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 쓰는 결혼 14.
얻은 것은 자식이요 잃은 것은 몸매라
결혼을 하고 아이 셋을 낳는동안
나는 정확히 20 킬로그램이 쪘다.
키도 작아 44반 사이즈라도
가슴은 커서 55 사이즈를 입어야했던 내가
이제는 77사이즈가 꽉 끼는 처지가 되었다.
마른 시절부터 봐온
내 오랜 친구들은 그랬다.
네가 출산 후 살이 찔 줄 몰랐다.
찐 살을 못뺄 줄 몰랐다고.
네가 이렇게 쭉 뚱뚱하게 살 줄은 몰랐다고.
내가 그런 소릴 전하면
가소롭다는듯 웃으며 미대오빠는 그런다.
"난 너 결혼하고 살 찔 줄 알았어.
내가 대성리 때부터 딱 알아봤지
넌 긴장 풀리면 팍팍 찔 스타일이야.
결혼하고 신경 쓸 게 없으니 세상 살기 편하지?
오빠가 너 편하게 해주니가 점점 살이 찌는거야."
라고.
그러면 나는 발끈하여 대답한다.
"결혼 후 부터 사는게 진짜 진짜 힘들어서
애 쓰면서 사느라 찐 '애살'이라고."
그러니
사는 게 마음 편하면 살이 쫙쫙 빠질 거라고.
아이러니하게도
20킬로그램이 느는 동안에도, 는 이후에도
난 단 한번도 다이어트를 시도조차 한적이 없다.
30년을 날씬하게 살아봤으니
30년쯤 뚱뚱하게 살아도 상관없다
새로 시집갈 것도 아니고.
라는 핑계로.
인정하기 싫지만
나를 키운 우리 부모님보다
이젠 날 더 잘 아는 미대오빠가 파악한 내가
정확하게 맞아떨어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이 둘을 낳고 10킬로그램 정도 쪘을 때 일이다.
미대오빠와 둘이서 차를 타고 가다
횡단보도의 신호 대기로 정차해 있었다.
중앙 차선의 버스정류장을 향해 걸어가는
대학생 쯤으로 보이는 여자가 우리 차 앞을 지나갔다.
굴곡은 예쁘게 있지만 팔 다리가 길고 마른 몸매로
반팔 티셔츠와 청바지만을 입었는데
멋스러운 옷태를 자아내서
여자가 봐도 절로 다시 한번 눈이 갔다.
내 눈길은 그 여자분이 버스정류장에 설 때 까지 이어져
미대오빠가 뭘 그리 열심히 보냐고 물었다.
"오빠 오빠,
저기 저 여자, 몸매가 예쁘니까
티셔츠에 청바지만 입어도 엄청 예쁘다 그치?"
그랬더니
"저 정도면 아무것도 안입어도 예쁘지.
한 때의 누구 처럼"
이라고 말하며 내 옆구리를 쿡 찔렀다.
사랑해 마지많는 내 사랑으부터 돌려까임에도
나는 데미지가 정말 1도 없었다.
'한 때의 누구'가 나라는 사실에
그저 좋아하며 콧소리 섞인 웃음으로 남편을 바라봤다.
그렇게나 여전히 속도 참 없던 나였다.
막내를 임신하고 찐 10킬로가 출산 후에 그대로 살이 되자
결혼 전보다 20킬로그램이 늘며
나의 인생최대치 몸무게가 완성되었고
여전히 유지되고있다.
얼마 전 아이들이 꺼내온 앨범에서
결혼식 준비를 하며 찍었던
쇄골뼈가 나오고 가슴골이 푹 파인
스튜디오 사진을 보았다.
우연히인지 모르겠는데
앨범의 페이지를 넘기던 남편의 손이
사진 속 드레스를 입은 내 가슴께에 있었다.
결혼1n년차 부부
아직도 우리는 서로의 살 한군데는 붙어야 숙면을 취하고
잠결에라도 남편은 내 가슴을 습관처럼 만진다.
"암만 생각해도 오빠는 내 가슴 보고 작업 건 것 같아."
라고 했더니
"가슴만 봤을까?" 라고 대답해
나를 잠시 설레게 했다.
"그럼 뭘 또 봤대?"
라고 되물으며
내심 얼굴도 봤다 할까 기대했건만.
"잘록한 허리와 볼록한 엉덩이도 봤지."
라고 대답하며 단박에 나의 환상을 깨주었다.
인생 최대 몸무게를 경신하며 살이 찔대로 쪄
펑퍼짐하게 퍼져 팬티도 남편의 것만큼 커다란 사이즈를 입어야하는 내 가여운 엉덩이와
드럼통처럼 구분이 없어진 허리라인과
살 속에 파묻혀 없어진지 오래인 쇄골라인이
곡을 하며 슬퍼할 것 같은 대답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시베리아허스키 짝짓기하다 헐떡거리는
미대오빠의 소리에도
기분이 나쁘지 않은 내가 정상이 아닌 것이지...
"그 여자 어디 갔냐? 돌려내라!"니
미대오빠는 의기양양하게
"애 셋과 맞바꾸었다"고 즉답하며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봐준다.
모유수유를 하느라 쳐지고 쭈그러진 내 가슴을
두어번 쪼물딱대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런 할매젖도 만져주는 남자가 어딨냐?
살 쪄도 오빠가 이뻐해주니 건강하게만 살아"
하고 대답을 해준 덕에 나는
앞으로도 꾸준히
내 살을 자랑스러워하기로했다.
망한 것은 내 몸매가 아니라
그저 자기 관리 일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