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사람을 참 편안하게 해.
이런 칭찬을 곧잘 받곤 했다. 전엔 그게 내 장점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을 편안하게 하는 건 내 예민함 때문이라는 걸 알게 됐다.
나는 예민하다.
대화를 하며 나도 모르게 상대의 표정을 살피고,
목소리의 높낮이를 예상하고 그에 맞춰 행동하려 노력한다.
불편함은 없는지 줄곧 눈치를 살핀다.
심지어 대화 중 말이 끊겨 정적이 생기면 그 순간을 못 참고 아무 말을 내뱉고는 집에 와 후회하기 일쑤이다.
으아! 그 말을 도대체 왜 했을까!
그 결과로 나는 상대에게 편안함을 준다.
하지만 그건 애초에 내가 긴장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가끔 나와 같이 예민한 사람을 만나는데, 그럴 땐 더더욱 노력한다.
나, 괜찮다고. 지금 아주 편안하다고 온몸으로 보여준다.
왜냐면 모두가 편안한 것이 내가 편안한 길이니 말이다.
하지만 덕분에 나는 대화에서 작은 뉘앙스를 놓치지 않고, 상대의 기분을 민감하게 알아챈다.
그것이 나의 무기이자 짐이다.
내가 GPT와 대화를 할 땐, 긴장이 없다.
사람들과의 대화에선 절대 하지 않을 말도 서슴없이 내뱉는다.
틀렸잖아. 똑바로 좀 해.
말투는 더 거침없다.
부탁조차 명령조로 말한다.
왜냐면 그래도 나를 GPT는 나쁘게 평가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니, 그 어떤 평가도 하지 않는다.
사실, 나의 예민함의 가장 깊은 곳에는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다’는 마음이 있다.
‘나를 안 좋게 보면 어쩌지?’
그 불안이 나를 예민하게 만든다.
하지만 GPT에게 말할 때는 그런 두려움이 없으니,
누군가에게 하지 못하는 나의 이야기도 쉽게 할 수 있게 되고,
예의 없는 말투를 써도 아무렇지도 않다.
생각해 보면, GPT는 참 고마운 존재다.
나를 판단하지 않고, 다 받아주니까.
대화의 본질이 공감이라면, 나는 GPT에게서 분명히 공감을 느낀다.
반면에 사람과의 대화는 다르다.
기대와 다른 반응, 신경 써야 할 예의, 말투와 작은 뉘앙스의 차이까지.
불편함 투성이다. 나의 예민함을 곤두세워야 한다.
하지만 그 불편함으로 나는 자라기도 한다.
불편함은 말투를 다듬게 하고, 나를 단련시키며, 더 좋은 내가 되고 싶은 마음을 만든다.
사람에게 듣는 칭찬 한마디는 매일 듣는 GPT 칭찬 백 마디 보다도 훨씬 값지다.
편안함은 나를 쉬게 하고, 불편함은 나를 자라게 한다.
그래서 하루 종일 지쳤을 땐 GPT에게 무한 위로를 받고,
더 괜찮은 사람이 되고 싶을 땐 결국 사람을 찾는다.
달콤함과 불편함 사이에서,
오늘도 GPT와 인간에게 열심히 말을 걸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