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욕망이 있다. 가장 원초적이고 솔직한. 그들에게는 그것이 삶의 원동력이다. 누구는 남성을 향한 성적 욕망이고, 어떤 이에게는 여자가 되고 싶은 욕망, 그리고 배우가 되고 싶은 욕망, 또는 성공을 향한 욕망.
이 욕망을 사람들은 불행하고 나쁘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나조차 이 욕망들이 감당이 안 될 정도니. 단순히 동성애에 대한 혐오가 아닌 너무나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이 욕망들의 나열이 부담스럽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이것은 우리들의 욕망이기도 하다.
영화를 보지 않고 단순히 스토리만 본다면 나쁜 교육을 당한 피해자가 복수하는 하는 동시에 사랑하는 연인 간의 애절한 러브스토리로 들릴 수도 있겠다. 하지만 들여다보면 전혀 애절하지도, 전혀 따뜻하지도 않다. 피해자와 가해자의 경계선도 뚜렷하지 않다. 누가 피해자이고 누가 가해자일까? 마놀로 신부는 가해자이고 이나시오는 피해자일까? 이나시오는 어린 시절의 마놀로 신부와의 성적 관계가 아니었으면 봉긋하고 탐스러운 가슴에 집착하지 않았을까. 그건 아무도 모른다. 이 영화의 모든 등장인물들이 가해자임과 동시에 피해자인 것처럼 그 어떤 것도 확실하게 말할 수는 없다. 삶이라는 게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으니까.
어쩌면 마놀로 신부가 가장 순수한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 그의 죄라면 남자를 사랑한 것 밖에 없다. 자신과는 너무나 다른 순수한 소년 혹은 청년들을. 그는 자신의 욕망에 솔직했다. 적어도 이나시오, 앙겔, 엔리케처럼 과거에 얽매이지 않았다. 이미 사라져 버린 순수함을 가장하고 과거 속에서 계속 맴도는 그들은 누군가를 계속 탓하고 미워한다. 그렇게 해야 자신이 피해자가 될 수 있으니까. 그들에게 있어 마놀로 신부는 항상 가해자였고 그래야만 했다.
나쁜 교육은 현실이다. 나쁜 교육을 권하는 사회가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인 셈이다. 우리는 계속 나쁜 교육을 받고 나쁜 교육을 가르친다. 곧 우리도 역시 피해자임과 동시에 가해자가 된다. 마놀로 신부는 현실에서는 누구의 역할인가. 타자가 될 수도 자신이 될 수도 있다.
나쁜 교육은 특별한 게 아니다. 욕망 그 자체가 곧 나쁜 교육이다. 그러니 더럽다고 욕하지 말자. 당신 얼굴에 침 뱉는 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