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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딱좋은나 Aug 01. 2023

지금 빨리 달 좀 보세요!

크고 예쁜 보름달이 떴어요

"산책 갈까?"


늦은 퇴근을 하고 식사를 마친 남편이 물었고 저는 흔쾌히 따라나섭니다.


우리는 이혼남 이혼녀가 되어 이 동네에 이사 온 후부터 자주 산책을 하고 있습니다.


술을 먹고 술을 깨느라

밥을 먹고 소화 시키느라

애가 타서 애를 식히느라

화가 나서 화를 삭히느라


기분이 좋을 땐 손을 잡고 걷고

기분이 나쁠 땐 저만치 떨어져 앞서거니 뒷서거니 합니다.


할 말도 없고 말하기도 싫은 날엔 오만 핑계로 조금만 걷고

얘기가 길어지면 둘러 둘러 많이 걸었습니다.




산책 전 양치를 하는 날 대신해

먼저 나가 쓰레기를 버리고 있는 남편에게 다가갑니다.


"큰 딸도 나온다는데 안된다고 했어." 하니,

"따라 오지 말라 그래. 겨우 떨어뜨려놨구만." 합니다


"뭘 떨어뜨려?" 하고 물으니

"잠시라도 애들하고 떨어져서 너도 숨 좀 돌리고 쉬어야지."하는 기특한 대답을 합니다.


아무리 좋은 엄마라도 애셋과 24시간 붙어 있으면 악해질 법도 한데 저는 원래부터 그리 좋은 엄마는 아니니 오죽할까요.

폭탄이 터지기 전에 한김 식혀줄 처리반이 등장한 거네요.


"소화가 안되서 나오자는 줄 알았지." 하고 말은 하지만 나를 생각해주는 그의 마음이 오늘도 고맙습니다.




그러나 감동은 언제나 순간이고 찰라이죠.


와다다다다하는 발소리와 짜잔, 큰 아이가 등장합니다.

 "나도 같이 가!"



"들어가라. 엄마아빠 시간 좀 갖게."


단박에 남편이 거부해보지만 큰딸은 아빠를 피해 엄마 옆으로 와 내 손을 꽉 잡아옵니다.


가뜩이나 오늘 낮 둘째와 셋째로부터 따돌림을 당해 기분이 안좋은데 엄마아빠마저 저를 거부하니 속이 상한 듯 합니다.



"이왕 나온 거 같이 걸어. 우리까지 얘 거부하면 얘 오늘 너무 슬퍼." 하고 속사정을 아는 엄마가 겨우 받아주니 딸의 기분이 바로 좋아집니다. 지금부터 산책하는 동안은 외동딸이 될 수 있는 절호의 찬스입니다!


"와! 엄마 저기 달 좀 봐!  오늘 달 진짜 크고 둥글고 밝아!"


얼른 화제를 돌린다고 돌린 달 얘기일텐,  딸 말을 듣고 보니 오늘 뜬 달이 정말 이쁘네요.

가슴이 먹먹할 정도로요...







달구경과 함께 산책을 하며 오늘은 큰아이와 잠시나마 오붓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어요. 아직 키는 나만큼 크지 못했지만 벌써 나보다 손도 발도 더 커진 큰 딸이 자랄 모습이 기대되는 밤입니다.






어서 창 밖의 달을 한 번 올려다보세요.

아주 크고 둥글고 밝은 달이 기분까지 바꿔줄 거에요.

오늘 하루도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굿나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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