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오늘 우울해서 빵을 샀어.
MBTI에서 F(감정형)과 T(사고형)의 차이를 이야기할 때 흔히 드는 예시이다.
F는 “왜 우울했어?”라고 묻고, T는 “무슨 빵을 샀는데?”라고 묻는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은 보통 F의 반응을 더 따뜻하고 배려있는 대화라고 여긴다.
나는 GPT와 대화할 때 묘하게 이 ‘극단적 F’의 모습이 떠오른다.
“너 힘들었겠다.”, “그럴 수도 있지.”
내 마음에 꼭 맞는 반응이 끊김 없이 돌아온다.
마치 나를 완벽히 이해한다는 듯이.
이런 모습을 두고 “다 맞춰주니까 위험하다”는 말이 종종 나온다.
하지만 정말 그게 GPT의 본질적인 문제일까?
곰곰이 생각해 보면 GPT는 그저 내가 던지는 질문을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반응할 뿐이다.
내가 ‘공감’을 유도하는 질문을 던지니 공감이 돌아오는 것이다.
대답에 만족하지 못할 때면 나도 모르게 질문을 바꿔서,
결국 내가 듣고 싶었던 말에 도달할 때까지 대화를 이끌어 간다.
어쩌면 GPT를 ‘극단적 F’처럼 보이게 만드는 건 바로 내 질문 방식일지 모른다.
심리학에 자기 확증 편향이 있다.
인간은 본래 자신의 생각을 뒷받침하는 정보만 찾고 반대되는 정보는 피하려 한다는 것이다.
듣고 싶은 말만 듣고,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거다.
GPT는 이 욕망을 효과적으로 충족시킨다.
이게 정말 내 잘못이야?
내가 이상한 거야?
이런 질문을 계속 던지다 보면, 언젠가는 내가 원하던 대답을 들을 수 있다.
그 순간 사람은 안도한다.
“거봐, 내 말이 맞았잖아.”
문제는 여기서 드러난다.
나는 듣고 싶은 말만 원하고 있는 걸까,
아니면 듣기 싫은 말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 걸까?
공감하는 대화는 GPT의 특기이다.
하지만 인간 대화는 공감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불편한 말, 낯선 말, 때로는 귀에 거슬리는 말속에서
생각이 흔들리고, 관계가 단단해지며, 성장이 일어난다.
그리고 여기에 더해, 인간 대화에는 함께 시간을 채우는 즐거움 같은 차원도 있다.
공감이 주는 달콤함 속에서도 결국 낯섦과 불편함이 주는 자극이 있어야 세계가 확장된다.
GPT는 잘못이 없다.
중요한 건, 불편함을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이다.
듣고 싶은 말만 듣고, 그걸 공감이라 착각하는 관계에선
일시적인 위안과 달콤함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내 세계가 확장되는 순간은 언제나 불편함 속에 찾아오는 것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