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X. 가을
비 오니까 수제비 먹고 싶어
해장엔 역시 얼큰 칼국수 아니 칼제비지!
반찬이 이게 다야? 그냥 라면이나 먹을래.
오, 여기가 스파게티 맛집이네.
찬 바람 부니 만두 빚어 먹어야지?
그냥 라면이나 끓여!
하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귀 옆에서 미대오빠가 이야기하는 걸 듣는 것 같다.
나는 정말 밥만 좋아한다.
순수하게 밥으로 20킬로그램을 찌웠다
자신있게 말 할 수 있을 정도로
밥을 좋아하는 밥순이이다.
그런 나의 반쪽 미대오빠는
세상의 모든 면을 좋아하는 밀가루쟁이이다.
내가 태어난 이후
30년간 부모 슬하에서 먹은 수제비보다
미대오빠와 결혼하고 먹은 수제비가
100배는 더 많을 것 같다.
(연애할 땐 칼국수 수제비 먹으러가도
나는 떡만둣국 같은 다른 메뉴를 시켰다)
밀가루랑 결혼하지 왜 나랑 결혼했어!
기껏 차려 놓은 식사를 두고
라면 물을 올리는 그를 볼 때면
정말이지 없는 손톱이라도 바짝 세워
쫘악 긁어내리고 싶어진다.
"뭔소리야. 니가 내 밥인데. 넌 밥 같은 여자야.
밀가루는 없으면 살아도 밥 없으면 못살아.
어쨌거나 난 밥심으로 사는 한국인이잖아."
밥 같은 아내.
이걸 좋아해야하는지 말아야하는지.
오빤 밀가루를 밥보다 더 좋아하잖아.
난 쌀이라고! 밀가루 아니라고!
쌀은 밥해먹고 죽해먹고 볶아먹고
떡 해먹는 거 밖에 안된다고!
오빠같이 이기적이고 개인적이고 못된 놈 한텐
자극적이고 맛은 있는데
돌아서면 배는고픈데, 배는 볼록 나오고
성인병 부르는 밀가루 같은 여자가 딱인데!
어쩌다가 내가 걸렸대 ㅜ.ㅜ
기껏한 음식을 혼자 꾸역 꾸역 먹으며
원통해하며 궁시렁 거리는 내 맞은 편에
미대오빠는 아무일 없다늣 듯 떡라면을 끓여다 앉는다.
그리곤 내가 한 밥과 반찬을 함께 먹었다.
"연애는 밀가루랑 해도 결혼은 밥이랑 해야지.
그런 의미로다 내가 밥통 하나는 잘 골랐지!
오늘은 그냥 라면이 땡길 뿐."
밥과 반찬까지 함께 먹는 미대오빠를 보며
어느새 나는 마음이 풀렸다.
참 쉽다 쉬워!
(물론 이 덕인지 결혼 후 미대오빠도
10kg정도 체중이 증가되었다.)
우이씨이....
ㅡ결혼 초 서로의 음식 간이 맞지않아
밥상을 다 차렸는데도
라면을 끓여서 같이 먹는 이런 일이 종종 있었다.
이제는 미리 라면 먹고싶냐 물어보고
라면을 맛있게 끓여다 바치는 1n년차 티키타카!
영업부였던 상대언니에게 지지 않는 말솜씨로
내 약을 올리며 화를 돋구는 미대오빠.
그렇게 그는 나를 울리기도하고 웃게도 하며
함께라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리고
우리가 같이 보낸 시간은 쉬지 않고 흘러 흘러
내가 처음 만난 미대오빠의 나이보다
지금의 내가 더 나이가 많아졌다.
생각보다 사랑아닌 정, 부부아닌 자식때문에
사는 커플이 많은것 같다는 내게
미대오빠는 두 번의 고민도 없이
"우리는 촛불 같이 타고 없어지는 사랑이 아니라
켜켜이 쌓아가는 탑 같은 사랑을 한다
그래서 우리는 살면 살수록 좋은 거다"했다
난 또 그 소리에 뿅 가서 헤벌쭉하고 있는데
"근데 오늘 아침 메뉴는 뭐야?"
라며 좋던 분위기 산통 다 깼다.
"아악!!! 진짜!!!!"
하고 현실로 돌아온 아쉬움에
소리를 꽥 지르는 내게 미대오빠는
"뭘 또 헤벌레~ 하고 있나, 밥이나 줘 여편네야."
그래 니 밥통, 밥 하러 간다 가!!!!
매번 느끼지만
내가 "니" 밥통이라 다행이야~♡
202X. 가을
같은 수용성이지만 성질이 다른 수채화물감과 아크릴.
쨍한 컬러를 좋아하는 나는
학창시절 접한적도 없는
아크릴 물감이 더 좋은것 같은데.
술에 술 탄 듯 물에 물 탄 듯 유한 내 남편 미대오빠는
미대 시절 주 종목이 수채화일 정도로
수채화를 더 선호했다 한다.
나는 언제 어디서든
밝고 쨍하고 톡 튀는 사람이지만
긁으면 벗겨지는 아크릴화처럼
요기 죠기 잘도 적응했다가
어느순간 툭 하고 떨어져 나간다.
반대로
물에 섞여 스며들었다
결국 제 색을 찾아
그 가치가 더해지는 수채화처럼
묵묵히 다양한 색깔을 내며 살지만
올곧게 한 길만 가는 내 남편 미대오빠.
이렇게나 우린 서로 달라서
열통 터지고 홧병 나는 일도 많지만.
그래도 우리가 이렇게 섞여 살아가기에
재미있고 즐거운 인생 아닐까.
그대와 살기 위해서는
언제나 꿈보다 해몽
한량이랑 사는 법
그것은 바로 자기최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