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추를 달고 나와서 이렇게 좋은 걸까? 하고 스스로에게 물어봤다. 고민 할 것도 없이 반은 맞는 말이다 싶지만 그렇다고 또 다 맞는 말은 아니다.
이미 딸 둘을 낳아 키우며 기다리고 기다리던 아들이라서 물론 좋은 게 크겠지만. 사실 아들이 이렇게 조건 없이 맥락 없이 좋은 것은 남편의 나이 마흔두 살, 내 나이 서른여섯에 얻는 늦둥이인 탓이 크다.애 둘을 먼저 키워본 후에 낳은 막내이다 보니 성별과 상관없이 그저 어리게만 보이고 귀여운 것이다.
우리 집 큰딸은 타고난 맏이 답게 돌도 되기 전부터 뭐든 혼자 스스로 하려 했다.
우유를 쏟는 걸 제일 싫어하는 엄마 눈치를 보며 혼자걸레질을 할 정도로 눈치도 빨랐다.
한글도 혼자서 뗐고, 걷기도 말하기도 빠르다고는 할 수 없지만남들에 뒤처지지 않고, 남 보다 못한 것이 없었다.
착하고 순해서 남들 눈에도 기특한 아이였지, 뭐 하나 모자라서 나를 걱정시킨 적도 없다.
하지만 막내인 아들 녀석은 내가 그에게 바라는 바가 너무 없어 그런지, 또래 친구들보다 한참 덜 컸고 하는 짓도 덜 야무지고 덜 약았고 뭐든 조금씩 모자라다.
가끔 누나들에게 대차게 대들며 싸울 때 보면 그동안 가면을 쓴 건가 싶을 때도 있지만,보통 때의 우리 아들은 순하고 퍼주기 좋아하고 정도 많고 사랑도 넘친다.
"내가 얼마나 사랑하는데!"
내가 아들에게만 하는 사랑고백이다.
얼마나 사랑하는지 그 마음을 다 표현할 우 없어서 쓰기 시작한 말이다.
사람이 이렇게 좋을 수가 있을까?
그저 바라만 봐도 좋은 사람, 함께 있지 않을 때에도 보고프고 그리운 사람.
미안하지만 나는 남편보다 아들이 이제 훨씬 더 좋아진 것 같다.
브라키오처럼 크고 싶은 아들이 내게 선물해 준 브라키오 장난감
어제 아침, 잠에 취해 일어나지 못하는 아들을 등원시키기 위해 깨웠다.
뽀뽀도 퍼부어 보고 쭉쭉이 마사지도 해주었다.
하지만 비몽사몽 하는 아들은 도무지 일어나려 하질 않았다.
에라 나도 모르겠다~ 아들의 한쪽 팔을 펴고 팔베개를 하듯 그 위에누웠다.
가끔 아들은 내게 '엄마 팔베개 해줄게' 하고 그 작고 여린 팔을 내밀어 준다.
지금은 비록 잠에 취해있지만, 자느라 보지 못한 그리움을 핑계로 작아도 든든한 존재인 아들을 느끼고 싶다.
"히잉. 내가 얼마나 사랑하는데! 왜 안 일어나. 밤새 얼마나 보고 싶었는데! 엄마 안 보고 싶어?빨리 일어 나!!"
남편에게도 보이지 않는 애교를 떨며 투정 부리듯 사랑고백을 했다.
그러자 아들이 팔베개하느라 펴 둔 팔을 접어 내 머리통을 안아준다.
"..... 보고 싶었지."
눈도 제대로 못 뜨고 대답마저 한 박자 느리면서 사람 마음을 이렇게 순식간에 들어 올리는 아들.
"엄마 보고 싶었어? 진짜? 그럼 이제 일어나서 엄마 좀 봐 봐."
눈을 뜨려고 노력을 하는데 눈꺼풀이 까뒤집어질지언정
도무지 눈이 떠지지 않는 아들을 보니 웃음이 나왔다.
"히히, 그렇게 졸려? 그러니까 일찍 좀 자라니까!"
"졸려. 더 자고 싶어."
이제는 두 팔로 내 머리통을 안아주며 어린이집에 가고 싶지 않다는 신호를 보낸다.
대화가 두 마디 이상 되었으니, 신체적으로는 잠에서 다 깨지 못했을지언정 정신은 다 깬 것 같다.
(눈 뜨면 정신 드는 나이기에 눈 뜨는 것과 정신 깨는 것이 별개인 우리 집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지만
살다 보니 그들은 나와 달리 정말 그러하기에 이제는 그냥 인정을 한다.)
"진짜 늦었다. 빨리 밥 먹고 씻고 어린이 집 가자!"
어린이집을 보낸다는 내 말에 내 머리카락을 쥐어뜯을 듯 잡는 아들놈의 악력을 느끼며 나는 아들을 안아 올렸다.
"꼬꼬가 쉬 마렵대! 이야 그러고 보니 오늘도 오줌 안 쌌네! 우리 아기 이제 진짜 형님이네!"
밤새 이불에 오줌 싸지 않은 기본의 기본을 칭찬하자
그제야 내 머리카락을 쥐고 힘을 준 손이 스르르 풀린다.
늦어서 작은 그릇에 뜬 아침밥을 급히 먹인다.
급한 것도 있지만 우리 아들은 아직도 내가 떠먹여 줘야 한다.
어지간한 일이 아니고서는 먹여달라고 숟가락도 들지 않는 아들이다.
첫 딸은 12살이 될 때까지도 내게 먹여달란 말을 했다.
거기에 비하면 절반 밖에 안 먹였으니 아직은 더 먹일만하다.
늙어가는 어미는 밥을 떠 먹이면서도
나중에 내가 숟가락 들 힘이 없을 때, 과연 어느 자식이 나를 먹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
숟가락 들 힘마저 없을 땐 누군가에게 짐이 되느니 차라리 죽고 없었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도 한다.
그런 내 생각이 하등 쓸모없다는 걸 깨닫게 하는 건 역시나 아들놈이다.
기껏 떠 먹인 밥을 씹는 속도도 느려 사람 복장을 터지게 한다.
늙어서 밥을 떠먹든 떠주는 밥을 먹든 그게 뭐가 중요하나.
지금 이 자식이 밥을 더디 먹어 내 숨이 넘어가게 생겼는데!
"아들! 빨리 먹어! 씹어!"
"먹고 있어, 엄마! 사랑해!"
내 목소리가 낮아지자 아들은 필살기 애교를 꺼낸다.
사랑한다는 말은 언제 어디서 들어도 참 좋은 말이다.
사랑한다고 말하는 아들의 볼은 밥으로 가득하지만 더없이 사랑스럽다. 이럴 때 보면 우리 아들은 엄마가 어디에 약한지 정확히 아는 것도 같다.
"엄마도 우리 아들 사랑해! 내가 얼마나 사랑하는데!"
우리 아들에게만 해주는 나의 사랑고백이 또 나온다.
시도 때도 없이 사랑 고백을 해도 이 내 마음을 네가 다 알까 싶지만,속 없게 나는 대번에 아들의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에 또 정신줄을 놓아버렸다.
"엄마가 우리 아들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아?"
"알지!"
"얼마나 사랑하는데?"
"엄마는 내 방귀 냄새도 좋다고 하고 내가 싼 똥도 이쁘다 해. 엄마는 그만큼 나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