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 쓰는 결혼 16

대기만성

by 딱좋은나

201x. 12.24


미대오빠의 오프인 크리스마스 이브

미대오빠 찬스를 써서 둘째를 맡겨두고

둘째의 돌잔치 준비 핑계로 동네 미용실에서 펌을 했다.


싸게 할 거라고 허름한 곳을 찾아갔는데도

긴 단발인 내 머릿칼을 기본 펌으로 해도 35,000원이나 해서 깜짝 놀랐다.

그냥 부산가서 엄마한테 해달라 했을 걸.

(친정엄마께서 전직 미용사이심)


ㅠㅠ

처음으로 돈 주고 해본 펌에 속으로 엉엉 울며 돈을 냈다.


뽀글이 빠마로 호호 아줌마가 되긴 했지만

미용실 아주머니께서 처음 펌 한 것 치고는

웨이브가 잘 나왔다 하셨으니 만족해야지 뭐...




미용실에서 생각보다 시간을 오래 보낸 탓인지

집으로 돌아오니 큰딸과 미대오빠가 배고프다며 난리다.



이브 핑계로 집 앞서 고기 외식하고 와서

소주 두 잔에 홍조 띤 얼굴로 셀카를 찍었다.


얼굴만 보면 예전과 차이가 별로 없는 것 같은데

전신샷은 찍을 수 없는 몸이 되었다.


미용실 거울에 비친 내 뚱뚱한 모습을 보고 우울했었는데

고기를 눈앞에 두고선 미친듯이 흡입해버린 내가 싫다.


첫째 출산 후 보다 둘째 낳고 더 쪄서

결혼식 기준 딱 15키로 더 쪄서 사네.


장난 치느라

"미대오빠, 나 데리고 살아줘서 고마워 흑~~ "

이라 말하

"그 몸은 수유할 까지만 봐주는 거야"

라고 정 뚝 떨어지는 찬 목소리로 인정머리 없게 말한다.

.ㅡ;;;




둘째는 부산에서 돌잔치를 하는데

평소답지 않게 이리 이것 저것 하나 하나 모두 신경쓰이는

'금의환향'까진 아니라도

오랫만에 만나는 가족 친지 친구 지인들께

어여쁜 모습으로 나타나고싶은 마음에선데

그간 방치방임한 내 몸은 내 맘과 같지 않아 슬프다.


그보다 더 비참한 현실은

여전히 밥안의 불청객, 돌도 그냥 씹어삼킬만큼

달콤한 식욕이 멈추지 않는다는 것.


그나저나

하필 나는 나가고 없고 미대오빠가 집에 있는 오늘

택배가 쏟아져 왔다는 것이다.



동생이 보내준 달력과 다이어리

이유식 거부가 심해진 둘째의 시판 이유식에

돌잔치 준비로 제작주문 한 포토앨범 권,

연말에 엄청난 할인율에

무지막지 질러버렸던 커피 캡슐도 왕 큰 박스로 도착.

거기다 캡슐 할인 행사와 별개로

커피머신도 한대 사은품으로 받아서

또 다른 박스 추가.


마구마구 쏟아져 들어온 택배를 보고 어이가 없어

입이 떡 벌어졌다하는 미대오빠한테

집구석에 앉아 돈을 막 쓴다고 한 소리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택배 박스를 뜯으며 룰루랄라 신난 나는

"당신이 요새 잘 벌어다주니 내가 잘 쓰는거야."

라며 아양을 떨며 부벼대니

미대오빠는 잔소리를 하다 말고 어이없단듯 웃었다.


역시 남자의 자존감과 자존심은

아내에게 갖다주는 돈과 비례하여 높아지는 듯하다.



미대오빠,

내 얼마든지 당신을 떠받들고 살 터이니

요새만 같이 앞으로도 쭈욱 잘 부탁해요♡






202X. 12. 24.


"여보, 나 루테인이 없어. 어디 뒀어? 찾아줘!"



잊지말고 먹으라고 정수기 앞에 둔 영양제들.

그 앞에서 비어버린 박스를 거꾸로 들어보이며

미대 오빠가 나를 부른다.



결혼 후 라식수술을 했단 이유와

노안이 최대한 늦게 오길 바라는 마음에

미대오빠의 영양제에 루테인을 반드시 포함하여

꼬박 꼬박 챙기기 시작했다.


가스비를 아끼느라 21도에 맞춰놓은 보일러

온도를 올리지 않으니 보일러가 돌 일이 없다.

썰렁한 공기에 마음도 몸도 덜덜 떨려

안방 침대에 잔뜩 움츠리고 누워있었다.

대꾸도 싫은 귀찮음에 밍기적 거리다

느지막히 미적미적 주방으로 나왔는데

자신의 몸만큼은 어지간히도 챙기는 미대오빤

미동도 않고 그 모습 그대로 날 기다리고 섰다.


"없는데?!"


싱크대 상부장 하부장을 찾아보던 내가

심드렁하게 대답을 하자

그 착하고 순한 사람의 눈이 매서워진다.



"가뜩이나 노안 와서 침침하고 안보이는데

안경알 비싸다고 안경도 안맞춰 주면서

약까지 떨어뜨림 어떻게 하란 거야?!"



가뜩이나 통장에 남은 돈이 세자릿 수라 나도 예민한데

알지도 못하고 또 건드네 싶어

내 입에서 좋은 소리가 나가지 않는다.


"어이, 아저씨!

당신은 십년 넘게 꼬박꼬박 챙겨먹는 그 영양제,

난 평생 못먹고 살아도 더 튼튼하고 멀쩡하거든!

라면이랑 술을 먹지 말고 밥이랑 반찬이나 골고루 먹어!"


후우....


한 번 지르고 나니 속에서 불기둥이 올라오는 것 같았다.

더한 말로 상처를 주게 될 것 같아 꾹 참느라

입은 닫고 코로 깊이 심호흡을 했다.




그런 나를 보며 절레 절레 고개를 젓더니

남아있는 다른 영양제를 챙겨 물과 함께 입으로 털어넣고

미대오빠는 미련없이 뒤돌아 섰다.


그 모습에 내 부족한 인내심이 배알이 꼴려

참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싶어 마지막 일침을 가했다.



"원래 돈 떨어지면

건강기능식품부터 떨어지는 거 몰라?"




왜 돈이 없을 땐

무엇이든 한꺼번에 똑 똑 다 떨어지는지.


주방세제도 사야하고

린스는 있지만 샴푸도 간당간당하고

갑티슈는 떨어진지 오래이지만

화장실 두루마리 휴지도 바닥이 보인다.




돈 떨어지는게 하루 이틀 일인가?

어떻게든 또 되겠지.

하며 꾹 꾹 눌러 참고 있는데 급격히 서글퍼진다.




내 말에 삐진 것인지

아니면

지난 달 수입이 없어

돈을 가져다주지 못한 미안함에서인지

미대오빠는 찬 서리 같은 내 말에 대꾸도 없이

욕실로 가 샤워를 시작한다.



샤워기 아래에서 울기라도 할까

걱정이 하나도 되지 않는 건

어차피 미대오빠는 눈물이 없는 사람이디.


현실성 없다는 말이 곧

그의 인생과 돈은 별개의 것인지라

돈이 없어 아쉬운 건 나지

절대 미대오빠 본인은 아쉽지 않단 거다.


즉, 돈 따위는 그가 울 일이 아니다.

심기를 거슬리는 일일뿐.



근데 센티한 내게는 이 샤워기 물소리가

내 마음이 흘리는 내 눈물 소리 같이 느껴진다.


맥없이 안방 침대에 다시 누워

토독토독 휴대전화 자판 소리를 내가며 검색 한다.


'루테인지아잔틴'


그리고 5개월치 150정 최대 세일상품을 골라

얼른 카드 결제를 했다.



집에서부터 대접 받아야

밖에 나가서 당당하고 큰일도 하지.

당신한테 볼 거라곤 매사에 자신만만한 그 태도 뿐인데.



바다와 같이 넓은 마음으로 내 너를 품으마.


사랑해마지 않는 그대여,

부디 단돈 1원이라도 나보다 더 벌어!

매달 쉬지 말고 일해서 돈을 가져다 줘.


나는 당신이 돈을 벌어오는동안 부리는 유세도 좋고

입금 후 의기양양해지는 당신의 태도도 좋아.

돈에 좌우되지 않는 너의 자존감과 자존심을

나도 끝까지 지켜주고 싶어.



그까짓 사업 좀 망하면 어때.

언젠가 한번은 일어나겠지.




오늘도 나는 내 동생의 유치원 재롱잔치 때 듣고

뇌리에 박혀 버린 그 멜로디에 맞춰 노래한다.




"대기만성~ 큰 대 그릇 기 늦을 만 이룰 성

크게 될 사람은 늦게 이루어진다

큰 대 그릇 기 늦을 만 이룰 성!!!"



미대오빠여,

내가 끝까지 기다릴테니 꼭 대기만성하세요!

(기다림은 현재진행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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