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시대-사랑을 하는 모든 이들을 위한 환상 레시피

by XX





<내 이름은 김삼순>이 방송될 때 다른 사람들처럼 나와 엄마도 엄청나게 열광했다. 엄마가 좋아했던 게 현빈과 김선아였는지 삼순이와 삼식이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엄마의 의지로 드라마 DVD를 샀던 것도 이때가 처음이었다. 그 후로 많은 시간이 지났고 얼마 전 동생 방 책상 아래에서 뭔가를 찾다가 이 드라마 DVD를 발견했다. 구석에 박혀서 먼지만 쌓여가던 걸 꺼내 첫 회부터 다시 보면서 허당끼가 있는 볼매남 현빈과 털털하고 귀여운 김선아는 그대로인데도 내내 웃어야 할 타이밍을 잡지 못해 나는 이 드라마가 정말 엄청난 인기를 몰고 왔던 그 김삼순이 맞는지 의구심이 들었다.

김삼순이 원래부터 이렇게 재미가 없었던 건가 생각해봤지만 그건 아닌 것 같고, 일주일을 기다려가며 설레는 마음으로 드라마에 빠져든 고등학교 2학년 여고생과 다소 어수룩하고 어색하고 잘 알지도 못하면서 아는 척하는 어중간한 사람인 지금의 나는 너무나 달라서가 아닌가 싶었다. 김삼순이 몸매 관리를 하지 않아도, 눈물 콧물이 범벅이 되고 마스카라가 번져서 엽기적인 얼굴이 돼도, 로맨틱 코미디물의 전형적인 여자 주인공일 수밖에 없는 조건을 타고났구나... 하는 것이다. 김삼순과 김진헌이 하는 사랑에는 분명 로맨틱한 구석이 있었고, 그 유명한 삽입곡의 영향도 컸지만 이들이 하는 사랑은 사랑의 끝에 남는 씁쓸함보다는 그 순간의 달콤함을 말하고 싶었던 것 같아서. 그래서인지 다시 보면서 대부분 아무런 감흥이 없이 지나쳤던 드라마가 끝날 때쯤, 방영 당시에는 굉장히 허무했던 결말에 나는 오히려 이상한 위안을 얻었다. '그래도 우리는 지금 사랑하고 있다' 참 드라마틱한 결말이면서도 현실적이다.

중간중간 지루한 느낌에 천천히 느긋하게 보다가 남은 나머지 4회를 오늘 새벽에 몰아서 보며 끝낸 드라마 <연애시대>는 간단하게 말해서 <내 이름은 김삼순>의 결말, 앞으로 계속될 혹은 새로 찾아올 사랑에 설레면서도 분명 그 끝이 보이는 이상한 기분을 안고 시작하는 드라마이다. 달콤함은 애초에 찾을 수 없고, 마치 작품의 BGM 같은 배우들의 담담한 내레이션이 폭발하는 듯한 장면, 피클병을 던지며 처절하게 우는 은호를 보면 역시 이 이상한 기분의 예감은 틀리지 않았음을 알게 된다.

<연애시대>는 내가 본 (많지 않은) 한국 드라마 중에서 대중성을 놓치지 않으면서 작품성도 확실한 수작이었다. 촬영을 다 마치지 못하고 방영을 시작하긴 했지만 어쨌든 사전제작 드라마답게 한 장면 한 장면 밀도가 높았고 코믹하고 아기자기한 가벼움과 진솔함, 무거움이 적절하게 오가는 센스도 좋았다. 드라마에서 등장하는 공간은 제한적이었지만 공간의 활용도 적절했고, 주변 등장인물의 스토리와 은호와 동진의 감정선의 밀도도 높아서 <연애시대>의 방송 1회분이 체감상 다른 드라마의 2,3회분같이 느껴진다. 은호와 동진이 계속 다른 사람과의 새로운 만남, 헤어짐을 반복하기 때문에 기승전결의 구조가 드라마 안에서 두세 번 정도 반복되는데 지루하거나 보면서 지치는 이유는 이 때문이 아닌가 싶다.


이런 사랑이 있으면 저런 사랑도 있다. 연애를 꿈꾸는, 그리고 연애를 하고 있는 지상의 모든 이들을 위함을 모토로 삼고 있는 듯한 <연애시대>는 왜 우리들은 연애를 하고 헤어지는 행동을 반복할까. 왜 결혼이라는 골대에 공을 넣는 해피엔딩에도 불구하고 이혼을 할까. 서로에게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도 우리들이 헤어져야 한다면 그것은 누구의 문제일까에 대한 질문을 계속 던진다. 연애시대임에도 끊임없이 헤어짐을 반복하는 순간은 뭐라고 불러야 할지 알 수 없다. <연애시대>의 결말도 마찬가지였다. 멀리 돌아서 결국 다시 만난 은호와 동진은 행복하지만 그게 영원할까. 그들은 정말 행복한 걸까.

사랑이라는 게 드라마처럼 집안의 반대와 같은 현실적인 문제가 해결이 되고 해피엔딩의 결말로 암전이 된 후 하이킥의 그 유명한 결말 “시간이 이대로 멈췄으면 좋겠어요.”처럼 이 순간이 영원하다면 좋겠지만, 드라마가 끝나도 우리들의 일상은 여전히 계속된다. 그리고 나와 너 사이에 있는 사랑이라는 감정이 어느 순간 떠날 때 그 이유가 항상 드라마같이 논리적일 수는 없다. 현실적인 문제가 아닌, 언제 어디서 불쑥 튀어나올지 모르는 이상한 불안함이 갑자기 우리들에게 다가올 때, 그래서 우리들은 그것을 미리 예견할 수도 막을 수도 없는 것이다. 아주 천천히 내 마음속 어딘가에서 커지는 불안함을 평생 안고 살아가면서 타올랐다가 식었다가 다시 타오르는 순간이 그냥 우리에게 오는 것뿐이다. 그래서 연애시대는 말한다. 지금 이 순간을 사랑하라고. 비록 영원하지 않더라도 우리들은 지나간 기억을 추억하면서 지금 내 옆에 서 있는 연인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수밖에 없다고. 그게 결국 외롭고 기나긴 인생에 우리들이 나름대로의 위로를 던지는 방법이 아니겠냐고. 진부하지만 제일 훌륭한 답이 아닐까. 어차피 평생 동안 같이 껴안아야 할 불안함이라면 그냥 쿨 하게 혹은 찌질하게 인정해주자. 쉽지 않다는 건 알지만 다행히도 때문에 우리들은 그러한 경험을 하기에 살아갈 인생이 충분하다. 그 기나긴 인생 동안 이 정체를 알 수 없는 불안함에 대해 쿨 하게 혹은 찌질하게 인정하는 방법을 우리들은 배우게 될 것이다. 나도 마찬가지고.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경의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