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상은 영화 12 몽키즈의 원작이 되는 크리스 마커의 또 다른 작품이다. 사진이 영상의 연속성을 뛰어넘어 그 이상의 매력을 보여주는 점도 좋지만 특히 내레이션이 정말 인상적이다. 개인적으로는 내레이션이 없었다면 그냥 이미지적으로 괜찮은 영상물, 그 정도 아니었을까 생각이 드는데, 그 정도로 내레이션이 이 작품을 아주 힘 있게 이끌어가고 있다.
내레이션이 매우 시적이라 이 작품을 보면서 처음에는 내레이션의 발화자와 발화 사이에서 헤맸던 기억이 있다. 그러다 점점 작품 속으로 빠져들어서 왜 헤매었던 건지도 잊어버렸지만. 헤맸던 이유는... 아마 일반적인 영화의 구조를 예상해서, 이 내레이션이 내러티브를 위한 텍스트의 역할을 할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그랬던 게 아닐까 싶다. 이 작품 속 텍스트는 단순히 영상에 종속된 텍스트라기보다는 영상 자체를 하나의 문학으로 만들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주인공의 입으로 전달되는 대사의 역할에만 한정해서 텍스트를 읽게 되면 이 작품은 영화적인 완성도에는 한참 못 미치는, 그러면서도 영화를 따라 하고 있는 뭔가 어정쩡한 영상물이 되겠지만, 내레이션 그 자체에 집중하면 마치 아주 나른한 문학작품을 눈으로 감상한 듯한 기분을 느끼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