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라는 게 뭔데 나를 괴롭힐까

책을 읽지 않아도 살아가는 데 있어 문제는 없다. 단지…

by 사이

책을 읽지 않아도 살아가는 데 있는 문제는 없다. 다만 어제와 다르지 않은 오늘을 살뿐이다. 어제와 같다는 나쁜 건 아니다. 그저 반복되는 일상이 찾아오는 것일 뿐. 어제도 출근했으니 오늘도 출근한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내다 보면 한 주가 가고 한 주가 모여 한 달이 된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간다. 월급날에 스쳐가는 돈은 그날 바로 ‘텅장’이 되어 버린다.


책을 읽는다고 뭐가 달라지겠는가? 달라지는 건 없다. 읽어도 그냥 읽기만 한다면 어제와 오늘은 같다. 정말인지 아닌지는 읽어보면 안다. “이런 책 나도 쓸 수 있겠다”라고 생각한다면 한 줄 써보면 안다. 그 한 줄이 얼마나 어렵다는 것을. 아무런 노력 없이 희생 없이 책이 세상에 나올 수는 없다. 개인 출판이라 하더라도 그렇다. 모든 책은 그 사람의 일부분을 담기 때문이다.


그러면 각자 자기만족에 책을 쓰는 게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이는 그럴 수도 아닐 수도 있다. 그래서 책에도 종류가 있다. 자식 계발서나 실용서 그리고 철학서 등 목적에 맞게 내용이 다르다. 읽으면 바로 나를 달라지게 만드는 책은 없다. 한 문장에 꽂혀 곱씹고 또 곱씹으면서 왜 이 문장이 남는지를 되새겨야 한다. 그러면 자신의 문장이 되고 이는 무의식에 각인되어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


난 행동심리학자나 철학자도 아니다. 그냥 일반인이다. 일반인이 일반인처럼 살아가는 건 당연한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아니다. 일반인이지만 어떤 성공을 원하고 이를 위해 오늘도 내일도 일을 한다. 월급을 받고 가족들과 맛집에서 한 달의 여운을 만끽한다. 행복하다. 하지만 이는 순간일 뿐 29일은 늘 전쟁터다. 사람들과 일에 치여 하루 종일 통화하고 회의하다 보면 한 주는 그저 하루가 되어 버린다.


이러한 삶을 나만 사는 걸까? 만약 그렇다면 너무나 불공평하지 않는가. 왜 사람들은 책을 읽으며 힐링을 하고 변화를 하려고 노력할까? 그건 모두가 경험하는 것들이고 그것이 규칙이 아니란 것을 깨닫기 전까지 빠져나올 수 없다. 가난하니까 계속 가난해야 하는가? 그렇지 않다. 부자라고 계속 부자로 살아가는가? 그렇지 않다. 언제든지 자리는 바뀔 수 있다. 무엇을 하느냐에 따라.


책은 나를 괴롭히지 않는다. 읽으라고 권하지도 않는다. 그저 그 자리에서 현혹되는 제목을 보여주며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누가 나를 괴롭힐까? 바로 ‘자신’이다. 하고는 싶지만 하기 싫은 이유로 고통이라 느껴 벗어나려 한다. 하지만 갈 곳은 없다. 지금 그 자리에 그렇게 어제와 같은 오늘을 보낼 뿐이다.


책을 읽으면 나와 비슷한 사람들을 찾게 된다. 그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왜 나는 이런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라는 느낌이 온다면 그때부터 바뀔 수 있다. 감동은 보이지 않게 나를 바꾸는 큰 에너지다. 온몸에 짜릿함 전율이 느껴진다면 배터리가 충전되듯이 내 몸도 충전이 된다. 뒤통수에 뭔가가 짜르르 올라오는 느낌. 아마도 경험해 봤을 것이다. 그것을 책에서 찾는다면 더 많은 경험을 하고자 책을 찾게 된다.


쓴소리를 하는 책, 위로를 해주는 책, 방향을 알려주는 책, 방법을 알려주는 책, 그리고 내가 누구인지에 대해 알려주는 책. 수많은 책 중에 내게 맞는 몇 권을 읽는 것보다 많은 책을 읽으며 그동안 관심 갖지 못했던 분야로 지식을 쌓아보자. 읽어도 모르면 어떠한가?! 비슷한 주제로 된 다른 책을 읽으면 된다. 그래도 모르면 또 다른 책을 읽으면 된다. 시간이 오래 걸리면 기억나지 않는다고 생각하지만 한 문장만 건져도 대단한 것이다. 딱 한 문장이면 족하다.


책을 읽지 않아도 살아가는데 문제는 없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 다른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기회가 온다. 책을 읽고 안 읽고의 차이는 이것뿐이다. 어제와 같은 오늘을 살 것인가 어제와 다른 오늘을 살 것인가. 선택은 본인에게 달려있다. 어떤 삶을 선택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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