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의선

by XX





손태영이 연기를 너무 못하더라. 난 이런 거 잘 따지는 편은 아니지만, 일단 몰입이 안 되니 보는 것 자체가 힘들었다. 발성도 제대로 안 되는 것 같던데 욕조씬에서의 독백은 그래서인지 최악이었다. 웬만한 연기력 안 되면 독백은 안 하는 게 낫다.


아내한테 들키고 싹싹 빌었다면서 백종학이 손태영에게 능청스럽게 전화하던 장면은 재미있었다. 사실상 바람을 피고도 이혼당하지 않고 사는 남자들은 다 이러지 않을까? 그놈의 자존심 때문에 체면 때문에.

김강우의 연기를 보는 건 식객 하하하 이후로 세 번째인데 식객에서도 그렇고 의외로 부드럽고 유약한 캐릭터와 잘 어울리는 것 같다. 상당히 남성적인 이미지에다 보진 못했지만 남자 이야기라는 드라마에서도 악역으로 인상 깊었던 것 같은데, 눈동자나 눈매에서 언뜻언뜻 느껴지는 예민하고 나약해 보이는 감성이 만수라는 인물을 지배하는 큰 틀이라서 그런지 영화상에서 김강우가 연기하는 김만수는 그냥 현실에서 실제로 있을법한 전철 기관사 김만수였다.


영화는 전체적으로 조용하고 담담하다. 손태영의 연기 때문인지, 아님 영화 자체의 문제인지, 사회적으로 도덕적으로 그리고 법적 처벌까지, 여러모로 지탄받는 불륜이라는 소재를 적어도 영화 안에서는 설득력 있게 그려내야 하는데 내가 보기엔 손태영의 이야기는 전혀 아무런 다가옴도 없었고 실제로 영화 안에서도 김강우의 이야기가 훨씬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존재감도 압도적으로 크다. 불륜을 미화하는 것도 안 되지만 상처를 받은 여자와 남자라는 점에서 어느 정도는 한나에게 연민이라는 감정 정도는 부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끝까지, 열차에 몸을 던진 여자가 매월 연재되는 샘터와 도넛, 커피를 가져다주던 그녀임을 만수가 몰랐다는 사실이 나에게는 영화 상 가장 슬픈 부분이다.

어쩌면 만나지 않았어야 하는 사람들이 서로의 상처 때문에 만나게 되고 다시 헤어지는, 사실상 나에겐 매우 가벼운 영화다. 감독 인터뷰를 보니 경의선이라는 제목을 굳이 고집한 이유가 분명 있는 것 같은데 나한테는 그런 의도는 전혀 보이지 않았고, 김강우가 이대에서 강의하면서도 남북관계를 다룬 영화는 아니라고 분명하게 못을 박았다. 영화 제목과 김강우의 짧은 대사, 한나의 전공만으로 그 의미를 유추해내기에는... 감독님이 너무 많은 것을 영화에 담으려고 했던 듯...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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