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드 유토피아

by XX





1. 인물들 옷이나 인공물, 자연물의 강렬한 보색 대비가 이 드라마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다. 채도는 높고 명도는 낮은, 하지만 파스텔톤이 섞인 세련된 색감들이 강렬한 보색 대비에도 불구하고 잘 어우러져있다. 미술에 공을 많이 들인 흔적이 보여서 화면만으로도 만족감이 높다. 이야기 전개도 괜찮다. 흔하디 흔한 음모론이 영드만의 찌질한 감성과 블랙코미디적인 요소와 만나니 눈 둘 곳이 더 많아져서 그런지 조금은 진부하게 이야기가전개가 돼도 계속 몰입하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하지만 배우들의 연기가 이야기 전개에 묻히는 경향이 있어서 여운이 크지가 않다. 배우들의 연기, 즉 캐릭터와 스토리텔링 간의 긴장감이 팽팽하게 유지가 되어야 하는데 배우들이 오히려 끌려다닌다. 배우들의 연기와 극 전개가 긴장감을 유지하며 상호작용을 하게 되면 그것만으로도 이중의 레이어가 생기면서 드라마의 결이 깊어지고 다양해지는데 유토피아를 다 보고 난 뒤에 든 생각은 약간의 반전에 대한 충격, 미술 파트에 대한 만족 정도...


2. HBO에서 리메이크를 한다던데 사실 진입장벽이 높은 영드 치고 유토피아는 미드의 감성과 통하는 부분도 있고, 무리 없이 미국 것으로 소화시킬 수 있는 요소들이 여럿 있다. 잔인하게 사람들을 죽이면서도 말을 아끼는 킬러들, 실험당하고 버려진 아이들, 고독하고 사회성이 결여된 여주인공. 뭔가 있어 보이는, 양복 입은 사내들. 만들려면 얼마든지 부풀릴 수 있는 무한 떡밥들.


3. 와이어 인 더 블러드 이후로 영드에 대한 편견이 사라져서 유명하고 잘 만들어졌다는 영드들을 꽤 많이 보고 있지만 영드임에도 영드의 성질에서 조금 벗어나, 마치 무국적의 느낌을 주는 피철사와는 달리 많은 영드들이 영드의 강한 속성들을 가지고 있고, 영드만의 정체성이 강하다. 개연성의 부족을 딱히 좋다고 볼 수도 없는 헐거운 혹은 멋 부린 연출로 채운다거나 예상 가능한 전형적 영국 캐릭터의 패턴과 인간관계, 캐릭터 성만 강조하고 찌질한 감수성을 리얼리티로 포장한다거나 하는 등등... 그게 자부심으로도 읽히고 부정적으로 말하자면 폐쇄적으로도 느껴지는데 어쨌든 영드만의 진입장벽이 곧 영드만의 장점이 되는 게 아니라는 건 분명하다고 본다. 다만 영드의 전형적인 패턴에서 벗어난 작품들도 보이는데 유토피아의 경우도 영드만의 진입장벽을 오히려 장점으로 만든 드라마가 아닌가 싶고, 나 또한 이런 드라마가 훨씬 경쟁력이 있다고 보는 편이라 국내에서 무조건적으로 대중적인 인기를 누리는 영드들에 대해서는 사실 거부감이 크다. 영드도 잘 골라봐야 한다는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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