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좇는다

Breaking and Entering, 2006

by XX



인간관계란 참으로 기묘하고 서글프다. 가까워질 것 같으면서도 고개를 돌려보면 멀어져 있고 그 거리의 체감은 날마다 다르다. 싫다가도 좋아지고 벌레같이 혐오스러울 때도 있다. 갑자기 동정심이 들고 '이러면 안 되는 거야.'라고 자신을 다잡는다. 좋아서 시작한 관계가 의무적으로 돼버린 순간 우리는 묻는다. 이 지긋지긋하고 괴로운 관계, 그냥 없애버릴까?

친구, 연인, 친구 이상 연인 이하, 아무것도 아닌 관계. 관계라는 단어에는 수많은 꼬리표가 붙는다. 우리들은 늘 관계에 이름을 붙인다. 어떤 이들은 등급까지 매긴다. 상황에 따라서 필요하지 않은 관계가 있고 반드시 필요한 관계도 있으며 그 어디에도 필요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필요한 관계도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언제든지 없애버릴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선택사항이다. 마치 인터넷상의 일촌 놀이를 신나게 하다가 일방적으로 어떤 한 사람을 끊어버리고 차단하듯이 아주 쉽다. 몇 년 동안은 아플지 모른다. 어느 장소를 가도 그 사람이 떠오르고 먹고 입고 보는 순간에도 그 사람이 겹쳐지지만 노래 가사처럼 잠시만 견디면 그 사람과 얽혀있는 물건들이 방 청소를 하다가 우연히 내 눈 안으로 들어올 때, 태연하게 웃으면서 지나칠 수 있다.

이것은 관계의 맹점이다. 관계는 모래성이다. 견고하지만 허무하고 냉담하게 허물어진다. 횟수에 상관없이 언젠가는 잊힌다. 우리는 이런 짓을 몇 번이나 반복한다. 그리고 관계의 연장선 상에 있는 가족은 위에 열거한 관계들의 성격보다는 좀 더 진전된 성향을 띄고 있다. 그 누구도 가족으로 인연을 맺을 때, 서로의 관계에 있어 암울하고 불안한 미래를 상상하지 않는다. 다른 관계처럼 쉽게 헤어질 수 없고 때문에 가족은 극복하고 이겨내는, 따뜻한 성질을 지니고 있다.

그럼 가족은 따뜻함만 있으면 유지가 가능할까? 믿음과 믿음 또 믿음. 따뜻한 믿음만 있으면 가족은 괜찮을까. 아니다. 가족은 훨씬 복잡하고 난해하다.


영화 <브레이킹 앤 엔터 링>의 윌의 가족은 잘못된 걸 알고 있고 그 이유도 알고 있지만 길 잃은 양처럼 더 이상 관계를 맺을 의지를 상실하고 멈춰있다. 일에만 파묻혀 있는 아빠의 관심을 바라면서도 무관심한 아빠에게 그의 차키를 몰래 숨겨놓고 주지 않는다. 잠을 자지 않고 아이스크림만 찾으며 다 마르지 않은 머리가 축축한데도 노란색 바느질 자국의 수건은 끝까지 거부한다.

영화 안에서 비는 자폐증 환자이지만 일상생활에 아무런 어려움도 없다. 비의 자폐증 증세는 결국 주위 사람들이 만들어낸 결과다. 무관심하고 차가운 그들의 감성이 비를 힘들게 하고 슬프게 한다.


10년 전의 첫 만남의 느낌은 사라지고, 비의 자폐증은 윌의 이해심을 넘나들며 그의 동거녀 리브는 그런 윌이 불안해서 자신에게 믿음을 줄 것을 요구한다. 하지만 믿음이란 너무 추상적이고 깊이가 없다. 믿음을 상대방에게 강제로 요구할 때, 그 믿음은 한없이 가벼워진다. 더 이상 따뜻한 믿음이 아니라 사람을 속박하는 집착이 된다. 이 순간 그들은 자신들에게 묻는다. 과연 우리들의 관계는 계속 지속될 수 있을까.

관계의 맹점은 그들에게 파고든다. 조금씩 옆에 있는 소중한 사람의 존재가 잊혀져 간다. 옛날처럼 손이라도 물면서 감정을 드러내면 좋겠건만 윌과 리브는 더 이상 감정적인 소모를 원하지도 않고 대화도 하지 않는다. 그들은 그래야 하는 이유도 잊어버렸는지 모른다.


윌의 외도는 아주 조용하게 물 흐르듯이 다가왔다. 그는 답답했을 것이다. 계속 칭얼거리는 아이와 아이에게 더 신경 쓸 것을 바라는 리브는 그를 묶어두는 새장이었고, 리브와의 첫 만남처럼 다른 여자와의 키스는 그를 두근거리고 달콤하게 만들었다. '왜 우리는 이렇게 됐을까. 난 그저 사랑이 하고 싶었는데. 우리의 만남이 첫 만남처럼 늘 설레었다면.'

모든 사람들이 욕해도 그 자신에게는 불가항력이었을지도 모를 그의 행위는 결코 가족이 완벽할 수 없음을 말해준다. 가족도 관계 안에서 형성되고 관계의 법칙에 순응한다. 쉽게 쓰고 쉽게 지우 듯이 어느 순간 다가온 관계의 정체는 그가 다른 여자와 쉽게 섹스를 하게 만든다.

그의 외도는 대화를 원하지 않는 창녀, 끊임없이 도둑질을 하는 소년, 자신의 아들을 지키기 위해 윌과의 정사사진을 몰래 찍어 협박하는 여자와 다를 게 없다. 뿌연 안개와도 같이 사람 사이의 관계는 분명하지 않고 흐릿해서 언제 없어질지 모른다. 10년 동안 결혼하지는 않되 동거는 하는 윌와 리브의 관계도 그와 마찬가지다. 가족이지만 가족이 아니기 때문에 그들의 관계는 가벼울 수밖에 없다. 영화의 윌의 가족의 형태와 결혼은 했지만 혼인신고는 하지 않는 사람들이 현실에서 빈번한 것은 가족이라는 관계가 믿음만으로는 결코 유지될 수 없음을 말해준다. 그것은 비단 가족뿐만 아니라 모든 관계가 그럴 것이다.


Breaking and Entering브레이킹 앤 엔터 링은 깨부수고 들어가기. 즉 무단침입 정도로 해석된다. 갑자기 타인의 삶에 끼어든 무단침입은 우리의 관계와도 같다. 잊히고 만들어지고 또다시 잊히는 관계는 이 영화의 담담한 분위기처럼 조용히 우리의 삶에 무단침입을 한다. 그럴 때면 우리는 때로 주위의 모든 것이 버거워 잠시 비워두고 일탈을 꿈꾼다. 그 끝을 생각하는 것은 잠시 접어둔 채.

영화의 사실적인 관계의 묘사는 그게 당연한 것인데도 보는 이를 서글프게 한다.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그때의 느낌을 더 이상 떠올릴 수 없다는 게 관계의 속성인데도 우리는 계속 관계를 맺고 있다. 어쩌면 일탈을 꿈꾸며 끝을 생각하지 않는 것은 그 끝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윌과 리브의 관계는 해피엔딩이었지만 확실하지는 않다. 어차피 우리의 삶은

무단침입의 연속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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