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낀다는 건 생각보다 용기가 필요하다
홀리듯이 2부 영상을 눌렀다.
“살아있으면 감은 생깁니다.
그보다 우리가 감을 허락해줘야 해요.”
감은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살아있기에 ‘생겨나는 것’이라는 말.
요즘처럼 생각이 감을 덮어버리는 시대에
그 문장은 묘하게 위로처럼 들렸다.
“우리는 살아있기에 오감을 느낍니다.
그렇게 감을 살려야
‘예상하는 감’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것이 AI는 결코 가질 수 없는,
인간만의 능력이라고 저는 믿어요.
어렸을 때 우리가 뭐 생각하면서 놀았나요?
그저 놀았잖아요.”
그 말을 듣는데,
어쩐지 오랫동안 닫혀 있던 무언가가
조용히 열리는 기분이 들었다.
감이란 건 사라지는 게 아니라,
우리가 외면하고 있을 뿐이라는 사실.
그 순간, ‘느낀다’는 일의 무게를 다시 떠올렸다.
요즘의 우리는 너무 많은 걸 ‘이해’하려 한다.
이해할수록 감은 뒤로 밀리고,
논리와 설명이 감각을 덮는다.
하지만 가끔은,
‘이건 좀 이상한데’,
‘이건 왠지 불편한데’
하는 그 미세한 감각이
가장 정확한 판단이 될 때가 있다.
감이란 건 결국
생각보다 먼저 반응하는,
나만의 안테나 같은 것이 아닐까.
그 미세한 진동을 인식하는 순간,
나는 비로소 다시 느낀다.
어쩌면 감을 회복한다는 건
거창한 변화가 아니라
아주 짧은 순간의 느낌을 외면하지 않고
그대로 두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무언가를 이해하거나 해결하기보다,
그저 느껴보는 것.
결국 ‘감을 허락한다’는 건
세상을 받아들이는 태도이자,
나 자신에게 다시 돌아오는 방식이 아닐까.
살아있기 때문에 느낄 수 있고,
느낄 수 있기에 여전히 살아 있는 것처럼.
살아있으면 감은 언제든 다시 피어난다.
다만 우리가 그것을 무시하지 않고,
조용히 허락할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