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줄타기
줄 끝이 멀리 멀리 보여서는 더욱 안 되지만 가깝고 넓어 보여서도 안 되는 법이다. 그 줄이라는 것이 눈에서 아주 사라져 버리고, 줄에만 올라서면 거기만의 자유로운 세상이 있어야 하는 게야. 제일 위험한 것은 눈과 귀가 열리는 것이다. 줄에서는 눈이 없어야 하고 귀가 열리지 않아야 하고 생각이 땅에 머무르지 않아야 한단 말이다.
- 이청준, '줄'
이청준의 '줄'은 내가 꽤 좋아하는 소설이다. 야자때 공부하기는 싫었지만 공부를 안할 수는 없다고 생각해서 문학 공부를 했던 날이 있었는데, 수능특강에 실려있던 부분을 재밌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뭐라고 콕 집어서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기억에 많이 남았다. 그리고 뭐랄까, 당시의 나의 상황에도 미묘하게 이입되는 느낌이었다고 해야하나.
두 번째로 보는 수능에는 굉장히 큰 행운이 따랐다. 우선 첫 수능 시험장이랑 같은 학교에 배정되었다. 게다가 재수를 결정한 이후 이사를 갔기 때문에 차를 타고도 30분 정도 걸리던 시험장을 걸어서 2분 정도면 갈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수능 당일, 시험장 정문에 담임쌤이 응원을 나왔다. 담임 쌤을 만나니 뭔가 기분이 좋았다. 시험장에 들어가니 내 앞자리가 결시자여서 비어있었고, 재수 학원에서 만난 형을 다시 만났다. 행운과 행운이 무한정 겹쳤다. 시험이 끝나고 엄청난 인파 사이에서 바로 옆에 있던 집으로 쏙 들어가던 그 쾌감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집에 돌아와 가채점을 했다. 수험 생활 내내 나를 괴롭혔던 국어와 수학의 점수가 좋은 의미로 심상치 않았다. 국어는 단 한번도 받아보지 못한 만점에 가까운 점수를 받았고, 유사 수포자에 가까웠던 수학도 아주 만족스럽게 봤다. 게다가 찍은 문제도 하나 맞춰서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 없었다. 답이 공개되지 않아 채점을 하지 않았던 사회탐구는 조금 불안한 면이 있었지만 그 동안 못봤던 적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별로 의심하지 않았다. 이 시점까지만 해도 내가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본 모든 모의고사, 수능을 통틀어서 가장 좋은 점수를 받을 것이 거의 확정적이라고 생각했다.
문제는 사회탐구였다. 저녁 8시 넘어서 사회탐구 답지가 공개되고 채점을 시작했는데 나를 단 한 번도 배신했던 적이 없던 사회탐구가 박살 났다. 생활과 윤리와 사회문화를 봤는데 두 과목 모두 고등학교를 입학하고 봤던 모든 모의고사 점수 중에서 제일 낮은 점수가 나왔다.
생활과 윤리는 원점수 46점이었다. 그 동안 교육청이나 평가원에서 실시한 모든 모의고사에서 47, 48, 50점 셋 중 무조건 하나는 나왔기 때문에 가장 의심한 적이 없었는데 마음에 상처를 입었다. 한 문제는 오답률 2위였던 문제니 그렇다 치고, 나머지 한 문제는 어이 없는 실수였다. 심지어는 오답률 1위 3점 문제를 맞춰놓고도 2점 문항 2개를 틀려서 46점이라니. 나름 고등학교 생윤 1등이었는데... 그런데, 생윤은 애교였다.
사회문화를 채점하고 숨이 멎는 줄 알았다. 사실, 계산을 버거워하던 입장에서 사회문화의 도표 문제는 굉장히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문제 중 하나였다. 그 동안은 어찌 저찌 버텼고 실제로 점수가 폭락한다던가 등급이 망가지는 사고는 없었다. 오히려, 불편하고 어려워하는데도 불구하고 점수가 잘 나오던 것이 더 큰 문제였다. 재수생이 된 이후 출제된 모의고사에서 급격하게 도표 문제와 계산 문제의 난이도가 높아졌는데, 이 시점부터 사회문화가 상당히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실제로 6월 모의평가가 끝난 이후 윤리와 사상으로 과목 변경까지 고려했었다. 그런데 과목을 변경할 용기를 도저히 내지 못했고 결국은 바꾸지 않았다. 문제를 푸는게 갈 수록 힘겨웠을 뿐 의외로 점수나 등급의 변동은 없었다. 게다가 더 중요한 국어와 수학을 놔두고, 고등학교 2학년부터 시작해서 3년간 공부한 사문을 버리고 고작 수능 5개월 남은 시점에서 윤사로 과목을 교체하는 모험을 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결과는 처참했다. 재수생 생활을 돌아보면서 후회하는 것이 몇 가지 있었지만 그 중에서 가장 후회하는 것이 사회문화를 윤리와 사상으로 바꾸지 않았던 것이다.

채점 결과가 이렇게 나오고 나니 갑자기 내가 갈 수 있다고 생각하거나 가고 싶었던 학교들이 사정권에서 벗어나거나 아슬아슬하게 걸리기 시작했다. 논술로 대학에 가지 못하면 졸지에 삼수생이 될 운명에 처하게 되었다. 어쩐지 수능 원서를 받으러 학교에 간 순간부터 국어, 수학, 영어를 가채점하는 순간까지 행운의 연속이라고 생각했는데, 참 운수 좋은 날이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었으니 논술을 잘 보는 것 말고는 대학에 갈 방법이 딱히 없었다. 한양대 논술을 준비하는데 주어진 시간 하루, 서강대 논술을 준비하는데 주어진 시간 또 하루, 중앙대 논술은 일주일 정도 여유가 있었다. 남은 시간을 놓고 보니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없었다. 그렇게 경쟁률 높고 어렵다는 시험인데 고작 일주일 남짓한 기간에 세 학교를 준비하는 것, 그리고 합격까지 해내는 것이 도저히 불가능해 보였다. 수능을 보는 것도 엄청난 부담감을 느끼지는 않았는데, 재수생인 나에게 정말로 남은 기회가 세번의 논술 시험 밖에 없다고 생각하니까 그 동안 경험하지 못했던 엄청난 부담감을 처음 느꼈다. 다만, 글을 쓰면서 생각해보니 내가 논술에 대한 긴장감이 너무 심했다기 보다는 수능을 너무 안일하게 생각했던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한양대 논술과 서강대 논술은 수능이 끝난 그 주의 주말에 보는 시험이라 시간도 없었다. 서강대는 학원의 특강도 없다 보니 순수하게 내가 공부해서 봐야 했고 그나마 한양대 논술은 학원 특강으로 최소한의 피드백은 받으면서 시험을 준비할 수 있었다. 그나마 중앙대 논술은 일주일 정도 남았고, 5일간의 특강도 있으니 그럭저럭 준비할 수는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당시에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해보려고 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5일 준비해서 합격이 가능할 것 같지는 않았다.
이청준의 '줄'에서 노인은 자신의 아들에게 혼신의 힘을 다해서 자신의 줄타기를 전수한다. 상황이 좀 다르긴 하지만, 어쨌든 논술 시험이라는 위험한 줄타기에 올라선 나도 극히 짧은 기간 내에 논술을 준비하는데 있어서 여러 사람에게 크고 작은 도움을 받았다. 가장 큰 도움을 준 사람은 아빠였다. 대학 입시가 모두 끝난 이후 '아빠가 입시에 관여하지 않는 것이 곧 자식 입시의 성공'이라는 명언을 남기셨던 분이지만 논술을 준비할 때 만큼은 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