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사진과 영정사진1

아빠가 119에 실려 갔다!

by 딱좋은나

2022년 추석이 얼마 지나지 않은 어느 평범한 날이었다.

아무 생각 없이 청소에 집중하고 있던 때 날카롭게 울리는 전화벨, 남동생이 급하게 연락이 왔다.



"누나야, 아빠 119 실려 가셨다!"



친정아빠가 가슴 통증을 호소하시며 자신의 손으로 119에 전화를 걸어 병원으로 가셨다는데,

병원에서는 보호자가 동행을 하여야만 진료를 봐주겠다 했단다.


아빠의 휴대전화로 119 구급대원과 통화한 동생은

외근 중에 급히 차를 돌려 아빠의 병원으로 가는 중에 내게 전화를 걸었다.


상세한 내막은 모르지만 심장이 터졌다 하니 일단 나도 부산으로 빨리 와야 할 것 같다했다.

수화기 너머 내 남동생의 목소리는 그 어느 때보다 떨리고 있었다.




아빠는 코로나 예방접종 2차 이후에 없던 부정맥이 생기셨다.

그것도 모르고 3차까지 다 맞았다며 어찌나 억울해하셨는지 모른다.

어쩌면 코로나 백신후유증일지도 모른다는 소릴 뒤늦게 들으시곤 노발대발 하셨다.

하지만, 그 인과관계의 입증을 아빠가 해야하고 그 결과를 국가로부터 인정 받는 것도 하늘의 별따기란 의료진의 말에 아빠는 그냥 지병처럼 부정맥을 받아들이고 심장약을 드시게 되셨었다.


그런 아빠가 심장을 부여잡고 119에 실려갔다니 온 집안에 비상이 걸렸다.




동생의 전화를 받자마자 머릿속에 해야할 일들이 차례로 떠올라 동생에게 몇 가지 지시를 했다.

누굴 닮았는지 큰 일일수록 내 머리는 감정보다 이성의 지배를 더 받는 편이다.

혼자서 어영부영하고 있을, 담이 작은 동생 걱정도 되었다. 그래서 더 강하고 단호하게 얘기했다.


"내 지금 바로 비행기 타고 내리갈께. 공항에서는 택시 타고 병원으로 갈게.

엄마는 요새 지방 가서 일하고 계시니까, 일단 병원가서 아빠 상태 확인한 후에 엄마 오시라고 해라,

그리고 올케는 애도 있고 하니까 오더라도 일 다 마치고 나중에 오라하고.

그리고 니는 병원가서 담당의 만나서 아빠 상태부터 확인하고 우찌되는지 연락해라....."


어떤 상태인지 몰라서 더 걱정되는 아빠가 내가 가기 전까지 버텨주실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급한 마음에 동생과 통화를 하면서도 나는 빠르게 항공사 어플을 열어 비행기를 예매했다.



정신 없이 연락을 돌려 일을 뺀 나는 부산으로 가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 남편을 호출했다.

내 연락에 출근하자 마자 되돌아온 남편의 얼굴을 보았을 때야 비로소 나는 울음이 터졌다.

그는 내가 부러 강한 척을 하지 않고 약한 모습을 보여도 되고, 마음껏 무너지고 울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다.


공항으로 날 데려다주는 남편에게 아이들 케어를 부탁하면서도

꼭 혼자 다시 돌아올 수 있길, 남편과 아이들이 부산으로 오는 일은 없길 바라고 바랐다.

어쩐 일로 따라 나서더라 하며 우리가 추석 연휴동안 함께 보낸 시간이 마지막이 아니길 빌기도 했다.


남편 앞에서 한번 눈물이 터졌던 터라 부산으로 가는 내내 몇 번이고 마음이 울컥 울컥했다.

아빠 또래의 아저씨들만 봐도 코가 아릿했고, 부녀 관계의 가족만 봐도 눈이 매웠다.


순간 순간 덜컥하고 내려앉는 심장을 부여잡고 울지 않으려 눈에 힘을 주고 또 주었다.

엄마와 동생을 위해서라도 나는 무너지면 안된다고 생각했다.

40분의 비행시간 동안 슬픔과 아픔을 참아내느라 내 심장도 고통스러웠다.








김해공항에 내리자마자 빠르게 내려 평소엔 잘 타지 않던 택시에 올랐다.


"아저씨 @병원요!"


직업군인 출신 택시 아저씨는 병원으로 가자는 내게 이것 저것 물으셨다.

막히는 동서고가도로에서 결국 울먹이는 나를 진정시키려고 아저씨는 자신도 전역 후 쓰러졌었던 이야기를 해주셨다. 당신도 이렇게 회복했으니 자신보다 더 젊은 우리 아빠도 괜찮으실거라며 위로해주셨다.


아저씨의 덕담에 감사 인사를 하고 택시에서 내리자 마자 병원 중환자실로 갔다.

동생의 부탁과 병원의 배려로 중환자실에 들어가 겨우 5분 남짓동안 마주한 아빠는

곧 죽을 사람처럼 까만 얼굴로 누운 채 힘 없이 나를 반기셨다.


"추석에 봤는데 본 지 얼마나 됐다고 또 딸래미를 이래 불러들이노! 그래 내가 보고싶드나!"


핀잔 섞인 말을 하면서 소리가 몇 번이고 울음에 먹혀 들어갔다.


"아이고 니까지 왔나, 만다꼬 왔노. 비행기 값도 비쌀낀데. 괜찮다니까. 고마 집에 가면 좋겠구만."


"가기는 어딜 가노. 얼굴이 시커매가 다 죽어가는 거 같은데! 진짜 죽고 싶나 집에 가게!"


걱정에 역정을 내던 그때, 누군가 나를 톡톡 건드리며 불렀다.

위급 상황에 연락을 드리겠다며 내게 연락처를 적으라던 남자 간호사.

그의 말투는 굉장히 사무적이었지만, 나를 보는 눈빛은 퍽 짠했다.

그 눈에서 우리 아빠가 정말 당장에라도 죽을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했다.


병원에서 검사한 결과로 아빠의 심장이 아직은 터지지 않았다 했다.

아빠가 드시는 심장약 중에 혈전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 약이 있는데 그걸 한달 전부터 뺐다고 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아빠가 그 약만 딱 빼달라고 요청했다는데, 그 약을 뺀 것이 아빠를 살렸단다.

그 약 덕에 진즉 터져버렸을 심장 대동맥류가 터지지 않고, 혈전이 된 핏덩이 사이로 겨우 붙어있다고 했다.

하지만 혈관 상태가 좋지 않고 무엇보다 심장도 온전한 상태가 아니기에

혈압이 제 멋대로 날뛰며 올라 조절이 되고 있지 않는게 지금 상태에선 가장 문제라 했다.


그 말인 즉슨, 오늘 밤이라도 당장 아빠는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119로 실려온 이 병원이 비록 종합병원 간판을 달고 있기는 해도

아빠의 심장을 수술할 수 있는 의료진이나 장비가 없다했다.


평소 진료를 보고 약을 타러 다니시던 병원이라 부러 이리 온 것이라는데

수술이 안되는 이 병원에서 아빠를 위해 해줄 것은 없었다.

그저 아빠의 심장을 최대한 늦게 뛰도록 하는 약을 주입하며 혈압을 안정시키는 게 최선이었다.


"그렇다고 지금 이대로 다른 병원으로 옮기시면, 가는 중에 진짜 터지실 수도 있습니다.

응급실에 무작정 간다고 해서 수술이 되거나 병실이 있다는 보장도 없구요.

수술 가능한 병원으로 저희가 최대한 빠르게 전원하실 수 있도록 알아봐드리겠습니다."


아빠의 심장 히스토리를 처음부터 다 알고 계시는 담당의의 만류로 일단 기다리기로 했다.

그리고 몇 시간 후에 **대학교병원으로 전원이 가능하니 다음날 전원하자는 연락을 받았다.


아빠를 살릴 수 있겠다는 안도가 들었다.

아빠가 없는 친정집으로 돌아온 나는 나처럼 급히 부산으로 온 엄마 옆에 꼭 붙어 잠을 잤다.

우리 아빠가 정말 죽을 건 아니었는지 내 불안한 마음과는 별개로 여느날과 다름없이 꿈 한번 꾸지 않고 잘 잤다.


다음날 약빨을 잘 받은 탓인지 전 날보다 아빠의 상태가 한층 안정적이라고 병원 측은 말했다.

심혈관은 보통 터져서 병원에 오는데 아빠는 터지기 직전에 온 특이 케이스라 **대학교 병원에서도 흔쾌히 받아주었다는 말도 덧붙였다.


아빠를 살리기 위해 병원을 옮겨가기 위해 사설 구급차를 불러주었다.


"가셔서 수술이든 치료든 꼭 잘 받으세요!"


가족이 아님에도 병원 관계자 중 누군가가 이야기 해주었다.

정신없는 와중에도 그 말이 참 고마웠다.


아빠를 살릴 수 있을 것 같단 확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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