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어의 노래, 발 맥더미드

by XX



드라마는 책을 각색한 네 편의 에피소드(The Mermaids Singing, Shadows Rising, Torment, Falls the Shadow)를 제외하고, 그 외에는 전부 각본가의 오리지널 에피소드로 이루어져 있는데, 한 시즌 당 3,4편씩 총 6시즌까지 방영했으니 드라마의 방영 횟수가 이미 책의 출간 속도를 따라잡았기 때문이거나, 혹은 책과는 다른 독자적인 노선을 취하기 위한 의도일 수도 있다. 이유가 어찌 됐든 최근에 또 다른 토니 힐 시리즈가 출간된 걸 보면 드라마가 캔슬됐다는 사실이 잘 믿기지 않는다.

발 맥더미드의 인어의 노래는 일단 캐릭터들을 묘사하는 작위적인 표현이 상당히 불편하다. 드라마의 각색된 에피소드와는 다르게 성소수자의 인권 문제나, 각각의 캐릭터들의 성격과 심리묘사를 깊이 있게 그려냈다는 점에서는 흥미롭지만, 캐릭터들의 몸짓이나 말투 같은 것들이 어떤 부분에서는 세련되지 못하고 도취된 듯한 인상을 풍긴다. 이건 나의 개인적인 취향 문제일 수도 있지만, 이 책의 어떤 문장들은 굉장히 자연스러우면서도 탁월해서 이게 작가의 문제인 건지 아님 번역의 문제인 건지 잘 분간이 안 간다. 이 책의 번역과 관련해서 사람들의 불만이 많은 걸 보면 번역 때문일 수도...

이 책에서 화자는 두 명으로, 전지적 작가 시점과 안젤리카 소프의 시점이 번갈아 나오며 사건이 구성되는데, 초중반까지 두 시점 간의 연결고리가 거의 없어서 조금 늘어지는 감이 있다. 안젤리카가 자신의 범행을 묘사하는 신문기사를 보거나 경찰들을 조롱하는 표현들이 있기는 하나, 이미 몇 번의 변사체 발견 후에 연쇄살인의 가능성을 인정하고 토니 힐이 수사에 투입되는 장면이 전지적 작가 시점의 첫 도입부인 것과 달리 안젤리카의 시점은 처음 범행의 묘사부터 진행이 되면서 현재에서 과거로 돌아가기 때문에 살인마가 어떤 방식으로 피해자를 납치하고 죽였는지에 관해 우리들이 아는 것이 없다고 해도 마치 이미 이전에 한 이야기를 다시 듣고 있는 것 같은 지루함이 있다. 하지만 살인마가 자신의 환상을 살인으로까지 구현해내는 과정이나 피해자를 고문하는 묘사 같은 것은 상당히 섬세해서 섬뜩한 느낌을 준다. 각종 신문사에서 오랫동안 일을 했던 작가의 경력 때문인지 묘사가 정확하면서도 사실적이다.

드라마가 토니 힐이라는 캐릭터에 기대고 있다면 소설에는, 캐릭터의 매력이나 내러티브적 구성은 드라마보다 약한 감이 있음에도 텍스트로만 느낄 수 있는 작가적 세계관이 있다. 감상자의 입장에서는 드라마가 더 좋지만 작가의 입장이라면 극적인 장치나 대중적인 흥미를 끌 수 있는 요소보다는 '나'라는 작가의 정체성을 더 많이 드러낼 수 있는 세계관에 더 집중할 것 같다. 한국소설이라면 더 그런 점들이 깊게 와 닿을 것 같은데, 이미 번역을 한 번 거친 텍스트라서 사실 뭐라고 확실하게 말할 수 없는 게 좀 아쉽긴 하다. 영어공부 열심히 해서 원서로 읽는 수밖에...

발 맥더미드는 자신의 트위터에도 그렇고 인터뷰에도 그렇고, 롭슨 그린의 토니 힐이 자신이 글을 쓰면서 상상했던 토니 힐과 거의 완벽하게 부합한다고 말한다. 드라마와 책간의 토니 힐이 괴리가 크다고 해서 사실 여름에 이 책을 사놓고도 계속 읽지 않았었는데 크게 다른 점은 잘 못 느끼겠다. 책 속의 토니 힐이 좀 더 점잖고, 정상인같이 보이기는 하지만 몸짓이나 말투, 그의 모습을 묘사하는 문장들을 보면 자연스럽게 드라마의 토니 힐이 떠오른다. 하지만 같이 샀던 피철사는 언제 읽게 될지 잘 모르겠다. 2편에서는 토니 힐의 비중도 확 줄어든다고 하고, 뭔가 새로운 인물들이 등장하면서 사건 위주로 흘러가는 것 같은데 일단 토니 힐이 위주가 아니라서 그런가. 드라마와는 다르게 잭 반스가 살아있다는 점은 흥미롭지만... 역시 아직은 드라마가 더 그립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