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의 인간, 이물질 인간

[편의점 인간] 무라타 사야카 | 살림출판사

by 와사비찡

“이 세상은 이물질을 인정하지 않아요. 나는 줄곧 그것 때문에 괴로워해왔어요.”


직업에는 귀천이 없고 사는 방식에는 정답이 없다고들 말한다. 그런데 이상하다. 오랜만에 만난 친척들이 안부인사랍시고 늘어놓는 속 보이는 질문들이 듣기 싫어 나 홀로 명절이 오히려 편하다는 이들이 많은 걸 보면 세상은 정답을 만들어놓고 사람들을 그 틀에 가두는 게 아닌가 싶다.


-수능시험은 잘 봤니? 서울에 있는 대학은 붙었고?

-졸업한 지 꽤 된 것 같은데 취직은 했니?

-결혼은 몇 살쯤 할 거니? 애인은 있어?

-결혼했으면 아이는 하나쯤 있어야지


여기까지 힘겹게 통과하고 나면 또 다음 질문이 기다린다.


-아무래도 애 혼자면 외로울 텐데. 둘째 생각은 없니?


자세한 사정은 알지도 못하면서 가끔은 선 넘는 무례한 질문을 일삼는 사람들에게 왜 이런저런 사정을 설명하고 납득시켜야 하는 걸까. 그런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단 한 마디다.





모두가 이상하게 여기는 부분을 내 인생에서 소거해 간다. 고친다는 건 그것을 말하는지도 모른다. 지난 2주 동안 열네 번이나 “왜 결혼하지 않아?”라는 질문을 받았다. “왜 아르바이트를 해?”라는 질문은 열두 번 받았다. 우선 들은 횟수가 많은 것부터 소거해 보자고 생각했다. 나는 어딘가에서 변화를 바라고 있었다. 그것이 좋은 변화든 나쁜 변화든, 교착상태에 빠진 지금보다는 낫지 않을까 생각했다."


후루쿠라는 태어날 때부터 감정도 없고 공감능력도 없다. 적절한 시기에 연애를 하고 취업을 하는 남들과는 달리 그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지만 가족과 친구들이 자기를 이상하게 보는 눈빛과 말투가 싫어서 보통의 인간처럼 보이고자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시작한다. 편의점 아르바이트는 정해진 매뉴얼대로의 역할만 수행하면 되기 때문에 후루쿠라는 적성에 맞는 일을 찾았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18년의 시간이 흐르고 점장도 몇 번 바뀌었지만 후루쿠라는 여전히 아르바이트생이다. 40대가 되어도 결혼은커녕 연애 한 번 해보지 못하고 여전히 아르바이트를 하는 후루쿠라를 보며 동생은 눈물짓고 친구들은 무례한 질문을 던진다. 무차별한 질문 공세에 그녀는 평범한 보통 인간의 삶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혼란을 느낀다.


나와는 처음 만나면서, 그렇게 몸을 내밀고 미간에 주름을 잡을 만큼 내 존재가 궁금할까? “다른 일은 해본 경험이 없기 때문에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편의점이 편해요.” 내 설명에 유카리의 남편은 마치 요괴라도 보는 듯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럼 줄곧…….? 아니, 취직하기가 어려워도 결혼 정도는 하는 게 좋아요. 요즘은 인터넷 결혼이라든가 여러 가지 방법이 있잖아요?” 나는 유카리의 남편이 강하게 말을 내뱉는 바람에 침이 바비큐 고기 위로 날아가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음식 앞에서 몸을 내밀고 지껄이는 것은 삼가는 게 좋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고 있는데, 미호의 남편도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18년째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작가의 경험을 담은 자전적 소설이라고 하는데, 2016년에 쓰인 일본소설이지만 현재를 살아가는 2025년 대한민국 사회 분위기에 대입해 보아도 큰 이질감은 느껴지지 않는다.





10대는 우수한 성적을 받아 명문대에 들어가야만 성공하는 것처럼 교육을 받고, 20대에는 이름만 들어도 누구나 아는 대기업에 입사하는 것이 공동의 목표가 된다. 30대에는 결혼을 하고 자녀를 낳아 가정을 꾸리며, 40대 이후에는 그 자녀들이 엘리트의 길을 걸을 수 있도록 뒷바라지하는 것이 보통의 삶이라고 규정되어 있는 듯하다.

사람들은 몇 살 즈음에는 무엇을 성취해야 한다는 사회가 정한 기준에 평가 대상을 대입해 보고 그 기준에 맞지 않으면 낙오자로 취급한다. 아무래도 소셜미디어가 사람들이 말하는 평균의 기준을 자꾸 높이다 보니 보통의 잘 살고 있는 사람들조차 한 번쯤 자신의 삶이 비교적 초라하게 느껴지는 경험을 했을 것이다.


-해외여행은 적어도 한 두 번은 가야지,

-부장이라는 직급을 달았으면 차는 이 정도 수준은 타야지,

-나이가 이 정도 됐으면 수도권에 자가 한 채 정도는 있어야지,


평범하게 사는 것이 오히려 힘든 사회.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란 어디쯤인 걸까.


모두가 Yes라고 할 때 No라고 할 수 있는 당신이 진정한 용자
“모두가 보조를 맞춰야만 하는 거죠. 30대 중반인데 왜 아직도 아르바이트를 하는가. 왜 한 번도 연애를 해본 적이 없는가. 섹스 경험이 있는지 없는지까지 태연히 물어봅니다. ‘창녀와 관계한 건 포함시키지 말고……’ 하는 말까지 웃으면서 태연히 하죠, 그놈들은. 나는 누구한테도 폐를 끼치고 있지 않은데, 단지 소수파라는 이유만으로 다들 내 인생을 간단히 강간해 버려요.”





'쉬었음 청년'이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취업자나 실업자가 아닌 비경제활동인구 중 ‘그냥 쉬었음’으로 응답한 청년들이 늘어나는 추세인 것이다. 교육 수준이 높아져 스펙은 두루 갖추었으나 그에 비해 일자리의 질이나 근무환경 등 기타 조건들이 기대치에 충족하지 않아 갭이 발생한다. 거기에 더해 기업에서는 경력직을 선호하다 보니 실무 경험이 없는 이제 막 대학을 졸업한 학생들은 이력서를 내밀 기회조차 갖기 힘들다. 30세 이하에서 10명 중 3명이 이 '쉬었음 청년'에 해당한다고 하니 적지 않은 수준이다.


친척 동생 중 한 명이 그중 하나이다. 서울에 소재한 대학을 나와 몇 군데 기업의 인턴십을 경험했다. 영어실력도 꽤나 뛰어난 편이라 마냥 놀 수만은 없어 영어강사로 잠시 일하며 일반 기업에 이력서를 넣고 있는데 원하는 곳에 들어가기가 쉽지 않다고 푸념했다. 기성세대도 아니고 그렇다고 MZ라고 하기엔 민망한 이도저도 아닌 중간에 낀(?) 세대로서 동생의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고 해 줄 말은 없을까 생각하다가 너의 탓이 아니라는 완곡한 어조로 한 마디 건넸다.


-요즘 취업이 많이 어렵지. 래도 우선 원하는 분야에 여기저기 넣어보고 작은 회사도 일단 시작해 보는 게 좋지 않을까? 일단 일을 하다 보면 이것저것 듣는 것도 많고 업계가 흘러가는 분위기도 파악할 수 있어서 경력만 조금 쌓으면 원하는 회사로 이직할 수 있을 거야.


최대한 꼰대스럽지 않게 말했다고 생각했는데 원하는 말이 아니었는지, 아니면 너무 많이 들어 질려버린 건지 친척 동생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혹시 '너나 잘하세요'라고 생각한 건 아니겠지, 뜨끔하다.)




혹자는 이렇게 말한다.

-요즘 애들은 고생을 안 해봐서 그래. 눈만 낮추면 금방 취업할 수 있는데 노력을 안 하는 거지. 요즘은 나라에서 지원도 얼마나 많이 해주는데.


그럼 곧바로 이런 반박이 터져 나온다.

-대학 졸업장만 있어도 대기업 입사하던 시절이랑 지금이 같은 줄 아나.


무신경하게 툭 던져버린 말에 사회가 규정한 정답에 들지 못한 사람들은 또 한 번 비정상인 부류가 되어버린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단정 짓고 비난하는 건 이제 그만하기로 하자. 다들 보통의 인간으로 살기 위해 충분히 애쓰고 있으니 말이다.


누구나 제 각각의 생김새와 특성을 가지고 있듯이 개인의 흥미와 특기가 발현될 때 세상은 더 발전적인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고 믿는다. 암묵적인 정답에 억지로 자신을 끼워 맞추기보다는 다채로운 삶을 응원해 줄 수 있는 건강한 사회를 꿈꾸어본다.


[편의점 인간] 무라타 사야카





*사진출처: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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