 활동에 한해서는 칭찬이 매우 후한 사람이다.


아이들이 언제 어디서 무얼 어떻게 그리든 장점을 찾아서 칭찬부터 해준다. '잘 했다, 색감이 멋있다, 이런 표현법을 생각해낸 것이 대단한 거다' 하며 아이의 기를 살려준다.

그리고는 원근법이 어떻고 소실점이 어떻고 하면서 자신의 지식을 늘어놓는데, 그의 그런 열정과는 달리 미술에 문외한이고만 싶은 나나 이론은 거부부터하는 딸들에게는 그저 소 귀에 경 읽기다.




나의 큰 딸은 초등학교에 들어간 이후 스케치 없는 추상화만을 그린다. 그림을 그리다보면 주제도 컬러도 바뀌기에 자신에겐 스케치가 의미 없다고 했다.


스케치북도 학교미술시간에서나 사용하지, 집에서는 캔버스에 아크릴 물감만을 고집한다. 붓이나 미술용 나이프로도 그리기도 하지만, 손을 쓸 때가 훨씬 더 많다.


큰 딸은 그라이데이션을 매우 좋아해서 무얼하든 그라데이션 위주로 그린다. 노을도 그라데이션이고 무지개도 그라데이션이다.

나도 가끔 딸의 그림을 배경으로 두고 물건의 사진을 찍곤 다. 배경이 된 딸의 그림은 고슴도치 엄마인 내가 느끼기에 꽤 멋스럽기도 하다.


미대 오빠의 딸이라서 그런지 성향은 지극히 미대스러운데, 그 실력은 아빠만 못한 것 같다. (어찌보면 아빠의 그림을 제대로 본 적이 없어 아빠랑 비교를 하는게 어불성설이기도 하지만 남편의 말처럼 미대가 가위바위보해서 들어가는 곳은 아니라고 하니 믿어본다.)


보통의 미술학원의 기준으로 볼 때 나의 큰딸은 미술적 감각이 조금 있을지 몰라도 실력은 한참 모자란 아이다.

자신의 생각이나 자신이 원하는 바도 캔버스에 차근히 다 표현해내지 못하다보니 이 점은 본인도 인정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편은 딸아이 그림이나 표현법 등 억지로 찾아서라도 칭찬을 한다.


미술에는 그 어떤 경계도 제한도 없으니 너는 너의 미술을 하면 된다고 한다.


하지만 현실적인 나는 기본기를 익히지 않고 무작정 고지를 향해 덤비는 아이를 질책한다. 아빠의 설명이나 가르침도 제대로 듣지 않는데 실력이 늘 가 있냐며. 배우는 자세부터 글러먹은 너는 더더욱 미대는 안되겠다고 아이 기 죽이는 소릴 한다.


내 말에 큰 딸은 그림으로 경쟁하는 것도 싫고,

상 같은 목적을 위해서 그림을 그리는 것도 싫다고 했다.

남들과 똑같은 것들을 그리는 것도 싫고,

선생님이 주제를 정해주시는 그림을 그리는 것이  어렵다고 다. 핑계 없는 무덤이 없다고 자신의 편협함에 말도 안되는 말을 갖다 붙이며 정당성을 부여한다. 나는 그런 핑계도 못마땅하다.


큰 딸은 자신이 그리고 싶을 때 자신이 원하는 색으로 칠을 하는게 그저 좋다고 했다. 느낌이 와야 되지 누가 시켜서 하는 건 싫다한다.

(이런 말도 일단 스케치부터 하고 옅은 색부터 짙은색까지 차근 차근 그려야하는 나와는 확실히 다르다.)


"창의력이 뛰어나서 그런거야, 네가 표현력이 좋아서 그나마 네 약점들도 다 커버가 되는 거야"

남편이 아이를 위로하는 말을 내어놓는다.

이번에도 위로가 반 칭찬이 반이다.


미대라서 한참이나 어휘력이 딸리는 아빠가  매번 아이의 기를 살리려 무단히도 애를 쓴다. 이럴 때 마다 나는 남편이 내 아이의 아버지인 것이 참 다행스럽다.




어느날, 손으로 늘 무언가를 조물거리고 있는 큰딸을 보며

회화보다는 조형물을 만드는 조소과가 더 어울릴 수도 있겠다고 남편이 그랬다. 

(가만 두지 못하는 손이 내 눈엔 애정결핍이나 정서불안 같건만 같은 걸 보아도 관점에 따라 이리 해석이 다르다.)


"절대 미대는 안보낼 거야. 어느 과에도 갖다 붙이지 마."


단호한 나의 말에 아빠와 큰 딸의 표정이 썩어버렸다.


"여자는 미대도 괜찮아."


"미대 오빠랑 사는 상대 언니는 한 평생이 힘들어서 안되겠어.  큰딸 너도 그림은 취미로만 그려. 밥 벌어 먹고 살려면 아빠 사무실 물려 받아야지. 여자도 능력이 있어야 돼. 그렇다고 엄마 팔자는 닮지 말고."


역시나 내 말에 남편과 큰딸은 서로의 얼굴만 멀뚱히 본다.

여기서 입을 더 뻥끗했다간 내 말이 더 길어질 걸 알기 때문이다.


5년 내내 바리스타가 되고 싶다고 하던 큰 딸이 책 한 권을 읽더니 대뜸 건축가가 되고 싶다했다. 그리고 그 말 한마디는 큰 딸에게 갖는 나의 바람이자 희망이 되어 버렸다.


"너가 안한다면 아빠 사무실은 막내한테 물려줄거니까 알아서 해." 하는 협박까지 더해 쐐기를 박았다.


"히잉."



딸은 딱히 미술을 전공하고 싶어하지 않으면서도, 엄마인 나의 협박에 속이 상한다.어쩐지 내 것을 뺏기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을 딸의 입에서 희한한 소리가 났다.


큰딸에게 칭찬 한 번을 해주기는 커녕 딸의 앞길을 멋대로 좌지우지하려는 나를 남편은 이해하지 못한다.

그의 부모님은 그의 재능이나 실력과 상관없이

무조건 네가 하고 싶은 거 하며 네 인생 살아라고 가르치셨으니 더더욱 이해 불가다.


나도 내가 너무하다는 걸 알지만 어쩔 수 없다.

나도  별 수 없는 엄마다.

해주는 건 쥐뿔도 없으면서 자식 앞길에 욕심을 낸다.


"자꾸 그러지 마, 칭찬만 해 줘. 애한테 할 수 있다고 가능성을 열어줘야지, 왜 자꾸 안된다고 해."


아이들이 모두 잠든 저녁, 남편이 나와 아이를 염려하며 말을 건네온다.


"칭찬 받을 짓을 해야 칭찬을 하지."


엄마들의 특징이지 않을까.

일단 엄마인 나의 말과 행동은 무조건 다 맞는 말이다.

내 기준에서 아이는 칭찬 받을 만한 일을 하지 않아서 내가 칭찬을 못하는 거다.


"뭘 하든 다 칭찬할 마음으로 보면 다 칭찬거리지. 항상 니가 문제야."


"없는 거 만들어서 칭찬하는게 나는 그리 어렵네.

칭찬은 당신이나 많이 해줘.

나는 팩트 날리면서 이놈시끼들 정신줄 단단히 잡아줄테니.

당신처럼 하고 싶은대로 하고 사느라 현실성 하나 없이 크면 안돼."


아이들과 남편까지 싸잡아서 일침을 날린 내 말에 남편이 일어나 방을 나가버렸다.


칭찬하는게 나는 그리도 어렵다.

익숙지도 않고 어려운 걸 어쩌라고.

하며 버티고 싶지만 방 밖을 나선 남편과 아이들 셋이 떠올라 마음도 좀 불편해진다.

그래, 자식 잘 키우려고 노력이라도 해봐야 되는 게 부모이지 않은가.

마음을 바꿔먹었다.


나는 오늘부터 매일 하루에 한 가지씩 아이들을 칭찬 해보기로 했다. 보물 찾기를 하듯 아이들을 칭찬할 거리를 찾아보겠다. 그러다보면 내 시선도 내 마음도 또 조금은 바뀌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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