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이유는 무엇입니까] 조태호 | 도서출판 어떤책
물어볼 곳은 없다. 결국 혼자 선택해야 한다. 모든 것을 지나온 지금 다시 생각해 본다. 그때 나는 어느 쪽을 선택하는 것이 더 좋았을까?
한창 미래에 대한 고민의 연속이던 시기가 있었다. 처음 몸담았던 직장을 다니면서 '이 일이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이 맞는지, 앞으로도 은퇴할 때까지 계속하고 싶은지' 생각했을 때 내 마음은 "아니"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3년을 넌덜머리 나게 고민할 정도면 그만두는 게 맞는 것 같은데, 당시의 나는 가보지 않은 길을 가기까지 뭐가 그리 두려웠던 건지 팀장님께 "드릴 말씀 있어요"라는 말을 꺼내기까지 정말 큰 용기가 필요했다. 퇴사일자가 정해지면 마지막 근무일은 후련할 줄 알았건만 아이러니하게도 마지막 인사를 나누는데 눈물이 멈추지 않던 이유는 알 수 없었다.
그렇게 첫 직장을 그만두고 해보고 싶었던 분야의 문을 두드렸다. 그 분야는 소위 말하는 가방끈이 길어야 명함을 내밀 수 있는 업종이었기에 쉽게 이직 결정을 못하고 망설였던 것인데 운이 좋게도 첫 면접에서 좋게 봐주셔서 바로 입사하게 되었다. 새로운 시작을 하게 되니 처음부터 배우고 준비해야 할 부분이 너무 많았다. 심지어 관련 경력도 없었기 때문에 퇴근 후 시간들과 주말 동안은 자격증 준비에 시간을 쏟느라 다른 뭔가를 할 시간도, 사람들을 만날 여유도 없었다. 그 시기에는 밥 먹을 시간도 없이 늘 빠듯하게 움직이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건물 문을 닫을 시간에 부랴부랴 짐을 챙겨 나오기도 하고, 막차를 타거나 그마저도 놓쳐 택시를 타고 집에 가기도 일쑤였다. 저녁을 거르는 날은 편의점에서 대충 삼각김밥으로 끼니를 때우는 날도 많았다. 그러다 보니 점차 주변에서 피골이 상접해 보인다는 말을 자주 듣게 되었다. 3년을 다닌 첫 회사를 그만둔다고 했을 때 끈기가 없다며 나를 나무랐던 엄마가 두 번째 회사는 그만두라고 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래도 출근이 재미있었다.
나에게도 그런 때가 있었다.
요즘 드라마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를 즐겨본다. 일단 제목부터 재미있다.
사실과 허구의 경계를 짠하고도 유쾌하게 넘나드는 김 부장의 이야기를 보고 있노라면 미래의 내 모습이 저런 건 아닐까 하는 마음에 나를 투영시키며 꽤나 몰입해서 보게 되는데, 이번에 읽게 된 에세이가 <당신의 이유는 무엇입니까> 이 드라마를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우선 저자의 캐릭터부터가 현실성이 좀 떨어진다. 컴퓨터 엔지니어, 영어 학원강사, 생명정보학 연구직 등 접점이 전혀 없는 분야를 휙휙 넘나드는 만렙의 능력치를 가진 저자의 일대기를 보고 있노라면 영화나 만화에 나오는 만능 캐릭터 주인공 같다. (게다가 브런치 이용자라면 모두가 꿈꾸는 브런치북 대상 수상자이다.)
거기에 더해 일본 유학 시절 만난 극우 교수와의 마찰, 동일본 대지진을 겪으면서도 홀로 출근한 이야기, 돌연 미국으로 건너가 몇 십 년간 쌓아온 업적을 버리고 택한 제2의 직업 등 증거 사진이 없었다면 이게 정말 실화인가 싶을 정도로 믿기 힘든 일들의 연속이 기다렸다는 듯이 일어난다. 저자는 여러 번 갈림길에서 고민한다. 나도 같이 눈으로 그 길을 따라가며 나라면 어떤 선택을 할까 같이 고민했는데 거기서 저자와 나의 그릇의 크기가 다르다는 사실을 정말 많이 체감했다. 현실에 안주하는 선택만 하는 나와는 달리 힘들어도 새로운 길을 가보는 저자의 모습을 보면서 역시 사람은 죽으라는 법이 없고, 그 다양한 경험들이 쌓여 새로운 기회가 만들어진다는 것. 결국 인생의 기회는 그 누구도 아닌 자신이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했다.
생각해 보면 ‘지금 여기’ 말고는 우리가 누릴 수 있는 것이 애당초 없다. ‘지금 여기’가 쌓이고 쌓여 내 삶이 된다면, 내가 누리는 ‘지금 여기’를 허망하게 흘려보내는 것이야말로 비극이 아닐 수 없다. 교만하고 콧대 높은 실직자는 ‘지금 여기’로 돌아와야 했다. 과거의 영향을 받지 않고, 미래를 불안해하지 않고, 지금 바로 여기서부터 시작하기. 다시 해 보리라 마음을 고쳐 먹었다.
<최고의 기회는 나 자신에게 달려있다.>
한 때 좌우명이랍시고 다이어리에 주구장창 써붙이고 다니던 글귀였는데 잊고 지내던 그 문장이 다시 한번 떠올랐다. 나는 항상 시작도 하기 전에 그 뒤에 따르는 위험 요소를 먼저 떠올리는 자칭 신중한 성격이기에
'돌다리도 두들겨보고 건너라'라는 말을 철썩 같이 맹신하고 돌다리가 가라앉을 때까지 두들기다가 결국 역동적인 삶은 구경도 못하기 일쑤였던 과거를 반성한다. 새로운 도전을 피하지 않고 우선 직진해 보는 저자의 모습은 내가 정말 닮고 싶은 부분이다.
그렇게 시간은 점차 흘렀다. 나는 어느덧 단조로워진 일상을 불평하면서 막상 변화를 불러일으키는 것은 두려워했던 것 같다. 매일 알람이 울리는 시간에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하고 같은 시간 같은 칸 지하철에 몸을 싣는다. 늘 가던 카페에서 비슷한 메뉴를 골라와서는 오전에 급한 업무를 마치고 구내식당에서 점심을 먹는다. 짧은 점심시간이 눈 깜짝할 새 끝나가면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가 된 것처럼 다시 사무실로 들어가서는 해가 지면 퇴근하는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의 반복에 지쳐있었다. 새로운 프로젝트가 주어지면 잘 해내야겠다는 기대나 설렘보다는 가슴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한숨과 긴장이 먼저 앞서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여느 때와 같이 출근길 지하철에서 사람들과 뒤섞여 우르르 내려 사무실이 밀집한 방향을 향해 터덜터덜 걷는데, 한 방향으로 힘없이 향하는 사람들의 뒷모습을 보니 좀비 떼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 무렵 피곤한 몸을 이끌고 습관처럼 출근하고 있던 내 눈에는 더더욱 그리 보였을 것이다.
말로만 듣던 번아웃이 나에게도 온 것인가.
그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무엇을 위해 출근하고 있는가.
자아실현이라는 거창한 이유는 아닌 것 같고 없자니 아쉬운 소소한 월급 때문인가.
자정을 넘겨 퇴근을 해도 출근이 재미있던 시절이 내게 있었다는 것이 무색해질 만큼
내 안에 있던 열정은 언제 사라져 버린 걸까.
우리의 삶은 끊임없는 선택의 연속이다. 그런데 어떤 선택이 무슨 결과를 가져올지 우리는 다 알 수 없다. 그럼에도 매번 선택하며 살아간다.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들이 내게 호의적이라는 믿음을 가지면 이 선택의 무게가 조금은 가벼워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완전히 가벼울 수는 없다. 어떤 선택은 여전히 무겁다.
한 곳에 오래 고여있는 물은 썩기 마련이다. 익숙함에 무뎌져 어디로 가야 한다는 방향성 없이 너무 흘러가는 대로 지내오지 않았나 싶다. 이 책의 저자가 묻는다. 당신의 이유는 무엇입니까. 사는 쪽으로. 포기하지 않는 방향으로 한 걸음 내딛는.
고등학교 때 담임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이 떠오른다. 무엇이 되어야지라고 생각하지 말고 어떻게 살아야지라고 생각하라고 하셨다. 가령 "선생님이 되어야지" 하는 사람은 선생님의 꿈을 이루고 나면 그 후의 목표를 잃게 되지만, "아이들을 잘 관찰하는 선생님이 되어야지"하는 사람은 선생님의 꿈을 이루고 나서도 나아가려는 방향성이 있기에 계속 발전해 나갈 수 있다고 하셨다. 당시에는 크게 와닿지 않았던 말인데 지금 반복되는 일상 한가운데에서 생각해 보니 크게 놓치고 있었던 부분이다.
흘러가는 대로 두지 말고 잠시 멈춰 서서 다시금 방향을 다잡아야 할 때이다.
우리는 없다가 있게 된 존재다. 우리에게 허락된 시간부터 끝나는 시간까지가 우리의 생명이다. ‘없다’와 ‘있다’ 사이, 그 사이의 것들이 아무 의미 없는 공허함일 리 없다. 없던 내가 있다는 자체로, 나보다 더 큰 세상은 이미 내게 호의적이라고 믿는다. 호의적인 세상이 지금도 당신을 기다린다. 상처와 거짓됨을 내려놓고 스스로 선택하기를. 사는 쪽으로, 포기하지 않는 쪽으로. 당신이 존재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