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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자나무 Jul 04. 2023

꼬리에 꼬리를 무는 '꼬꼬무 이야기'

[3화. 주관적인 이야기의 힘]

 다시 <1.21 사태>로 돌아가 보고자 한다. 

인터넷에 검색하면 <1.21 사태>는 이렇게 한 줄로 나온다. 


‘1968년 1월 21일 북한의 무장공비들이 청와대를 기습하기 위하여 서울에 침투한 사건’. 


 굉장히 간단명료하다. 과연 이 한 문장으로 70분이 넘는 방송 한 편을 만들 수 있을까? 그렇게 걱정을 안은 채 나는 시즌1의 1.21 사태 편 연출을 맡게 됐다. 그때부터 각종 문서와 관련 영상들을 섭렵하기 시작했고 마침내 1.21 사태 유일한 생존자인 김신조 씨를 인터뷰하기로 한 D-day가 왔다. 

 만나기로 한 장소에 도착하자 저 멀리 양복을 차려입은 백발의 노인이 걸어온다. 갑자기 묘한 기분이 들었다. 영상 속, 활자 속에 갇혀있던 사람이 뚜벅뚜벅 걸어오는 느낌이랄까. 

 신기하고 묘한 감정을 뒤로한 채 인터뷰가 시작됐다. 북한에서 어떻게 지령을 받았고 얼마나 혹독한 훈련들을 거쳐 선발되었으며 두 발로 남한에 침투하던 모든 순간들을 당사자에게 직접 듣는 건, 어떤 자료 혹은 영화에서 보고들은 것보다 훨씬 더 흥미진진하고 생생했다. 어느새 내 앞에는 80세의 노인이 27세의 젊은이가 되어 앉아있었다. 너무 흥미로웠다. 남겨진 활자로는 전해질 수 없는 그때만의 오롯한 감정이 살아 꿈틀거리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인물의 시선을 따라가 보기로 했다. 객관보다는 주관을 과감히 시도해 보기로 한 거다. 어떻게 보면, ‘역사’와 ‘주관’이라는 단어는 서로 공존할 수 없는 관계일 것이다. 우리는 항상 객관적인 역사를 추구해 왔으니까. 물론 사실이 왜곡되지 않도록 하는 것은 제작진이 지키고 있는 철칙 중 철칙이다. 하지만 꼬꼬무의 생명은 ‘주관적인 시점’에 있다. 이미 알고 있는 사건이라도, 한 사람의 시선을 따라가면서 시작되는 그날 이야기는 그 어느 때보다 새롭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역사’가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인터뷰 말미에 김신조 씨는 이런 이야기를 남겼다. 북한 측에서 김신조라는 무장공비를 보낸 사실이 없다고 부인하던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럼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에 속한 사람인가?’


 믿었던 조국으로부터 나의 존재를 부정당한다는 것은 어떤 걸까? 감히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인생에서 저런 순간을 마주하는 사람은 과연 몇이나 될까? <1.21 사태>를 단순히 역사적 사건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한 사람의 인생 이야기로 받아들이게 된 순간이었다. 그렇게 <1.21 사태>는 무시무시한 무장공비 사건을 뛰어넘어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남기며 내 머릿속에 짙게 남았다.


 우리가 배우는 역사책에는 ‘1.21 사태’를 단지 간단한 팩트를 몇 줄로 나열하고 그치지만 그의 삶은 지금도 내가 살고 있는 곳에서 계속되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와의 만남 이후, 나는 새로운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어쩌면 역사는, 이미 끝나버린 사건의 집합체가 아니라 여전히 누군가의 기억 속에 살아 숨 쉬는 유기체라는 생각. 그리고 이 프로그램의 백미는 그 사건의 소용돌이에 있던 사람의 시선을 오롯이 따라가며 ‘그날’로 돌아가 보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 말이다.




(다음 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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