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좇는다

월드워 Z

by XX





대체로 잘 만들었다고 평가되는 좀비 영화를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 무엇인가 했을 때, 나는 그 원동력을 서사구조에서 찾지 않는 편이다. 좀비들이 나타난 후, 그것의 발생 원인을 찾고 전투적으로 대응하기보다 과정에서 인간들 간의 심리싸움에 집중하는 것은 넓고 거대한 눈으로 객관적인 풍경을 만드는 것이 아닌, 좀 더 직접적으로 등장인물들 간의 관계에 깊숙하게 침투하여 미시적으로 곳곳을 들추고 확대하고 헤집는 것이다. 그래서 영화의 서사구조는 단순해지지만 서사가 설명해낼 수 없는 미시적인 요소들은 매우 단단하고 섬세해진다.

월드 Z의 경우는 정 반대다. 미시적인 요소들을 모두 깔끔하게 제거했다. 영화의 초반 가족을 잃은 토미를 제리와 그의 아내가 대신 보살피는 일이나 제리가 가족을 배에 계속 머물게 하기 위해 그가 받은 제안을 아주 짧은 갈등을 뒤로하고 바로 수락하는 상황이나, 모두 망설임이 없다. 갈등도 최소화됐다. 영화의 시작에서 제리의 딸이 천식을 앓고 있음을 보여줌으로 해서 우리들은 어떤 문제가 생길 것을 예상하지만 생각보다 그 문제는 가볍게 해결된다. 또한 두 딸이 느끼는 공포와 불안함을 영화는 초반에 그들의 얼굴을 클로즈업해서 보여주어 그 장면이 어떤 암시의 역할을 할 것처럼 받아들이게 하나 그것 역시 장면과 장면을 연결시키는 쓰임새 이외로는 사용되지 않는다. 더 킬링에서 목석같지만 음울하고 예민한, 이 이중적인 이미지를 경계에 서서 아슬아슬하게 표현해내는 미레일 에노스의 탁월한 연기도 이 영화에서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 이 영화에서 가장 훌륭한 장면은 제리와의 통화가 갑자기 끊어지고 울듯 말 듯 숨죽이며 짓는 미레일 에노스의 미묘한 표정을 몇 초간 잡아주던 순간이었지만, 그 섬세한 긴장감도 이스라엘이라는 공간의 전환으로 사그라든다.

 그렇다면 월드워 Z는 봐줄 만한 장점이 전혀 없는 영화인가? 그렇지는 않다. 위장 백신이 만들어지기까지의 험난한 과정에서 실은 이미 초반, 제리에게 그에 대한 아주 강력하고 멋진 힌트를 던져주고 허무하게 죽어버린 하버드 박사라든가, 예루살렘이나 웨일즈에 비해 너무나도 초라하고 조악한 세트장의 느낌이 물씬 풍기는 평택의 미군기지 장면과, 마치 광고를 삽입한 듯한(그런데 찾아보니 실제 PPL이란다ㅋㅋ이렇게 노골적으로 광고를 하다니...) 펩시의 등장을 제외한다면 몰입도 있는 오락영화로 손색이 없다. 특히 영화가 끝나고 난 뒤에도 여운이 계속 남는 것은 분명 이 영화가 등장인물들 사이의 갈등구조를 모두 쿨하게 삭제하고, 가장 단순한 서사의 뼈대만 남겨 놓았음에도 불구 단단한 구심점이 존재하기 때문인데, 그런 이유로 너무나 쿨한 이 영화가 생각보다 단순해 보이지 않는다. 아마도 쿨하면서 서사까지 단순했다면 이 영화는 최악이었겠지만, 영화 안에서 계속 이동되는 공간과 그 공간에서 표현되는 좀비들의 등장과 확산이라는 구심점이 다행히 영화의 정체성을 단단하게 잡아주고 있다. 그래서 공간마다 반복되는 기승전결의 구조에도 공간의 특성에 걸맞은 좀비들의 등장과 확산이 시각적인 효과와 결합하니 영화가 주는 의미는 크게 없을지라도 공간이 주는 잔상이 계속 여운으로 남는 것이다. 특히 예루살렘의 장벽을 기어오르는 좀비 떼들의 아수라장은 그동안의 좀비 영화에서 가장 혁신적인 쾌감을 주는 장면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시각적인 만족도가 높다. 예루살렘의 장벽이 주는 안전함이 전복되는 순간 벌어지는 상황이라는 긴장감도 이러한 쾌감에 한몫했을 것이다.

 그래서 비록 치명적인 결함, 가족과 헤어지고 고군분투하는 제리의 모습에서 왜 저 남자가 저렇게 생고생을 하는 것인지 납득할 수 없고 와 닿지 않는 캐릭터의 감정선에도 불구 어찌 됐든 화면을 장악하는 공간들과 그 안의 좀비 떼들, 그 하나만으로도 이 영화의 오락성은 충분하다. 생각보다 9천원이 그렇게 아깝지는 않았다는 뜻. 다만 속편이 제작될 거라는 말이 있던데, 다음에 나올 2편이 또 이번 영화와 비슷하다면 관객들은 아마 굳이 또 같은 영화를 극장에서 봐야 할 필요성을 못 느낄지도 모른다.

판권 따기 힘들었다고 뽕을 뽑겠다는 생각으로 덤비지 말고, 시리즈의 존재 의미를 정확히 파악하고 만들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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