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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쓰 Feb 22. 2018

무성히 우거진 다정이 콕, 아주 심긴 순간

끝나지 않았으면 싶은 영화가 있다, <리틀 포레스트>


#리틀포레스트 #1 #보고또보고
끝나지 않았으면 싶은 영화가 있다. 원작인 일본판과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작품들이 대개 그랬다. (무한도전 다음으로 가장 많이 틀어두는 플레이리스트이기도 하지) 이들이 가장 먼저 공유하는 정서는 다정함이다. 어떤 삶도 허투루 다루지 않으며 그 모든 삶을 긍정한다. 아, 무해한 생들이여! 내내 흐르는 이 다정함을 단단하게 받쳐주는 정서는 다름 아닌 냉정함이다. 이 영화들은 지루하게 견디는 삶을 벗어나고자 하는 주인공들에게 함부로 정답을 제시하는 실수를 범하지 않는다. 당도하지 않은 행복의 길을 스스로 찾아보게끔 만들 뿐이다. 내가 믿는 가장 무해한 따듯함의 모습. 원작이 가진 느림의 미학과는 전혀 다른 궤를 가진 탓에 고유의 맛을 내진 않지만 나는 그 한국 패치된 맛이 오히려 입에 더 맞았다. 도무지 선이 지켜지지 않는 오지랖과 어느 계절도 쉽게 지나갈 수 없는 한국 농촌의 풍경은 이래야 하지 않겠냐고. 봄의 정령이라는 오글거리는 단어를 활용하기 위해 먼저 정령을 활용한 유머 코드를 배치하는 등의 대사 배치 센스가 좋았고 원작과 비슷하지만 또 조금은 다른 음악도, 김태리를 비롯한 청춘 배우들의 케미도, 문소리의 존재감도, 끝내 신파로 귀결되지 않은 마무리까지 전부 좋았다.



#리틀포레스트 #2 #아주심기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의미 있는 시간일 거야. 낙관도 포기도 아닌 말이 마음에 닿았습니다. 감독은 이 대사를 증명이라도 하듯 아무것도 아니면서 그래도 의미는 있는 소소한 일상으로 화면을 채웁니다. 겨울과 봄, 여름과 가을엔 소일하는 이웃이 있고 다정한 고모와 든든한 오구가 있고 마음 맞는 친구들이 있습니다. 심지어 잘 먹을 수 있는 주방과 재료, 그리고 요리 실력까지. 자신을 얼마나 세심하게 다듬으며 어른이 되느냐가 더욱 중요해진 이 놈의 정보화 시대에 스스로 모든 요리의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클래스의 유산은 무척 소중합니다. 어떤 전 과정에의 통제는 마치 도와 상통하는 면이 있어서, 요리의 전 과정을 가만히 관조하고 또 실행하는 일은 인간의 내면을 정직하게 바라볼 기회를 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더 이상 요리를 잘 하고 말고의 문제와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엄마가 만든 음식이 그리 특별한 레시피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걸 깨달으며 혜원은 성장했고 또 자신만의 리틀 포레스트를 찾아냈으니까요. 혜원의 해맑은 표정으로 화면이 멈추며 무성히 우거진 다정들이 마음에 콕, 아주 심긴 순간 저는 이 영화를 사랑하게 되겠구나, 생각했습니다.


instagram.com/yuzun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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