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어느 날 문득, 번아웃

열심히 일하고, 육아해 온 한 워킹맘의 번아웃 기록기

by 스텔라

#1.

말 잘 듣고, 성실하고 열심히 사는 K 장녀.

늘 그래왔듯이 열심히 공부했고, 취업했고, 결혼하고 아이를 가지며 운 좋게(?) 워킹맘이 되었다.


출퇴근 시간 왕복 4시간의 장거리 워킹맘. 돌아보면, 하루하루 외줄타기의 연속이였다.

집에서는 아이를 봐주시는 조부모님과 남편의 눈치를, 회사에서는 하루하루의 미팅과 프로젝트를 구멍내지 않기 위해 부단히도 애썼다. '열심히' 에 특화된 인생이였는데, 아무리 열심히 해도 아이의 기침 소리 한번에 무너졌고 워킹맘으로써 가지는 죄책감과 갈등은 끝없이 반복, 심화 되었다.


아무리 노력을 해도, 물리적인 시간부족을 극복하지 못해 아이를 재우고 새벽에 일했지만 결국 일 외의 회사생활을 전혀 따라가지 못한 채, 고립되고 서서히 무너졌다.


#2.

하지만, 잘 참는 것에 또 특화된 것이 K 장녀인지라 '그저 이렇게 무모하게 그만둘 순 없어' 라는 다짐으로 아무 대책도 없이 그저 마음을 다잡으며 견뎠다.


'아기가 좀 크면 괜찮아, 시간이 약이야'

'잠깐, 그때만 잘 견디면 돼'

'지금 힘들다고 그만두면, 나중에 후회해'


모든 마음의 목소리에 귀를 닫으며 시간의 힘을 그저 믿으며 묵묵히, 열심히 견뎌냈다. '무엇을 위한 열심' 인지 모른채 앞으로 앞으로 달렸다.


#3.

사람들의 조언은 맞았다.

아이가 크면서 육아는 조금은 더 수월해졌고, 복직 n 년차가 되자 일도 어느 정도는 안정되어 갔다.

" 아이도 잘키우고, 일도 잘하는 멋진 워킹맘 "

힘든 순간들을 잘 참으니 가능한 '아름다운 결말' 이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

SNS에는 멋진 워킹맘들이 매우 많다.

나도 그런줄 알았다.

열심히 육아하고, 열심히 일하며 아이도 잘 크고,

직장에서 자리도 잡게 되어 괜찮은 줄 알았다.

나 자신 조차도 ...


미팅을 앞두고, 여느때처럼 허둥지둥 뛰어가 버스를 탔던 그 여름날 ..정장을 입고, 무건운 가방과 짐을 잔뜩 들고 탄 그 여자는 이유를 알 수 없는 눈물을 두시간 내내 흘렸다. 이상하기도 하고, 그러나 개운하기도 한 경험, 하지만 그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출퇴근 버스에서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어느날은 아이의 얼굴만 바라보아도,나중에는 예쁜 하늘만 바라보아도 눈물이 흘렀다.


#4.


" 선생님, 제가 이상한 것 같아요.

계속 눈물이 나고, 계속 피곤하고, 무기력해요.

어떤 일을 해도 즐겁지 않고,

며칠 전부터는 아주 간단한 이메일인데도 ..

보낼 수가 없었어요"


" 당장 멈추세요. 여기서 멈추셔야해요"


어느날, 문득 처음으로

나를 똑바로 마주하게 되었다.

'번아웃으로 인한 우울증'




keyword
금, 토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