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은 독특한, 논술 원서 쓰기

나 혼자만의 길

by 영우천사

나는 내가 좋아라 하는 공부를 좋아하는 성격이다. 사회, 역사, 시사 분야를 아주 좋아하고 관련된 공부는 정말로 좋아하고 잘 할 자신이 있다. 그런데 수학이랑 영어는 싫다. 그나마 국어를 좋아하긴 하는데 특출나게 잘하는 것도 아니니 대한민국 입시를 견뎌야하는 고등학생으로는 완전 깡통이나 다름없었다. 이러한 제약 조건들이 있다 보니 논술 원서를 쓰는데도 다양한 문제가 발생했다.


학교마다 논술에서 추구하는 성격이 다르다 보니 논술 시험 유형도 학교마다 극과 극을 달린다. 문학 작품과 독서 지문을 적당히 배합하여 적당한 논리력과 적당한 국어 능력을 요구하는 드라이한 유형도 있고, 사회적 현상이나 문제를 제시하고 이를 분석하는 시사적인 요소가 강하게 들어가는 유형도 있다. 또한, 학교에 따라서 영어 지문이 제시되거나 수학적 계산이 필요한 문항이 주어지기도 한다. 혹은 매우 추상적이고 학문적인 소재를 바탕으로 문제가 제시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입시 논술을 제대로 준비하려면 내가 가고 싶은 학교, 학과도 중요하지만, 논술 시험이 내가 잘 풀 수 있는 유형으로 출제되는지가 중요하다. 뒤에서 구체적으로 설명하겠지만, 입시 논술의 특성 때문에 시험 유형이 나에게 잘 맞는지가 너무 중요하다. 입시 논술을 준비하기로 결정했다면 어떤 학교에 원서를 넣을 지 결정해야 한다.


중앙대 이상은 가야 재수하는 의미가 있제, 잘 할거여~


재수를 시작하기 전에 고등학교 담임 선생님과 마지막으로 통화했을때 해주신 말씀이다. 이 한 문장에 굉장히 많은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고등학교 담임 선생님과 부모님의 의견에 따라 재수를 하는데 명확한 목표가 제시되어 있었다. 서울 상위 10개 대학에 갈 것이 아니면 재수를 하는게 의미가 없다는 것. 나도 이러한 의견에 어느정도 동감했고 결국은 오랜 고민 끝에 상위 10개 대학이 아닌 학교에는 논술 원서를 넣지도 않는 것으로 결정했다. 지금 시점에서 생각해보면, 합격을 했기에 망정이지 정말 무모하고 위험한 모험이었다. 세상 일은 한 치 앞을 알 수 없다. 나처럼 무모하게 원서를 쓰는 사람은 없었으면 좋겠다. 항상 최악의 경우를 대비하는 것이 정말, 많이 중요하다.


큰 목표를 설정하고 나서 내가 가고자 하는 학교들의 입시 요강과 시험 문제를 보고 본격적으로 분석을 시작했다. 입시 논술은 전형에 어떤 조건이 달려 있는지가 매우 중요하다. 오로지 논술 시험 단 하나만으로 모든 것이 결정되는(논술 100%) 학교도 있고, 수능 최저등급이 반영되는 학교도 있다. 심지어는 출결사항, 봉사활동, 내신을 반영하는 학교도 있다. 그래서 이러한 요소들을 모두 고려해서 원서를 쓸 학교를 결정해야 한다. 예를 들어, 최저등급을 맞추기 어려울 것 같은데 최저등급 요구 사항이 있거나 높은 학교에 원서를 넣는 것은 모험이 될 수 있다. 또한 모집 인원도 중요하다. 대학 입시라는게 본인이 진학하고 싶고 앞으로 펼치고 싶은 꿈에 맞는 학과를 가는 것이 당연히 이상적이고 제일 좋지만 현실적인 고려를 할 필요가 있다. 논술 시험의 특성상 경쟁률이 하늘을 뚫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래서 사람을 많이 뽑는 학과가 합격의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경쟁률과는 무관하게 3명을 뽑는 학과와, 10명을 뽑는 학과가 있다고 치면 3등 안에 들기 보다는 10등안에 들어가는 것이 더 쉬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희망하는 과와 비슷한 범주에 있다면 경쟁률과 모집 인원을 잘 맞춰서 지원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실제로 나도 원서를 쓰는데 있어서 선발 인원을 상당히 중요하게 보고 지원했다.




입시 요강과 조건을 확인했다면 각 학교에서 논술을 어떻게 출제하는지 살펴봐야 한다. 나는 재수학원 담임 선생님께 요청하여 내가 쓸 것으로 예상했던 학교들의 기출문제를 인쇄해서, 풀어보지는 않았지만 간단하게 읽어보고 무엇을 요구하는지를 중점적으로 살펴봤다.


우선 나는 수리 논술을 출제하는 학교를 모두 걸러야 했다. 나는 전통적인 문과생인 것 치고 수학을 아주 싫어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엄청 어려워했다. 그렇다 보니, 수리 논술의 난이도와 상관 없이 수학적인 내용을 출제하는 학교를 걸러야 했다. 연세대의 경우 인문 계열의 학생들을 선발하는 논술인데도 불구하고 심도있는 수학적 능력을 요구했다. 물론 아무리 심도있는 수학이라고 해봐야 절대로 고등학교 수준을 넘지는 않는다. 그런데 수학을 못하거나 싫어하는 사람에게는 그야말로 불지옥이 따로 없다. 연세대 만큼은 아니어도 경희대처럼 간단한 함수를 세우고 그래프를 해석하는 중학교 수준의 수학적 요소가 출제되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영어 논술을 출제하는 학교도 걸러야 했다. 영어를 그렇게 못하지는 않는다. 입시 영어는 그럭저럭 견뎌낼 수 있다. 그런데 싫었다. 정확히는 외국어 알레르기가 있어서 영어를 좋아하지 않는다. 고등학교에서 내가 가장 좋아했던 담임 선생님의 과목이 영어였지만 극복하기 꽤 어려웠다... 대표적으로 한국외대가 영어 지문을 출제하는 학교이다.


이렇게 학교마다 유불리와 출제 스타일을 정리하고 나서 문제가 생겼다. 예상보다 원서를 쓸 학교가 너무 줄어버렸다. 재수 학원을 다녔던 친구들이 원서를 쓸 때 보면 주로 동국대 + 중앙대 + 경희대 + 한국외대 4개 대학을 기준으로 해서 본인에 맞춰서 대학을 바꾸거나 추가하는게 일반적인 패턴인데 나의 기준으로는 중앙대를 제외한 세 학교를 전부 빼버렸으니 남아있는게 없었다.


* 참고로, 동국대, 중앙대, 경희대, 한국외대 네 학교가 기준이 되는 이유는 2019년 입시 기준으로 네 학교는 논술 전형에서 최저등급 조건이 있는 학교였다. 재수학원에 다니는 수험생 특성상 수능 공부가 중심인 만큼 최저 등급이 있는 논술 전형이 상대적으로 유리하기에 네 학교를 기준으로 원서를 쓸 학교들을 조합했다.


결국 오랜 고민 끝에 3개의 학교에 논술 원서를 넣는 것으로 결정했다. 3개의 학교는 공통적으로 최저등급 조건이 있고, 논술 반영 비율이 100%가 아니라 생활기록부 내용이 일부 반영되는 학교이며 수학, 영어 논술이 아니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한양대의 경우 정책적이고 사회적인 것을 주로 묻는 논술이 출제되는 편이었다. 가장 마음에 드는 형태였고, 근거없는 자신감도 충분했다. 중앙대의 경우 국어적(언어적)인 감각이 다소 필요하다고 느껴졌다. 특정한 분야에 아주 맞춰진 논술이라기 보다는 표준적인 논술 시험과 같은 느낌을 주었다. 그리고 논술 반영 비율이 60%로 세 학교 중에서 가장 낮았는데 논술 외의 부분은 전부 만점으로 처리할 수 있었기에 선택했다. 나머지 하나는 서강대였는데, 이 학교에 원서를 넣는 것이 가장 고민되는 문제였다. 서강대 논술은 전통적으로 악명높은 난이도를 자랑한다. 그러나 최저등급 없는 학교를 빼고, 수학과 영어가 출제되는 학교를 빼다 보니 서강대를 쓰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재수 학원에서는 난색을 표했다. 그런데 나는 도저히 수리 논술을 잘 볼 자신은 없어서 서강대를 쓰겠다고 했다.


이렇게 학교들을 정하고 보니, 재수 학원에서 같이 논술 원서를 쓴 친구들과는 꽤 이질적인 원서가 완성되었다. 원서를 쓰면서도 '이거 맞는건가?' 라는 생각을 수도 없이 했다. 재수 학원에서는 수능이 끝나고 나서 논술 특강을 운영하는데, 학원에서 서강대는 논술을 대비해줄 수 없다고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근자감이 넘치는 원서였는데 당시 나는 어떻게든 될 거라고 생각했다.


* 논술 입시를 겪었던 시기는 2019년이라 지금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2024년 입시를 기준으로 중앙대의 경우 논술의 반영 비율이 70%로 상향 조정되었고 내신 반영이 훨씬 완화되었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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