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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길 Jul 24. 2021

어른이 되는 게 아니라 우울한 거예요

무뎌짐, 그리고 우울증

  나는 어릴 적부터 눈물이 많은 편이었다. 툭하면 울음보를 터뜨려 어른들에게 자주 혼나기도 했고 친구들의 놀림거리가 되기도 했을 정도로 울보였다. 성인이 되어서도 마찬가지였다. 대외활동이 끝난 게 아쉬워서 울고, 어린 날의 흑역사가 생각나서 울고, 친구의 한마디가 서러워서 울었다. 그렇게 눈물이 많아서 어떻게 살겠냐는 엄마의 핀잔을 들을 때 그게 또 서러워 울기도 했다.


  한창 마음이 힘들 때 나는 거의 매일 울었다. 내 의지가 아니었다. 그냥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눈물이 쏟아졌다. 길거리나 지하철에서도 갑자기 감정을 주체할 수 없어 눈물을 흘린 적도 많다. 하지만 나는 내게 정신적인 문제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어릴 때부터 그랬으니까. 그냥 나는 원래 그런 아이니까. 그런데  어느날부터 눈물을 흘리는 날이 적어졌다. 친구들이 먼저 괜찮냐고 물어볼만한 큰 일에도 나는 더이상 울지 않았다. 그리고 그 신호를 조금 기쁘게 여겼던 것 같다. 눈물이 사라지다니. 나도 이제 조금은 강해지고 성장했구나.


  나는 무뎌지는 게 어른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린 아이들은 무얼 봐도 새롭고 신기하니 다채롭게 느끼고 반응하지만 어른들은 그렇지 않은 것처럼, 나이가 들수록 원래 그렇게 삭막해지고 무뎌지는 거라고. 그건 어쩔 수 없는 섭리인 거라고, 그래서 나는 어른이 되기 싫다고 했다. 하지만 어쩌면 대부분의 어른들은 무뎌지는 게 아니라 우울해지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삶에 있어 꿈을, 재미를, 사람을 잃어가면서.


  병원에 가서 우울증 진단을 받았을 때 나는 감정의 무뎌짐이 이상증세라는 것을 알았다. 내가 강해진 게 아니라 울 기력도 없었다는 것, 무기력에 빠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고보니 나는 눈물과 슬픔이란 감정에만 집중했는데 기쁨, 즐거움, 사랑, 분노 등 다양한 감정에 무뎌져 있었다. 모든 게 '그러려니'였다. 예쁜 하늘을 보면서도 '그러려니'. 무례한 말을 듣고서도 '그러려니'. 내가 내 삶 전반에 무관심하고 무기력해졌다는 것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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