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카리오

by XX




생각보다 영화를 구성하는 이야기의 커다란 축 몇 개가 긴밀하게 연결이 안 된다. 러닝타임에 비해 밀도가 꽉 차 있어서 보고 난 후에 정리하기 힘든 영화가 있는 반면에 구멍으로 바람 빠지듯이 스토리 진행 사이사이 텅 비어있는 틈이 많아 비교적 밀도가 낮은 영화도 있는데 시카리오는 후자였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영화의 감정선이 응축돼서 영화 특유의 건조함과 함께 터지듯이 폭발하지 않고 허공에 계속 산만하게 흩어지기만 하다가 끝에 가서는 건조함만 남는다.

구원이 불가능한 암울한 세계를 드뇌 빌뇌브는 수단이 아닌 목적처럼 존중한다. 드뇌 빌뇌브에게는 영화에서 그 세계관이 그 어떤 것보다 강력한 존재감을 드러내야 한다고 생각했을까. 대부분의 영화에서 주인공은 무력해도 어떤씬이든 튀기 마련이다. 주인공을 위해서 만들어진 영화이며 주인공과 이야기를 계속해서 같이 가기 때문이다. 케이트는 계속 배경에 묻히고, 배제되는 건 아니지만 이야기를 보조해주는 수단으로 계속 이용당한다. 결국 인물들은 아무리 발버둥 쳐도 정해진 운명을 뛰어넘을 수 없고, 감독도 그들의 부당한 처연함과 그들의 소멸을 담담하게 응시하고 있다. 인물과 세계관이 같은 힘으로 서로 밀고당기기를 하거나 압도적으로 인물이 존재감이 강한 영화가 있다면 시카리오는 압도적으로 세계관의 존재감이 강해서 인물들은 계속 세계관에 잠식당한다. 드뇌 빌뇌브의 영화를 세 편 정도 봤는데, 자기 이야기에서 인물들이 튀는 것 자체를 좋아하지 않는듯한 느낌을 강하게 받는다. 어쩌면 이야기에서 인물들은 그냥 부속품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고, 그의 영화 속, 인간 불신, 인간 혐오와 관련이 있을지도...

딱히 기승전결의 형태로 영화가 진행되는 것 같지 않고, 이야기의 형태도, 눈 앞의 한 장의 설계도를 조각조각 내서 알쏭달쏭하게 배치했다는 게 더 어울려 보인다. 그의 영화는 마치 한 장의 이미지이자, 상영 내내 관객들은 나머지 조각을 찾는 수행자와도 같다.



*레딧의 채팅에서 감독은 제프리 도노반의 역할은 원래 시나리오에서는 더 비중이 적었다고 한다. 제프리 도노반이

나온 줄도 모르고 있었는데 목소리도 좋았고 지금까지 은근 기억에 남는 역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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