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딩의 추억

by XX




난 차종 구분을 못해서 그때도 그냥 그게 그거고 그게 그거 같아보였지만 그 당시 아이들은 학교 운동장에 주차되어있는 비싼 차와 아닌 차를 보고 있으면 참 '가관'이라며 재미있어했다. 모 선생님은 자기 자가용 앞 유리를 부시고, 낙서를 해놓은 학생들을 찾겠다며 눈을 부라리며 씩씩거렸고, 아이들은 소문만 무성한 이사장 며느리가 진짜 사회 선생님이냐 하는 등의 선생님 험담을 가끔씩 했던 것 같다. 사실 고등학생씩이나 된 애들은 선생님에게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자신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으로서도, 험담의 대상이 되는 선생님으로서도.


사립학교의 특성상 왜 이 사람이 우리를 가르치고 있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어른들이 꽤 있었는데 좋은 EBS 교재를 놔두고 특정 출판사 영어교재를 거의 강매에 가깝게 강요하거나 학생들에게 자습을 시켜놓고 컴퓨터로 야동을 보다 들킨, 이름도 변태 같았던 선생님이나, 교과서를 가득 채우는 숨 막히는 필기를 늘 강조하며 자신이 가꾸는 텃밭에 대한 긍지를 수업보다 더더욱 중요시 여겨 텃밭에서 자라는 채소에 대한 장언으로 수업의 절반을 까먹는 선생님 등... 참 가지가지였다.

찌들어 보이는 선생님들 사이에서 당시 젊은 선생님 세 분의 등장은 때문에 우리들에게는 엄청난 자극이었다. 여고에서 젊은 여선생님은 관심에서 제외였고, 나머지 두 분, 두 분 다 영어 선생님이었는데 한 분은 유부남이었고 나머지 한 분은 총각이었다. 이 두 남자가 참으로 신기했던 것은 어느 면으로 보나 너무나 극단적으로 달랐던 데에 있었던 것 같다.


유부남이었던 선생님은 뽀얀 살결에 대충 내 기억으로는 그래서 백돼지 비슷한 별명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은데 그냥 보기 좋은 체격에 호탕하게 웃으며 가끔씩 와이프 욕도 하고 적당한 자랑도 하다가 아이들하고 자연스럽게 섞여들며, 가르치는 것도 적당히 하는, '모든 게 적당히'라는 모토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능숙하게 행동했던 사람이었다. 반면에 총각이었던 선생님은 까무잡잡한 피부에 날카로운 눈매가 포인트였는데 애들 입장에서는 샤프한 외모에 총각이라는 이점 때문이었는지 거침없이 짝사랑을 하거나 좋게 말해 찝쩍대는 경우도 좀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인상적이었던 건 이 총각 선생님의 첫 수업에서의 등장이었다. 굉장히 열정에 찬 모습으로, 산골에서 자라 아무런 사교육도 받지 못하고 계속 방황하다 늦게 명문대에 들어간 자신의 과거를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더니 내가 했으니 '너희들도 할 수 있다'는 식의 용기를 북돋아주며 다른 선생님들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선생님으로서의 책임감과 의무를 열정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하하하 호탕하게 웃으며 '모든 것을 적당히'라는 글자를 얼굴에 써 붙이고 다니는 능글맞은 유부남 선생님과는 너무나 대조된 모습이었으니, 공부를 그냥 놓거나. 적당히 하거나, 명문대를 목표로 열심히 하거나 이 모든 학생들이 이미 학교 선생님보다는 학원에 의지하고 학원 선생님을 훨씬 신봉하는 상황에서 이 총각 선생님의 등장은 굉장히 새로웠고, 한편으로는 안타까웠다.

시간이 꽤 흐른 지금 정확히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선생님으로서 뭔가를 바꿔보겠다며 의지를 불태웠던 총각 선생님은 어느 날 너희들에게 너무나 실망했다며 수업 도중 우리들을 심하게 다그쳤고, 그때부터 이 선생님과 관련된 이상한 소문들이 급속하게 퍼지기 시작했다. 그 소문들이 진실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핵심은 하필이면 이 총각 선생님에게 우리 반 학생들이 심하게 혼난 그 날 이후 믿어야 할지 믿지 말아야 할지 모르겠는 정체불명의 소문들이 급작스럽게 생성됐다는 점이겠다. 

조용조용하게 쑥덕거리는 입들을 통해 퍼지는 알 수 없는 소문들을 가지고서 나 또한 친구들과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넘겼지만 뭔가 불편했다. 인간이란 매우 간사해서, 멋있고 젠틀하며 의욕 넘치던 총각 선생님은 어느 날 보니 능력도 없이 깝치며 그냥 한마디로 재수 없는 진상으로 돌변됐으니 같은 시기에 학교에 들어온 '무난하게 모든 게 적당히'의 유부남 선생님과는 모든 점에서 완벽하게 다를 수밖에 없었다. 유부남 선생님을 영리하다고 봐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학생들 입장에서는 늘 의욕 없는 학교 선생들을 핑계 삼아 팔자 좋게 노는 애들은 안 하는 공부 탓을 학교 탓으로 돌리고, 열심히 공부하는 애들은 학원 공부에 더 집중할 수 있었을 텐데, 갑자기 난데없이 날아 들어온 의욕 넘치는 총각 선생님의 등장이 방해꾼같이 보였겠구나 생각이 든다.

아이들의 성화에 못 이겨 영화를 틀어주고 교실 뒤에서 멍하니 서 있던 그 선생님의 굳어있던 얼굴, 지금 내 기억으로는 마지막인 그 얼굴은 생각해보면 그제야 학교에 어울리는 선생님의 표정이었던 것 같다. '모든 게 적당히'를 몸소 배우고 그것에 적응해가는 얼굴. 그 얼굴이 교재를 강매하거나 몰래 야동을 보거나 남은 인생을 텃밭에 열중하고 있는, 지리멸렬하지만 안정적인 삶, 하지만 권태를 느끼는 삶으로 빨려 들어가는 상상을 해 본다. 그 선생님을 문득 찾아보고 싶었는데 내 모교에는 이미 안 계시고, 성함도 잊어버리고, 그 선생님에겐 나도 의미 없는 학생이었겠지만 결국 나에게도 그냥 선생님일 뿐이었다는 게, 사실 그 석자를 기억한다고 그 선생님을 찾아볼 리는 만무하니 차라리 잊어버린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나는 왜 밑도 끝도 없이 갑자기 이 고딩의 기억이 떠올랐을까. 참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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