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가 터널을 지나 집으로 간다

by XX



좁고 긴 공간을 보면 흥분된다고 하는 봉준호 감독. 공간이 주는 폐쇄성과 알 수 없는 공포가 성적 관념과 연결되는 것은 흔하지만 이러한 변태적 성향을 나쁘게 말하면 악취미, 좋게 말하면 그냥 성향이 그의 영화에 일관되게 나타나는 것을 보면서 이 공간이 앞으로 어떤 형태로 발전이 될지 기대되는 것은 사실이다.


살인의 추억은 음울하고 어리숙한 사람들의 몸짓, 말투, 풍경에도 불구 매우 세련된 영화인데, 아마도 그의 공간과 관련한 성적 코드를 통해 드러내는 이중적인 감성이 극단적인 연쇄살인사건이라는 상황과 잘 맞아떨어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실제로 우리들은 이 영화를 보면서 역한 냄새가 나는 살인 현장에 분노를 느끼면서도 박현규라는 캐릭터에게 연민을 느낀다. 이 어두컴컴한 기찻길 터널에서 둘이 몸싸움을 벌이기 전, 서태윤이 발견한 박현규가 술을 마시고 웅크려 자는 장면만 봐도 그렇다. 명백하게 박현규라는 캐릭터는 살인자일 것 같으면서도 살인자가 아니다. 박두만의 "밥은 먹고 다니냐"는 실제로 이러한 이중적인 감정에 대한 매우 직설이면서도 은유적인 표현을 가리키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 영화와 관련된 어떤 기사에서 현직 경찰이 수갑을 찬 박현규의 모습이 어두컴컴한 터널로 사라지는 장면을 <악마가 터널을 지나 집으로 간다>라고 표현한 것을 보고 감탄했는데, 그것은 마치 잡혀서는 안 될 것 같은 살인마에 대한 분노와 연민이 폭발하는 순간으로 나에게 읽혔다. 물론 현직 경찰이 이러한 의미로 저런 표현을 했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안타까운 것은, 실제 일어난 범죄와는 별개로 영화 속이나 드라마, 소설에서 우리들이 접하게 되는 범죄자는 아이러니하게 때로 안티 히어로의 모습으로 되돌아온다는 점이다. 안티 히어로의 가면을 쓰지 않았다고 해도 우리들은 범죄자를 향해 열광한다. 그 이중의 이미지가 우리들에게 오래도록 잔상처럼 남아서 지금도 어느 순간 집으로 돌아간 악마가 몸을 웅크리고 지쳐 잠이 드는 기이한 상상을 하게 한다. 결국 악마는 집으로 돌아갔다는 이 이상한 결말이 낯설지 않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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