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고무신은 신지 않겠다!

첫 사랑이 중요한 이유 : 잘못된 사랑법

by 딱좋은나

나는 단 한번도 운동선수나 연예인을 좋아한 적이 없다.

보고싶을 때 볼 수 없고, 만나고 싶을 때 만나지 못하는 건 사랑이나 애정이 아니다.

만질 수도 없고 곁에 둘 수도 없는 남자는 내게 남자도 아니다.

화면에서 보고 만족해야하는 동경따윈 내게 감정 낭비일 뿐이다.






중학교 2학년 초부터 고등학교 3학년 직전까지

햇수로 5년이란 기간 동안 사귄 남자친구가 있었다.


그는 유일하게 나와 교복 입는 시절을 함께한 사람이었거 진정한 나의 첫사랑이다.

두 살 차이가 났었던 우리 둘 모두 교복을 입고 만난 시간은 함께한 5년 중에서도 1년도 채 되지 않는다.

그가 내게 가진 감정을 무기로 휘두르던 나는 조금만 기분이 나빠도 그에게 헤어지자는 소리를 무한히 반복했기에 우리는 5년의 초반 2년 동안은 만나고 헤어지고를 반복했었다.



우리가 헤어지지 않고 쭈욱 만나게 된 것은 내가 고등학생이 된 후였다.

고등학생과 중학생의 차이가 별 것 아닌 것 같은데 막상 만날 땐 좀 그랬다.

그래서 그는 내가 헤어지자는 소리에 잘도 떠나갔었다가, 돌아오라는 소리에 부리나케 잘도 돌아왔었다.



드디어 내가 고등학교 교복을 입게 되자 그는 나에게 안착했다.

우리가 함께하는 동안 시간은 빠르게 흘렀고 어느순간 그는 더이상 미성년자가 아니게 되었다.

그가 진학한 대학교가 집에서 멀다는 이유로 그는 작은 차를 몰고 다녔었다.

그가 선택한 학과는 성적에 맞춘 것이기 때문에 전공이나 적성에 맞지 않았다.

마음에 안들던 것은 여자 비율이 꽤 많은 학과였고, 그 덕에 질투많은 나는 그를 퍽 못살게 괴롭혔다.


나 때문에 그는 대학생활이나 과생활을 한번도 제대로 하지 못했고,

공강이 있는 요일엔 무조건 하교 시간에 맞춰 나를 데리러 와야 했다.

어거지인 걸 알면서도 그에게 고집과 땡깡을 부렸고 그는 거의 다 받아주었다.

어쩌다 그가 일이 있어 만남을 미루거나 거절이라도 할라치면 나는

"사랑이 식었네, 나는 너한테 그 정도 밖에 안되는 거지,

이제 나보다 더 중요한 게 생겼냐, 알겠어 나도 앞으로 그럴게" 하는 협박도 서슴치 않았다.

그러면 그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내게로 왔다.


(되돌아보면 그때의 나는 참 못되먹었었다.

나를 많이 사랑해주었던 착한 그를 하도 많이도 울려서

아마도 이렇게 지금의 남편이라는 쓰레기를 만나 재활용시키는 벌을 받고 있지 않나 싶다.)






그가 속한 그의 가정은 정말 교과서에 나오는 이상 그 자체였다.

연애 결혼을 하고 여전히 사이좋은 부모님은 늘 여유롭고 인자하셨다.

키도 덩치도 제 형보다 더 크지만 형이라면 끔뻑 죽는 동생도 있었다.

그의 부모님은 대를 이어 물려받은 도매업을 크게 운영하셨고

그 덕에 그도 아무런 걱정이나 결핍 없이 매우 편안하게 살았다.


그를 만나는 동안 나는 헤어지자는 협박을 백 번도 넘게 했으면서

그 이상적인 가정에 언젠가 나도 유입될 것을 당연한 수순처럼 생각했었다.


내 부모만큼이나 나를 사랑한다 느낄 정도로 그에게 사랑을 받았다.

그래서인지 내 모든 것을 다 받아주고 맞춰주는 남자친구를 고마워하기는커녕

정말 함부로 대하고 제멋대로 휘두르던 못된 사랑을 했었던 나였다.






그와 만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우리는 꽤 길게 헤어져 있어서,

내가 고등학교에 진학한 이후에야 그의 부모님을 만나뵙게 되었다.


아무리 실업계라지만 고3이 된 그가 공부를 하지 않고 연애에만 집중을 하니

그의 부모님께서 상대인 나를 궁금해하시며 집으로 호출을 하셨다.


그의 부모님께서 나를 부르기 전에 이미 내가 그에게 학원을 같이 다니자 제안을 했던 터라,

그의 어머니는 나를 만나기 전부터 나를 매우 고운 시선으로 보고 계셨다.

자신도 어쩌지 못하는 자신의 아들을 휘두르는 나를 싫어하지 않고 기꺼워해주셨다.


문 입구에까지 나와서 나를 맞아주시던 그의 부모님의 미소는 따뜻했지만,

인사가 끝나자 마자 그는 부모님과 내 앞에서 공부만은 못하겠다고 선언했다.

자신은 공부할 자신도 의지도 없으니 학원은 못다니겠다며 엄마에게 되려 나를 말려 달라 했다.

같이 학원을 안다니면 헤어지겠다는 협박을 이미 한 터라 그는 퍽 애절했다.


처음으로 인사를 드리러 왔는데 이별을 운운하는 그와 나를 보며

어머니는 정말 깜짝 놀라셨지만 나의 진심을 쉽게 이해해주셨다.

나와 어머니를 가만히 지켜봐도 상황이 제 뜻대로 흘러가지 않자 그가 헛소리를 덧붙였다.

"얘가 학원을 다니면 늦게 마치니까 내가 매일 데리러 갈게,

맨날 데리러 가다보면 언젠가 나도 학원에 들어가서 공부하겠지."

어머니와 나는 마주 앉아 황당한 얼굴로 그를 보았고, 그의 아버지는 대번에 미친놈이라고 하셨다.

그래도 그는 학원 근처에라도 가는게 어디냐며 그저 좋아했고 나의 손을 꼭 잡은 채 웃었다.

한심한 눈으로 그를 지켜보는 어머니의 깊은 한숨에 내 잘못인양 무안하고 낯이 뜨거웠다.

얼마 뒤 겨우 차분하게 숨을 고른 어머니가 나를 보며 질문을 하셨다.

"그래서 너는 지금 어느 학교에 다니고 있어?"

내가 대답을 하자 그의 어머니의 얼굴이 눈에 띄게 밝아졌다.


알고보니 그녀는 나의 고등학교 선배님이셨다.

부산에서 이름만 들어도 명문이다 전통있다하는 공립고등학교에 다녔던 그녀는

이른 혼인으로 인해 대학 진학을 하지 못한 게 늘 아쉬움인 분이셨다.

자식으로 못다 이룬 학업의 한을 풀어보고 싶으셨지만,

그녀의 외양을 쏙 빼닮은 큰아들인 내 남자친구는 공부에는 전혀 재미를 붙이지 못하였다.

(다행인 건 나와 동갑인 그의 동생은 꽤 똘똘하고 공부를 잘 했다.)


모든 걸 다 가진 어머니에게 큰아들이 다니는 실업계 고등학교는 유일한 컴플렉스이자 수치였다.

그랬기에 그녀와 같은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나는

그녀의 컴플렉스를 커버해주는 유일한 해결책이자,

공부 못하는 아들놈이 선택한 똑똑한 여자친구라는 자랑이 되었다.

그래서인지 그를 만나는 내내 그의 부모님은 나를 참 많이도 이뻐해주셨다.




그와 헤어졌다 만났다는 반복하며 5년을 보내는 동안

중학생이었던 나도 어느새 고등학교 3학년 수험생이 되었다.


내가 수험생인 동안 학업에 집중할 수 있도록 그는 군대에 다녀오겠노라 했다.

하지만 나를 위해 내린 그의 일방적인 결정은 내게 마치 이별 통보 같기만 했다.


보고 싶을 때 볼 수 없다니.

만나고 싶을 때 만날 수 없다니.


고등학생 시절 나는 모범생도 우등생도 아니었기에

그의 빈 자리를 공부가 대신 해 줄 리 없었다.

누구 맘대로 학업에 집중하라는 것이며 누구 뜻대로 군대를 간대?

감히 나한테 상의도 한 번 없이?




앞서 말한 바와 같이 그와 만나던 때만 해도 나는 당연히 결혼은 그와 할 줄 알았다.

우리는 서로에게 놓을 수 없는 오랜 연인이기도 했고, 서로에 대한 애정도 함께이기 충분했다.

서로의 부모님도 업무로 이미 알고 계시던 사이였기에, 숨길 것도 포장할 것도 없는 양 가였다.

우리를 아는 모두에게 우리는 한쌍의 양말이나 한 켤레의 신발처럼 서로가 지극히 당연한 관계였다.

그래서 그와 내가 평생을 함께 하는 것은 우리 둘 모두에게 이미 결론이 나 있는 미래였다.


병이다 싶을 정도로 나를 예뻐해주는 그의 지나친 사랑도 나는 좋았다.

더 사랑하는 쪽이 약자이듯 내 말 한마디에 웃고 우는, 내 맘대로 다 되는 그가 좋았다.

사랑하면 그처럼 상대의 모든 것을 다 갖고 싶어하고 매 순간 안달내하는 줄 알았다.

잠시라도 연락이 안되면 어디에 있든 나를 찾아왔고,

조금이라도 내가 늦으면 그는 이미 나를 향해 오고 있었다.

그는 질투가 많은 나보다 훨씬 더 소유욕이 강해 나를 충분히 감당했고,

그의 갑갑할 정도로 집착하는 사랑도 나를 흔들리지 않게 잘 잡아주는 지지대였다.


그런게 사랑이고, 사랑하면 당연히 그러는 줄 알았고, 사랑하는 모두가 그러는 줄 알았다.

첫사랑인 그가 보여준 모든 것이 내 사랑의 기준이자 지침이 되었다.



고등학교에서도 대학교에서도 노트 필기는 한 장도 하지 않았으면서

내가 헤어지자고 할까봐 겁이 난다며

눈물로 쓴 편지를 몇 장이나 몇 번이나 써 건네주던 그를.

나는 입대를 앞둔 시점에 무참히 버렸다.


"5년 만났어도 2년은 못기다리겠다.

나는 그냥 고무신 안 신고 말란다.

정 다시 만나고 싶으면 제대하고 오든지."


어쩔 수 없이 내 곁을 잠시 떠나야 한다는 그를 나는 영원히 떠나보냈다.

혼자를 견디지 못할 나는 재빠르게 군대를 전역한 남자로 벌써 환승을 해버렸다.


그는 우리의 이별에 처절히 무너졌고 그 어느때 보다 많이 울었고 삶이 휘청일 정도로 힘들어 했다.

피하기 바쁜 나를 찾아와 군대를 미루겠다며 회유하기도 했고,

내가 원한다면 자신의 몸을 부셔서라도 군 면제를 받겠노라 했다.


그로부터 한 발짝 멀어지니 그의 말이나 그의 행동이 더이상 사랑처럼 보이지 않았다.

정말 그렇게까지 할 용기도 없으면서 들으랍시고 내뱉는 그의 말이 참 배려심 없게 느껴졌다.

나는 단 한번도 그를 배려하지 않았으면서, 그가 나를 배려하지 않는 것에 분노했다.

몇 번이고 찾아오는 그를 무시하고 내치면서 그랬다.


"꺼져. 꼴도 보기 싫어. 차라리 죽어버리던지. 나 새 남자친구 생긴 거 몰라?"


그보다 더 나이가 많고, 군대도 다녀왔고, 직업으로 운동을 하는 새 남자친구의 존재를 알린 후에야 그는 나를 찾아오는 것을 멈추었다.


물론 나와 완전히 헤어진 후 그는 죽지 않았고, 군대도 잘 다녀왔으며,

대학 졸업 후 부모님의 일을 물려 받아 가게를 잘 운영하고 있으며,

좋은 여자를 만나 연애를 하고 결혼까지 빨리 했다고 한다.


나 다음 번에 힘들게 정착한 여자는 그를 무지하게 좋아한다는데, 이번엔 그가 못되게 군다했다.


나는 그 이후에 만난 남자들에게 그가 나를 대하듯 하는데,

그는 나 이후에 만난 여자에게 내가 그를 대했듯 한다했다.


시간이 많이 지난 어느날 우연히 만나 그 말을 전해주던 그의 친구이자 나의 지인이 웃었다.

병신 같은 것들이 골고루 삽질을 하며 산다고.


나 때문에 실컷 아팠을 그가 새로운 사랑으로 치유받고 상처를 회복하였기를 바라본다.

수십 번도 더 그를 울렸던 나는 지금 달게 벌을 받고 있으니,

그가 나를 떠올렸을 때 너무 억울해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사랑했다는 기억까지는 부정하지 않겠다.

하지만 그와 내가 처음이어서 서툴렀던 우리의 사랑법은 정말 잘못되었었다.

이건 그도 인정하지 않을까 싶다.


자신을 태워 없애야 하는 양초같은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그도 이젠 알지 않을까?

사람 마음 가지고 장난질이나 치며 사랑을 내뱉던 나의 가벼움도 제대로 된 사랑은 아니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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