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대칭을 위한 강박증, 배우의 아우라가 사라지고, 정해진 틀 안에 의도된 연기를 수행하는 배우들.
영화는 빽빽하고 틈이 없다. 감독이 의도했고, 의도대로 잘 나온 듯. 하지만 시적인 연출, 즉 추상적인 분위기를 선호하는 내게 이 영화는 너무 꽉꽉 들어찼다. 굳이 소설과 시 중에 고르라면, 이 영화는 소설 같은 영화다.
남겨진 빈 공간을 느끼고, 그 공간을 내 나름대로 해석할 수 있는 여지가 이 영화에는 전혀 없다. 감독이 의도한 대로 그 흐름을 따라가야 한다. 감독도 그걸 원하는 것 같다. '케빈에 대하여'처럼 영화임에도 설치미술 같은 시적인 연출법은 이 영화에는 전혀 사용되지 않는다.
꽉꽉 채우고, 그래서 영화 자체가 팽창된 느낌이 강하다. 나에게 이 영화의 연출법은 그냥 그렇다. 확실하게 영화적 문법을 따라가는 영화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영화적 문법을 따라가지 않는 영화도 아니고. 뭔가 어정쩡한 느낌.
액자식 구성도 훨씬 영화에 잘 사용될 줄 알았는데 이미 지나간 기억, 되돌아갈 수 없는 그 기억에 대한 향수, 어제의 세계에서 우리들은 계속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서글픔의 감정을 느끼게 해주는 역할에 지나지 않을 뿐, 영화의 구조에 액자식 구성이 효율적이면서 재치 있게 사용된 것 같지는 않다. 겹겹이 쌓인 이야기 구조에서 사실상 구스타프의 이야기가 대부분이었고, 젊은 작가의 이야기나, 가장 바깥의 이야기는 추임새 정도였다.
생각보다 나치, 파시즘, 계급 문제 등 이 영화를 통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건지 감독의 의도가 매우 분명한 영화고, 영화 자체도 그 의도를 전달하는데 있어, 동화적인 구조를 빌려와 스토리와 캐릭터가 그 안에 녹아들어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냄에도 영화의 어법은 간접적이기보다 매우 직설적이다.
이동진 평론가 글을 읽어봤냐며 난리들인데, 그건 이론가의 시선에서 본 영화고, 직접 작업을 하는 입장에서 본 영화는 또 다르다. 이론가는 이론가만의 눈이 있고, 예술가는 예술가만이 볼 수 있는 눈이 있다. 나의 눈으로 본 이 영화는 이 영화가 그렇게 극찬을 받을 정도인지는 모르겠다는 정도... 잘 만들어졌고, 시대에 따라 변하는 화면비율, 색감, 소품 등 좋은 영화이긴 하지만 그 정도로?... 싶은 영화는 아니라는 것.
영화에 묻어 나오는 감독의 세계관이 냉소적이다. 따뜻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세계를 바라보는 감독의 시선은 이미 자포자기 심정이고, 그럼에도 애정이 남아있어 교감하려고는 하나 그 교감도 적극적인 상호작용이 보이진 않는다. 영화가 굉장히 견고하게 닫혀있다는 느낌이 강한데, 그런 이유 때문인지 단순히 우울한 영화를 본 것 이상으로 이 영화를 보고 난 뒤 기분이 굉장히 불쾌해졌다. 나쁜 건 아니다. 어떻게 보면 좋은 거지만 사실 이런 시선을 가진 작가의 작품들은 참 뭐라 설명할 수 없는 묘한 감정들이 담겨있어서. 마음이 심란해진다.
랄프 파인즈의 천박함과 순수함을 넘나드는 연기를 볼 수 있었다는 것은 이 영화의 분명한 즐거움 중 하나였다.
랄프 파인즈가 여전히 믿고 보는 배우라는 사실을 또 한 번 증명해준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