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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딱좋은나 Jul 27. 2023

깨진 환경에서 루틴 유지하기는 불가능

안되는 일은 빠른 포기가 답이다.

나의 일과는 특별할 것도 없고 별 거 없기도 하다.

뫼비우스의 띠를 반복하여 완주하는 것처럼 매일 매일 거의 똑같은 하루지만

일을 하고 육아를 하고 공부를 하며 살림을 하고 있다보니,

매 시간을 정해진 시간표대로 살지는 못해도 나름 루틴에 따라 해야할 일 정도는 있다.


누가 시킨 게 아니니 반드시 지켜야 되는 것도 아니고,

계획대로 하지 않으면 병이 나거나 불안한 성격도 아니다.

하지만 며칠 전 아이들이 방학을 하고 나니

깨진 환경으로 루틴까지 엉망진창이 되어

매 순간 마음대로 안되는 내 일과에 부들부들 하게 된다.




깨진 환경에 덩달아 깨진 건 나의 루틴일 뿐인데,

어쩐지 내 분노가 조절 되지 않는다.


"빨리 일어나서 씻고 빨리 나가!!!!

애들이 보잖아, 애들한테 본보기가 돼야지!

아빠가 늦잠자고 늑장부리면 어떻게 해!

아휴! 쟤들이 누굴 닮았겠어! 뭘 보고 배우겠냐고!

내가 못살아 진짜!

뭐해! 빨리 안 나가고!  빨리 나갔다가 빨리 들어와!!!!!"

하고 괜히 남편에게 짜증을 내게 된다.



"야이것들아!!! 빨리 자!!!! 빨리 일어나!!!!

티브이 꺼!!! 패드 꺼! 리모컨 이리 가져와!

너 지금 뭐하고 있어? 하루 종일 뭐 했어?

해야되는 거 다 했어? 하라는 건 다 했어?"

하고 하루에도 열두 번도 더 아이들을 닥달하고 목소리를 높인다.



하도 화를 내고 짜증을 내니 아들이 코 앞까지 얼굴을 들이 밀었다.


"엄마는 누나들때문에 화가 나도 내 얼굴만 보면 웃으니까,

자! 귀여운 엄마 아들 얼굴, 이제 웃어!"


듣기만해도 기분 좋아지는 예쁜 말을 그렇게나 사랑하는 아들이 해주는데도

이번엔 어찌된 게 도통 먹히지 않는다.


"야! 아들! 넌 내일도 어린이집 가거든!

넌 방학 아니야! 넌 왜 덩달아 안자는데! 빨리 자!"


얼굴만 봐도 기분이 좋아지던 아들에게도 결국 노여움의 불똥이 튄다.




아이들이 방학을 한 이후로 며칠동안 정말 모든게 엉망진창이다.

잠이 드는 시각과 일어나는 시각이 늦어지니

자연히 아침을 먹는 시간도 늦어지고 일상의 시작이 늦어진다.


오후 내내 일하는 나는 오전 시간만 자유롭다.

오전 시간에 집안일을 하고 공부도 하며 글쓰기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오전 시간이 방학으로 인해 붕괴되니 남은 것은 짜증과 화뿐이다.


오전 두 시간 정도 집중하여 바삐 움직여야만 집안일을 겨우 끝낼 수 있다.


하루에 나오는 수건만 10~15장에 옷을 서너 번씩 갈아입는 식구들 덕에 세탁물은 늘 넘친다.

수건, 밝은 옷, 유색 옷 등으로 나누어 세탁을 하다보니 우리집 세탁기는 늘 바쁘다.

거기다 이불 빨래도 자주 하는 편이다보니 세탁기가 쉴 새가 없다.


세탁기를 돌려놓고 식세기를 동원한 후 손 설거지를 하고

무선청소기와 로봇청소기의 힘을 빌렸다가 마무리로 걸레질까지 끝내면

그제야 마지막으로 세탁된 옷을 건조기에 넣을 수 있다.

빨래 개기는 늘 다음날이나 저녁으로 미뤄야 한다.


이 모든 것을 하는데 대략 두 시간 정도가 소요되고

자주 한다고 하는 화장실 청소나 가스렌지 청소를 하게되면 시간도 더 늘어난다.

5인 가족의 옷장 정리나 펜트리 정리 같은 일은 날을 잡고 해야 할 정도이다.


그러나 아이들 방학이 시작된 이후

청소가 끝날 시간이 되어서도 소파에서 뒹굴거리며 티비를 보는 사람들이 집을 지키고 있으니

나까지 덩달아 에라 모르겠다며 드러눕게 된다.


깨진 환경에서도 고집스럽게 내 루틴을 유지할 수가 없다.

내가 그렇게까지는 독하지 못한 인간이기 때문이다.


가족들과 살 부비며 편히 누워있는 몸과는 달리

머리는 해야 할 일들이 앞을 다투어 떠올라 복잡하고,

움직이지 못하는 몸 대신 마음은 급해지기만 한다.


그냥 내려놓으면 될 건데 하지도 않을 거면서 뭘 그리 못 내려놓고 혼자 끙끙하냐는 남편.

나를 아주 잘 아는 사람이다보니 아주 맞는 말만 딱딱 골라한다.

그러니 들이 받지도 못하고 내 속만 그저 약이 바짝 바짝 오른다.


결국 이리 저리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일단 때려붓는 앵그리버드가 된 나의 욕받이가 된 남편이 말했다.


"3주만 참아."


속 좋은 남편은 여름방학이 3주로 짧은 게 어디냐며 아주 쉽게 말한다.

콱! 한대 쥐어박았으면 좋겠을 정도로 얄밉다.


세탁기에서 매일 쏟아지는 수건 수 십장이 안방을 이리저리 굴러다녀도

단 한 장을 개어주지 않으면서 집안일 밀린 것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 말만 잘한다!


출근에 늑장 부리고 있길래 청소기라도 좀 돌려달라 하면

그제서야 바쁘다 출근해야한다며 꽁무니가 빠지게 도망가버린다.


어차피 자신이 조절하는 일이면서 시간이 날 때마다 아이들 데리고 오전에 좀 나가주지.

박물관이나 유적지 투어라도 해주면 참 좋겠구만 내 맘 같지 않다.

남편은 더위나 비를 이유로 집이 최고라며 아이들이 집에 머무르도록 한다.

내 아이를 위한 경험이나 살아있는 교육에도 참 도움이 안된다.


미워 죽겠는 남편은 하나도 내 맘에 드는 건 없으면서 말은 청산유수다.

말하는 것만 들어보면 남편은 모든 것에 관대하고 통달한, 하산 직전의 도인이다.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는 주뎅이 도인 (솔직히 아가리라고 쓰고 싶었지만 참았다).




집안일과 남편의 일을 돕고 오후 내내 내 일을 하는 것을 제외하고도

나는 밤 10시만 되면 웹소설과 웹툰도 읽어야 하고,

잔뜩 사놓은 김혜남님의 책도 읽어야 하며,

일을 하는데 있어 감을 잃지 않기 위해서 문제집도 풀어야 하며,

아무에게도 말 하지 않아 심해작이지만 일주일에 2~3 번 정도 네 번째 웹소설도 연재하고 있으며,

학점은행제로 6월부터 시작한 사회복지사2급은

당분간은 강의 뿐만 아니라 중간고사도 있고, 7과목의 리포트도 작성해야한다.

거기다 브런치에 일기 처럼 쓰는 에세이는 취미이자 휴식인 덤이다.


아이들 방학은 안그래도 할 일 많은 내게 엎친 데 덮친 격이긴 하지만 그래도 못할 건 아니다.

육아는 어차피 아이들이 큰 몫을 하지 나는 그리 전투적으로 양육하고 있지는 않다.

나머지는 순전히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니까 충분히 체력적으로 정신적으로 해낼 수 있다.

단지 앞으로 3주동안은 기상 시간을 당기고 취침 시간은 미뤄야 하겠지만 못할 정도는 아니다.


비록 내 열정이 뒷심 없는 치타처럼 빨리 식어버려 그렇지,

하는 동안만큼은 과정과 결과에 상관없이 자기 만족 하나로 최선을 다해 참 열심히다.

나는 그렇게 살아왔고, 그렇게 살고 있는 사람이다.

언제까지 될 줄은 모르지만 팽팽하게 당겨진 지금의 긴장을 아직은 놓고 싶지 않다.


그래서 못놓고 있었다.




그렇지만 단 몇 일만에 결국 기권했다.

깨진 환경에서 루틴을 유지하는 건 포기다.

포기는 빠를 수록 좋은 거란 걸 알면서도 미련스레 붙잡고 있었다. 깔끔하게 접고 보니 이리 쉬웠던 것을 무엇 때문에 그리 어렵게 잡고 있었나 싶다.


결론이 났다.

깨진 환경에 루틴을 유지하는 것은 어렵다.

아니, 불가능하다.

그냥 새로운 루틴을 짜는 것이 차라리 쉽겠다.


오전에 못한다면 새벽에 일어나면 될 일이다.

새벽에 일어나지 못한다면 밤에 하면 될 것이다.



기상시간과 취침시간을 조절해본다.

나를 제외한, 성씨가 같은 4인이 똘똘 뭉쳐 주야로 티브이 앞에 앉은 시간을 노려봐야겠다.

세상에 재밌는 볼거리가 참 많은데 그걸 놓치는 게 안타깝지만 어쩌겠는가.

나를 위한 시간은 오로지 이 때만 가능한 것을!


내가 하는 거의 모든 것들이 자기 만족을 위해서 이니까,

굳이 유지하는 것보다 바꿔 가면서도 해나가는 게 결국엔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3주 뒤에는 브런치스토리에 지금처럼 굿나잇이 아닌 굿모닝! 할 수 있길 바라본다.

큰딸의 그림이지만 지금 딱 내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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