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X.2
일요일 오후 두시.
차에서 햄버거 세트로 부랴부랴 한 끼 떼운 딸들
딸 둘을 체험학교에 데려다놓고
막내와 우리 부부는 늦은 점심을 먹으러 가기로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두 시간 남짓.
같은 고장이더라도 이 동네는 사는 곳과 멀어
나는 처음 와 본 곳이지만
미대오빠는 지인이 근처에 살아 몇 번 와본 적 있다.
미대오빠는 운전대를 잡고
뭐 먹지, 뭐 먹을까? 뭐 먹고싶어? 하고 묻는다.
몰라 아무거나 하고 시큰둥한 내 반응에
배고파서 예민해진 미대오빠도 뿔이 났다.
대번에 그의 목소리에 짜증이 묻어난다.
"맛집 검색이라도 해봐,
운전하면서 내가 다 할 수 없잖아!"
결혼 1n년차 애가 셋 맞벌이 부부
그간 망해서 없애버린 남편 사업자만 세 개.
여전히 우리는 자산을 불리긴 했지만
아직 현금흐름은 여유롭지 않아
배달음식이나 외식도 월례행사 수준의 삶을 살고 있다.
외식엔 늘 아이들이 원하는 메뉴를 먹다보니
내가 메뉴를 고르는데 익숙치도 않거니와
막상 멍석이 깔리니 뭘 먹어야할지도 모르겠다.
"어. 그럼 여기 가자. 고기랑 면이랑 다 나온대."
배고파서 예민해져 목소리까지 달라진 미대오빠
나 또한 어서 밥을 먹고싶어 배고픔에 급해진 마음에
근처 지도 검색에서 제일 가까운 곳으로 선택했고
미대오빠는 곧바로 네비게이션에 목적지를 입력했다.
유턴을 위해 차를 좀 더 달리는 중에
"어? 여기!" 하고 미대오빠가 저만치 앞을 가리킨다.
가봤던 맛집이 있으니 그리로 가자며
유턴대신 직진을 했는데
도착해보니 그 식당은 마침 내가 좋아하는 소고기집이다.
값도 소치곤 저렴하고 맛도 있었던 곳이라며
먹고싶은 것 시키라며 내게 메뉴 선택권까지 주었다.
우스개 소리로
"당신이 돈 벌어서 밖엣 소고기도 사주고, 너무 좋다"
하며 차에서 내리려는데 나도 모르게 울컥한다.
흔들린 내 목소리에 놀랐는지
내 등뒤에서 어깨를 토닥인다.
"오빠가 죽일 놈이다. 오늘은 돈 생각하지 말고
오랜만에 먹고싶은거 다 시켜!"
가족 모두 소고기를 워낙 좋아하는 탓에
창고형할 인매장에서 소고기를 사 집에서 잘 구워먹는다.
그간 소를 못먹고 산 것도 아니건만
이렇게 밖에 나와 먹는게 얼마만인지.
시댁 가족모임 때나 먹을 수 있는 집 밖에서 먹는 소고기.
코로나로 몇 년간 가족 모두 모일 수가 없었으니
외식으로 소고기를 먹는 게 정말 몇 년만이었다.
막상 식당 안에 들어간 나는
소 치고는 싸다지만 그래도 비싼 가격에
쉬이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한 끼에 십만원이 넘는 돈을 지불하고나면
그 후에 다른 데서 아끼고 졸라매야함을
그간의 경험으로 너무나 잘 안다.
매 순간 "기회비용"을 지불하며
선택과 포기를 동시에 해야하는 삶이니까.
그래서 함께 오지 못한 딸들을 핑계로
400g짜리 생갈비만을 주문했다.
ㅡ물론 된장찌개와 밥을 함께 주문했고
결국 살짝 모자라서 고기도 150g 추가했다.
왜 더 큰 사이즈 시키지 않냐는 미대오빠의 물음에
먹고 다른 부위 더 시킬 거라 변명했다.
하지만 현실에 사는 내 마음 속의 마지노선은 여기까지였다.
"울 애기. 많이 먹어.
아이들 키우느라 일 하느라 고생하는 우리 마누라
좋아하는 소고기도 못사주고 오빠가 미안하다.
열심히 벌어서 울 애기 좋아하는 거 많이 사줄게"
소고기 먹자는 말에 코끝이 빨개질 정도로 울컥햇던 나.
그런 내게 정말 진심으로 미안했는지
정말 오랜만에 연애 때 쓰던 애칭으로 나를 부르는 미대오빠.
숯불에 고기를 구워다가
막내에게도 한 점 주지 않고
어미새 마냥 내 그릇과 내 쪽 불판에
먹기좋게 익은 고기를 잔뜩 쌓아주었다.
귀한 소고기 맛을 음미하기엔 쌈을 싸기에도 아까워서
소금이나 기름장 한 번 찍지 않고 입에 부지런히 넣었다.
오늘은 아들놈도 모르겠다, 나부터 먹겠다.
쫄깃하고 고소하게 입에서 사르르 녹는 맛!
정말 정말 여러번 울컥 할 정도로 맛있다.
맛있게 한 끼 식사를 끝내고 나오자
미대오빠가 웃으며 말한다.
"열심히 살께.
그래서 또 소고기 먹으러 오자.
그땐 맘 편하게 세트메뉴로 시키자!"
물론 이런 기약의 말이 100% 다 지켜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의 세상은 이러한 희망과 사랑으로
우리를 바꾸어왔고 견디게했고 살아가게 한다.
그래서 우리는 어제보다 나은 오늘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맞이할 수 있었다.
매일매일 조금씩 달라진 우리의 세상.
작은 목표.
세트로 소고기 시켜먹을 날을 위하여!
그때는 딸들도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