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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길 Jul 22. 2021

청춘은 우울한 파란색

청춘은 왜 힘내야 하나요

  내 나이는 스물 다섯이다. 흔히들 '청춘'이라 부르는 나이다. 내가 아프면 가까운 어른들은 '젊은 게 노인네같이 골골댄다'고 했고, 그럼 나는 입을 삐죽이며 '젊어도 얼마든지 아플 수 있는데'라고 생각하곤 했다. 어른들이 나를 청춘이라 부를 때가 싫었다. "한창 좋을 때다.", "걱정이 없을 때다"라는 말이 따라붙는 내 나이. 내 속은 곪을대로 곪아있는데 그런 말을 들으면 내가 이상한 사람이 된 것 같았다. '한창 좋을 나이'에 '한창 좋지 못한 상태'인 나. 나이라는 정체성과 우울이라는 상태가 부딪칠 때 나는 이질적인 존재가 되곤 했다.


  내가 중학교에 다니던 무렵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책이 대유행을 했다. 당시 나 역시 그 책을 감명깊게 읽은 기억이 난다. 아픈 청춘이지만 힘을 내서 살아가겠다는, 내 운명을 반드시 바꿔놓겠다는 중학생답지 않은 당찬 포부도 가졌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대학교에 들어온 후 나는 '아프니까 청춘'이라는 말에 큰 반발심을 가졌다. 왜 청춘은 아파야만 하는가. 왜 청춘이기에 아픈 것이 당연한 것인가. 아프면 병원에 가야지.


  청춘에 대한 사회적 정의와 생각. 나는 이것이 청춘을 더 아프고 우울하게 하고있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나는 내가 겪고 있는 우울과 불안, 고생들이 청춘들의 성장을 위해 '당연히' 뒤따르는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젊을 때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데 내가 겪는 고난이나 고생쯤 혼자 얼마든지 버텨내야 하는 것이라고 나 자신을 채찍질했다. 이는 내 병을 키운 원인이자, 병원 내원을 미룬 이유가 되었다.


  물론 사람들은 누구나 우울함과 불안함을 느낀다. 하지만 이러한 현상이 지나치고 지속적이라면 병원을 찾는 것이 맞다. 내가 아무리 청춘일지라도 말이다.


  청춘(靑春)은 한자어로, '푸른 봄'이라는 뜻이다. 만물이 소생하는 봄처럼 한창 때라는 뜻일 테지만 나는 여기서 '봄'보다 '푸르다'는 말에 더 관심이 간다. 영어로 'I feel blue'는 우울하다는 뜻이다. 직역하면 '파란색을 느낀다'는 말인데, '코로나 블루'라는 말에서도 알 수 있듯 서양권에서는 주로 우울함을 파란색으로 표현하곤 한다. 맞다. 나의 청춘은 파란색이다. 나의 청춘은 우울하고 그것은 이상하지 않다. 


   그래. 나는 청춘이다. 아프다. 그래서 병원에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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