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쓰는 결혼 17

꿈보다 해몽

by 딱좋은나

201X. 가을




비 오니까 수제비 먹고 싶어


해장엔 역시 얼큰 칼국수 아니 칼제비지!


반찬이 이게 다야? 그냥 라면이나 먹을래.


오, 여기가 스파게티 맛집이네.


찬 바람 부니 만두 빚어 먹어야지?


그냥 라면이나 끓여!





하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귀 옆에서 미대오빠가 이야기하는 걸 듣는 것 같다.


나는 정말 밥만 좋아한다.

순수하게 밥으로 20킬로그램을 찌웠다

자신있게 말 할 수 있을 정도로

밥을 좋아하는 밥순이이다.


그런 나의 반쪽 미대오빠는

세상의 모든 면을 좋아하는 밀가루쟁이이다.



내가 태어난 이후

30년간 부모 슬하에서 먹은 수제비보다

미대오빠와 결혼하고 먹은 수제비가

100배는 더 많을 것 같다.


(연애할 땐 칼국수 수제비 먹으러가도

나는 떡만둣국 같은 다른 메뉴를 시켰다)


밀가루랑 결혼하지 왜 나랑 결혼했어!


기껏 차려 놓은 식사를 두고

라면 물을 올리는 그를 볼 때면

정말이지 없는 손톱이라도 바짝 세워

쫘악 긁어내리고 싶어진다.




"뭔소리야. 니가 내 밥인데. 넌 밥 같은 여자야.

밀가루는 없으면 살아도 밥 없으면 못살아.

어쨌거나 난 밥심으로 사는 한국인이잖아."




밥 같은 아내.

이걸 좋아해야하는지 말아야하는지.




오빤 밀가루를 밥보다 더 좋아하잖아.

난 쌀이라고! 밀가루 아니라고!

쌀은 밥해먹고 죽해먹고 볶아먹고

떡 해먹는 거 밖에 안된다고!



오빠같이 이기적이고 개인적이고 못된 놈 한텐

자극적이고 맛은 있는데

돌아서면 배는고픈데, 배는 볼록 나오고

성인병 부르는 밀가루 같은 여자가 딱인데!

어쩌다가 내가 걸렸대 ㅜ.ㅜ


기껏한 음식을 혼자 꾸역 꾸역 먹으며

원통해하며 궁시렁 거리는 내 맞은 편에

미대오빠는 아무일 없다늣 듯 떡라면을 끓여다 앉는다.

그리곤 내가 한 밥과 반찬을 함께 먹었다.


"연애는 밀가루랑 해도 결혼은 밥이랑 해야지.

그런 의미로다 내가 밥통 하나는 잘 골랐지!

오늘은 그냥 라면이 땡길 뿐."



밥과 반찬까지 함께 먹는 미대오빠를 보며

어느새 나는 마음이 풀렸다.

참 쉽다 쉬워!



(물론 이 덕인지 결혼 후 미대오빠도

10kg정도 체중이 증가되었다.)


우이씨이....


ㅡ결혼 초 서로의 음식 간이 맞지않아

밥상을 다 차렸는데도

라면을 끓여서 같이 먹는 이런 일이 종종 있었다.


이제는 미리 라면 먹고싶냐 물어보고

라면을 맛있게 끓여다 바치는 1n년차 티키타카!






영업부였던 상대언니에게 지지 않는 말솜씨로

내 약을 올리며 화를 돋구는 미대오빠.



그렇게 그는 나를 울리기도하고 웃게도 하며

함께라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리고

우리가 같이 보낸 시간은 쉬지 않고 흘러 흘러

내가 처음 만난 미대오빠의 나이보다

지금의 내가 더 나이가 많아졌다.


생각보다 사랑아닌 정, 부부아닌 자식때문에

사는 커플이 많은것 같다는 내게

미대오빠는 두 번의 고민도 없이

"우리는 촛불 같이 타고 없어지는 사랑이 아니라

켜켜이 쌓아가는 탑 같은 사랑을 한다

그래서 우리는 살면 살수록 좋은 거다"했다


난 또 그 소리에 뿅 가서 헤벌쭉하고 있는데


"근데 오늘 아침 메뉴는 뭐야?"

라며 좋던 분위기 산통 다 깼다.



"아악!!! 진짜!!!!"

하고 현실로 돌아온 아쉬움에

소리를 꽥 지르는 내게 미대오빠는


"뭘 또 헤벌레~ 하고 있나, 밥이나 줘 여편네야."

그래 니 밥통, 밥 하러 간다 가!!!!



매번 느끼지만

내가 "니" 밥통이라 다행이야~♡







202X. 가을



같은 수용성이지만 성질이 다른 수채화물감과 아크릴.

쨍한 컬러를 좋아하는 나는

학창시절 접한적도 없는

아크릴 물감이 더 좋은것 같은데.


술에 술 듯 물에 물 듯 유한 내 남편 미대오빠는

미대 시절 주 종목이 수채화일 정도로

수채화를 더 선호했다 한다.


나는 언제 어디서든

밝고 쨍하고 톡 튀는 사람이지만

긁으면 벗겨지는 아크릴화처럼

요기 죠기 잘도 적응했다가

어느순간 툭 하고 떨어져 나간다.




반대로

물에 섞여 스며들었다

결국 제 색을 찾아

그 가치가 더해지는 수채화처럼

묵묵히 다양한 색깔을 내며 살지만

올곧게 한 길만 가는 내 남편 미대오빠.




이렇게나 우린 서로 달라서

열통 터지고 홧병 나는 일도 많지만.


그래도 우리가 이렇게 섞여 살아가기에

재미있고 즐거운 인생 아닐까.




그대와 살기 위해서는

언제나 꿈보다 해몽


한량이랑 사는

그것은 바로 자기최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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