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는 이유 2편
최근 들어 가장 많이 뛰는 곳은 어린이 대공원이다. 특히 여름에 어린이 대공원을 자주 뛰었는데 내가 뛰는 모든 길엔 나무가 있어 그늘 아래에서 뛸 수 있다. 여름 달리기는 햇빛을 맞지 않은 것만큼 소중한 일이 없다. 어린이 대공원 한 바퀴는 약 2킬로 정도 되는데 두세 바퀴 정도 뛰면 만족스럽게 뛸 수 있다.
어린이 대공원의 묘미는 시시각각 변하는 주변 풍경이다. 길게 늘어선 나무들 아래로 사람들은 제각기의 속도로 시간을 즐긴다. 나는 뛸 때 주변의 풍경을 많이 담으려고 한다. 에어팟에서는 좋아하는 데이식스 노래가 귀 터지게 흐르고 내 다리는 숨이 적당히 차는 속도로 구르고 있으며 내 눈은 힐긋힐긋 양 옆을 보며 오늘은 어떤 즐거운 것들이 있는지 궁금해하며 뛰기 시작한다. 나는 나무 사이로 약간의 업힐을 뛰다 보면 놀이공원을 만난다. 꽤 규모가 있는 놀이공원인데 후룹라이드, 자이로드롭도 있다. 웬만한 알짜배기 기구들은 다 있는 셈이지. 기구들이 원색으로 색칠 돼 있어 하늘이 맑은 날엔 정말 새로운 장관을 맛볼 수 있다.
내 시야 오른쪽에 놀이공원이 사라지면 풋살장이 나타난다. 작은 풋살장 두 코트가 붙어져 있으며 형광색의 유니폼이 눈에 띌 때는 어느 팀인지 홀로 궁금해하며 살짝의 내리막을 속도 있게 뛰어 본다. 유독 이 내리막에 길고양이들이 많은데 고양이들을 찍고 싶지만 막상 뛰다가 멈추기가 아까워 매번 눈으로만 담았다. 가끔 고양이들에게 먹이를 주는 시민 분들도 종종 볼 수 있다.
아무튼 내리막을 다 내려오면 유일하게 나무가 없는 구간이 나온다. 평지에서 오르막을 다시 준비하는 짧은 거리이자 어린이 대공원 정문과 가까운 곳이라 사람도 가장 많은 곳이다. 다시 나무 그늘이 드리울 때면 오르막이 시작된다. 미니 남산둘레길 마냥 업다운의 연속이라 지형주를 하기에도 꽤 괜찮다는 생각이 든다. 이쯤 뛰면 다리가 슬슬 풀리고 호흡도 안정돼 가는 시간이라 유지하며 뛸지 조금 더 페이스를 올려 빨리 뛰어볼지 고민이 된다. 하지만 이런 고민이 무색하게 눈앞에 가파른 언덕이 두 번이나 나를 반기고 빠른 페이스 보단 조깅을 자주 택하게 된다. 이렇게 몇 번의 언덕과 즐거운 풍경을 즐기면 금방 2킬로가 채워진다. 그럼 나는 다시 출발점을 지나 다시 한 바퀴를 돌아본다.
5킬로 이상 채워지면 나는 자연스레 구의문으로 나가 자주 가는 카페 입구까지 뛰어가 NRC를 끈다. 매번 땀범벅이 된 채 방문하니 사장님께서는 이제 어떤 거 드릴까요 대신 아이스 아메리카노 준비해 드릴까요?라는 말씀을 건네신다. 오늘은 라테를 마셔볼까 한 고민이 무색하게 바로 아메리카노를 받았다. 땀을 잔뜩 흘린 채 마시는 첫맛은 씁쓸한 맛 뒤로 넘어오는 달콤한 맛. 아, 이 커피 한 잔을 정말 맛있게 먹으려고 뛰지. 오늘도 잘 뛰었다 정말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