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와 체념, 그 경계에 대하여

by 해사

나이가 들수록, 나는 나를 잘 안다고 믿는다.
무엇을 하면 잘하고, 무엇이 기쁘고, 무엇이 편안한지.
그리고 반대로, 어떤 일은 애써도 안 된다는 것도.

이건 해도 안 돼. 그 시간에 다른 걸 하는 게 낫다.


조금만 무리해도 오래 회복해야 하는 체력은, 나를 에너지를 아껴 쓰게 만든다.
해야 할 일만으로도 하루가 금세 소진되니까.

수년간의 경험은 가능과 불필요를 가려냈다.
마치 처음 가는 여행지에서, 낯선 골목을 외면한 채 평점 높은 음식점만 골라 다니는 여행자처럼.
안전하고 검증된 길만 걷는다.


포기가 빨라진 데는 이유가 있다.
첫째, 줄어든 체력.
둘째, 나를 너무 잘 알게 된 것.
20·30대의 무모함과 시행착오 끝에, 잘하는 것과 편한 것, 그리고 가치 있는 것을 알게 됐다.
그래서 미리 손을 뗀다. 실패할지도 모를 일 앞에서.


그렇다면 이제, 무작정 부딪히고 울고 웃던 날들은 끝난 걸까?
밤을 새우던 친구들, 그 시절의 웃음소리, 버스 창에 비친 피곤하지만 반짝이던 얼굴.
아무 이유 없이 길을 걷다 발걸음을 멈추던 순간들.
아, 갑자기 그 모든 것들이 아련하다.


그렇다고 포기가 꼭 나쁜 건 아니다.
그렇게 아낀 에너지는 깊어짐으로 향했다.
인간관계는 넓기보다 깊어졌고, 취미도 좁고 깊게 바뀌었다.
편안함을 주는 한계까지 울타리를 치고, 그 안에서 나를 지킨다.


그러나 경계는 나를 지키는 동시에, 나를 가둔다.
때때로 나는 깊어지는 대신, 넓어질 기회를 잃고 있는 건 아닐까 생각한다.

20대의 무모함은 허황됐지만, 그 덕에 멀리 가고, 뜻밖의 기쁨을 맛봤다.
문득 생각나는 무모했지만 낭만적인 기억들이 있다.

밤기차를 타고, 낯선 골목을 헤매다, 길모퉁이에서 뜨거운 국물을 마시던 순간.
그 시간에는 세상이 크고 넓었다.

지금의 나는 지도 위 안전한 길만 걷는다.
길을 잃을 위험은 줄었지만, 숨겨진 골목을 발견하는 설렘도 함께 줄었다.

나이 듦이 준 현명한 포기와 적정한 경계는 분명 소중하다.
하지만 가끔은, 그 경계를 넘어가 보고 싶다.

뭐가 맞는지는 여전히 나는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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