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직업은 글 쓰는 전업주부
내 직업은 전업주부.
전업주부는 말 그대로 ‘다른 직업에 종사하지 않고
집안일과 육아를 전문으로 하는 주부’이다.
사업자나 직장인들처럼 급여로써 경제적인 혜택은
누리지 못하더라도, 적어도, ‘집에서 노는 사람’ 취급은
받지 말아야 할 것이다.
존중받아야 마땅한 하나의 신성한 전문적인
직업이란 말이다. 내가 왜 이렇게 화가 났을까.
바로 오늘 있었던 일이 화근이다.
친정아빠의 건강에 이상이 생겨 어제,
3박 4일간의 검사를 위해 입원을 하게 되었다.
수술 여부를 가리기 위한 검사라고 했다.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아빠 병원 엄마랑 같이 가자. 약도 갖다 줘야 하고."
"몇 시? 음.. 4시 반? 그래, 알았어요."
"3시 반까지 양산으로 와."
"응? 양산으로 오라고?"
당황한 채 알겠다는 말을 남기고 가만히 생각해 보니
조금은 어이가 없었다. 아빠의 집은 양산.
병원은 부산 수영구 남천동.
참고로 내 집은 부산진구 부암동이다.
집에서 양산까지는 약 1시간, 양산에서 병원까지도
한 시간 거리. 집에서 병원까지는 30분 거리이다.
나도 내 스케줄이 있는 사람인데? 올 수 있느냐는
물음도 아니고, 오라니. 다시 전화를 걸었다.
"엄마, 아빠 약만 갖다 줄 거 아냐? 어차피 면회도
로비에서 잠깐 된다며. 그럼 내가 약 갖다 줄 테니
엄마는 그냥 집에서 쉬세요."
"왜?"
"왜라니, 수술한 것도 아니고, 집에 돌아갈 때는
못 모셔다드려요. 7시에 준영이 숲 체험 일정이
있어서 안 돼."
"버스 타고 가면 돼. 괜찮아."
나는 알고 있었다. 마음 약한 나는 버스 타고 가는
꼴을 못 볼 거라는 것을. 고집을 막을 수 없었고,
아이를 옆에 태우고 양산에 도착해 엄마를 태우고
다시 병원으로 향했다.
총 두 시간 운전. 병원 로비에서 아빠를 만났고,
이야기를 나눈 지 10여분 만에 아빠는 이제 그만
돌아가라고 했다. 아이가 말했다.
"아니, 내가 그렇게 고생해서 왔는데 벌써 간다고?"
할 말이 없었다. 아이의 말이 맞았기 때문에.
그리고 아빠의 한마디.
"네가 엄마 태워 줄 거제?"
나는 대답을 피했다. 그리고 엄마가 말했다.
"버스 타고 가면 돼. 얘들 어디 가야 한대."
버스 타면 두 시간은 걸린다며 만류하는 아빠.
진짜 버스를 타고 갈거냐며 묻고 또 묻는 아빠.
‘아빠, 일정이 있다니까요? 양산까지 갔다가 가면
우리 아들 저녁밥은 언제 먹여서 숲 체험 보내나요?’
나는 이 말을 왜 못 했을까, 등신같이.
"네가 엄마 좀 태워줘라."
예상대로 나는 거절을 하지 못했고, 바쁜 마음으로
장거리 운전 아닌 장거리 운전을 했다.
병원에서 출발시간 4시 40분.
퇴근 시간이라 차는 많이 막혔고,
결국 우리는 숲 체험에 지각했다.
우리 아들 저녁밥도 못 먹인 채.
일주일씩 시간 단위로 스케줄을 짜서 움직이는
나는 계획하지 않았던(또는 오늘처럼 원치 않았던)
일이 발생됨에 따라 일정에 차질이 생기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뜻.
오늘만 해도 몇 시간의 차질이 생겼기에 예민함이
극에 달한 상태였다.
하소연할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겠나.
나의 소울메이트 남편 밖에.
오늘의 일을 바로 고해바쳤다.
남편은 이렇게 말했다.
[3-2]에서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