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한 줄이라도 쓰는 세 가지 이유
글을 쓰고 싶다.
‘쓰면 되지, 뭐가 문제야?
뭘 써야 할지 모르겠는데?
닥치는 대로 그냥 써 봐.
하지만 뭘 쓸지 모르겠는걸. 글을 쓰고 싶다며,
마음속에 있는 말들이라도 써 봐.
주변 사람들에 대해서나, 너 자신에 대해서,
또는 사회에 대해서...’
내 안에서 일어나는 작은 소란들...
나이 마흔이 될 때까지 꿈이랄 것도,
인생의 목표랄 것도 없이, 살아지니까,
그저 하루하루를 허비하며 살아왔다면 너무나
철없어 보일까? 멋진 엄마, 멋진 아내, 그리고
나 자신에게 떳떳한 내가 되고 싶어 무엇이든
해보자 하고 시작한 도서관 독서 모임과 글쓰기
수업이 나를 ‘글쓰기’라는 작은 세계로 이끌었다.
그리고 이렇게 글을 쓰고 싶어 하는 내가 되었다.
그렇게 글을 계속 쓰면 되는데, 문제가 생겼다.
뭘 써야 할지,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도무지 떠오르지 않는 것이다.
분명 관심이 수그러들지 않았고,
매일 글에 대한 생각은 하는데,
뭐가 문제인지 알 수 없었다.
그러다 글을 쓰지 않을 좋은 핑곗거리가 생겼다.
불안장애.
내 몸이 처리할 수 있는 것보다
너무 많은 생각을 하다 보니 몸이 따라가지 못해
불안을 일으키는 것이라고 했다.
(나는 생각이 많긴 하다. 과거의 일부터
닥치지 않은 미래의 걱정, 오늘 해야 할 일부터
내일 해야 할 일에 대한 시간 단위 계획까지..
때로는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이 망할 놈의 생각들을
어디 휴지통에 내다 버리고 싶을 정도이다.)
진단을 받고 몇 개월은 글쓰기에 대한 생각을
놓아버렸던 것이 사실이다.
‘나는 아프니까, 생각이 너무 많아서
아픈 거라고 하니까, 날 쉬게 하자.
잠을 잘 자야 하니까 글을 쓸 시간이 없어.’라는
핑계를 대며 글쓰기를 외면했다.
그렇게 여러 달 치료를 받으며 안정을 찾게 되었고,
이제 다시 글을 써보려 한다.
마구잡이로 쓰기보다
이왕이면 하나의 큰 주제로부터 파생되는
몇 가지의 글을 써 보자 하고 고민을 하던 어느 날,
<박완서의 말>, <시와 산책>이라는 책을 읽으면서
글쓰기에 대한 자신감이 뚝 떨어졌다.
어떻게 이런 상황에서 이런 표현을 쓸 수가 있을까?
아주 사소한 일상에서도 온통 글에 대한 애착이
절절하게 묻어나는 이런 분들이 글을 쓰셨고,
쓰고 계시는데 내가 글을 쓴다며 나대도 되는 것일까?
내 남편과 내 새끼만 챙기며 세상 일에는
전혀 관심 없었던 내가 글을 쓰는 게 맞을까?
책도 많이 읽지 않은 내가 글을 쓸 자격이 있을까?
요즘 분위기가 너도 나도 글을 쓰는 작가 입네 하니까
덩달아 호기심이 생기고,
근거 없는 자신감이 생긴 것일까?
나는, 정말 어이가 없게도 유
명하고 실력 있는 작가들과 나 자신을 견주며
주제 파악을 제대로 못 하고 있었다.
책 몇 권 읽고, 글 조금 써보더니 당장에 아주 대단한
글을 쓰고 싶다는 크나큰 희망을 품었었나 보다.
아니, 솔직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능력이 아직 간장 그릇만큼 작은데 항아리만큼
큰 것을 바라니 마음 안에서 소란이 일수 밖에.
이것 또한 쓸데없는 ‘생각’ 아니냐고!
내가 할 수 있는 능력 안에서 가장 최선을 다해
쓰면 된다는 것, ‘글 쓰는 사람’이라는 이름에는
자격이 필요치 않다는 것을 이제야 깨달았다.
그리고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나의 이야기를.
이제부터 내 이야기를,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이야기들을 해볼까 한다. 아직은 그것밖에
할 줄 아는 이야기가 없으므로..
그리고 스스로에게 몇 가지 다짐을 한다.
1. 잘 쓴 것 같아 보이는 글을 위해 애써 노력하지 말자.
2. 작위적인 단어나 문장을 쓰지 말자.
3. 몇 번이고 소리 내어 읽어보고 또 읽어보자.
4. 내 글을 부끄러이 여기지 말자.
5. 하루에 한 문장이라도 글이라는 것을 꼭 쓰자.
첫 번째.
거실을 서재화 했다. 우리의 새 보금자리에는
TV와 소파가 없다. 카페에서 볼 법한 기다란
6인용 식탁과 낮은 3단 원목 책장이 있을 뿐이다.
TV와 소파를 없애는 것에 아홉 살 아들은 격하게
반대했지만, 이내 순응했다.
내가 제안한 <둘만의 책 만들기 프로젝트>에
매우 흥미를 보이며 동의했기 때문이다.
아이를 포함한 우리 세 식구의 독서량을 늘리기 위한
핑계 중 하나이기도 한 이 책 만들기 프로젝트는
거창해 보이지만, 사실 별거 없다.
거실에 앉아 공부도 하고 만화책이든 글 책이든
보이는 대로 읽어대다 뭔가가 떠오르면
무조건 써보는 거다. 1년 동안 쓴 글들을 엮어서
우리만의 책을 짜잔 하고 만들어 내는 것이
아이와 나의 목표.
물론 내 의도와는 조금 다르게 아이는
만화책 만들기에 더 열중을 하고 있다. 하지만,
그 내용은 상상 이상으로 풍부하고 대단하다.
이처럼 어떤 형식의 책인지, 어떤 내용인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우리가 1년 동안 포기하지 않고
이 프로젝트에 열심히 임했다는 결과물 자체가
중요할 뿐. 아이가 보기에 그럴듯한 책의 모습을
만들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지..
그에 대한 고민은 차치하고...
아이는 벌써부터 책 만들기에 열심이다.
반으로 접은 A4용지 여러 장을 붙여 표지를 그리고,
목차를 쓰고, 페이지도 적어 넣고, 상상 속 이야기들을
글과 그림으로 채워 넣는다.
그리고는 몇 번이고 내게 와서 읽어보라고 한다.
그러면 나는 깔깔거리며 열심히 읽은 뒤
책장에 소중히 보관해 둔다. TV와 소파를 없애는 대신에
얻은 미션이 꽤 마음에 드는 눈치다.
그리고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책을, 우리의 책을
엄마가 꼭 만들 수 있을 거라 굳게 믿고 있다.
그렇기에 나는 글을 써야만 한다.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1인으로서,
TV와 소파를 없앤 장본인으로서,
미션을 성공으로 이끌 의무가 있다.
엄마는 약속을 꼭 지킨다는 믿음을 가진 아이를
실망시킬 수 없지.
두 번째.
좁아터진 내 세상을 더 넓히기 위해
나는 글을 써야만 한다. 남편과 아이, 가족만 바라보며
지낸 시간이 벌써 10년이 되었다.
친엄마가 늘 하는 잔소리가 있다.
"집에만 있으면 우물 안 개구리 된다.
바보 돼. 밖에 나가서 뭐라도 좀 해라."
지금도 그 말에 백 퍼센트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엄마의 말에는 ‘밖에 나가서 뭐라도 좀 하면
바보가 아니고, 집에서 살림만 하는 사람은 바보’라는
심각한 오류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타고나기를
완벽주의자이지만 느려터지고 게으른,
거기에다 조금만 손대도 파스스 깨져버리는
유리멘털을 가진 나는 워킹맘을 할 재목이 못 된다.
그저 바깥일을 하기 싫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남편도 나를 너무나 잘 알기에 그의 인생 설계에는
아내인 내가 바깥일을 한다는 계획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 그렇기에 엄마의 말대로
‘바보가 되지 않기 위해’ 밖에 나가서 일을 하는 일은
앞으로도 일어나지 않을 것 같다.
다만, 말 그대로 ‘살림만’ 하면서 세상 돌아가는 일에는
일체 관심 없이 10년을 살다 보니 스스로가 느끼기에
시야가 좁아지고 세상 물정 너무 모르는,
정말 바보가 되어가는 것 같았다.
달라져야겠다 싶었다.
2024년 1월부터 책을 읽기 시작했고,
그러면서 글쓰기의 재미를 알게 되었다.
또 글을 쓰기 위해 책을 읽고,
책을 읽으면서 많은 것들을 배우고 있다.
역사, 사회 문제 같은 것들은 물론이고 사소하게는
어떠한 단어들이나 무수한 표현들까지도.
인지능력과 집중력이 낮은 탓인지
(뇌파검사를 통해 인지능력이 무려 10퍼센트도
채 되지 못하며,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켜지는
모니터 화면들 때문에 집중력 또한 일반인들에 비해
현저히 떨어진다는 결과를 받았다.)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일이 쉽지만은 않은 것이 사실.
그렇지만 매일 한 장의 책이라도 읽으려 하고
한 문장이라도 써보려 한다.
그렇게 오늘도 내 세상은 0.1mm 더 넓어지고 있다.
세 번째.
나는 늘 그랬다. 쉽게 끓어 넘쳤다가 금방 식어버리고
마는 양은냄비 같은 사람이었다. 처음 시작할 때는
잘하고자 하는 의지로 부글부글 끓어오르며 열심히,
그리고 잘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러다 사람들의
기대와 관심이 쏠리면 기대에 부응하지 못할 것 같은
부담감에 쉬이 포기하고 숨어버린다.
글쓰기도 마찬가지.
2024년 5월, 도서관 프로그램으로 글쓰기 수업을
수강했고, 나는 그야말로 모범생이었다.
글을 잘 써서가 아니라 과제를 성실히 했기 때문에.
4주라는 기간 동안 선생님께 칭찬과 관심을 받으며
철철 끓어 넘치던 냄비의 뜨거운 열정은
그 해 초여름까지 이어졌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식어버리고 말았다. 불안장애라는 핑계가 있었지만,
이유야 어찌 됐든 열정이 식어버렸던 것은 사실이니까
양은냄비가 아니었다고는 말 못 하겠다.
그리고 깨닫게 되었다.
‘아, 내가 선생님에게 잘 보이려고 글을 쓰려했구나.
선생님께 칭찬받기 위해 글을 썼고,
수업이라는 연결고리가 사라지니 글쓰기가
잘 안 됐던 거구나.’
누군가에게 잘 보이기 위해 글을 쓰려했다니!
그리고 그걸 이제야 깨닫다니!
너무 어리석고 바보 같았다.
이제 더 이상 양은냄비이고 싶지 않다.
누군가에게 잘 보이기 위한 가식적인 글이 아닌
진심을 담은 글을 쓰고 싶다.
말이 없는 내가 말로는 다 표현하지 못하는 내 속의
말들을 글로 모두 표현해 내고 싶다.
글로 모든 것을 해소하고 싶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못 쓴 글이라 자책하면서도
기어이 한 줄을 적어 내려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