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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길 Jul 25. 2021

아무것도 하기싫다

무기력할 때 놀면 어때

  앞서 적었듯 나는 완벽주의자 성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연, 월, 주, 일 별로 세세한 목표와 계획을 짜는데 목표한 바를 이루지 못했을 때의 패배감이란 이루 말할 수 없다. 사람들은 내게 참 열심히 산다고 했다. 내가 생각해도 나는 참 열심히 살았다. 대학교에 입학한 후 여러 아르바이트를 뛰면서도 좋은 성적을 놓치지 않았고 대외활동이나 소학회 활동도 했다. 일이 없을 때는 독서를 하든, 뉴스를 보든 뭐라도 하며 자기계발을 해야 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 내가 뒤쳐지고 있다는 느낌을 두렵고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순간부터 에너지가 달리기 시작했다. 평소같으면 거뜬했을 스케줄을 소화하는데 많은 힘이 들었다. 잠깐의 외출이 피곤했고 그냥 아무것도 하기가 싫었다.  휴일에는 밀린 집안일이나 자기계발을 하곤 했는데 침대에 붙어 하루종일 잠만 자는 시간이 늘어났다.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어 집앞 카페라도 나갈까했지만 몸이 물에 젖은 솜처럼 무거워 말을 듣지 않았다. 영화를 보는 것도, 책을 읽는 것도, 스마트폰으로 유튜브 영상을 보는 것조차 귀찮았고 흥미가 가질 않았다. 나는 무기력에 빠져들고 있었다.


  나에게 있어서는 일의 실패, 타인의 비난보다 무서운 게 무기력이었다. 핑계를 댈 여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외부적인 요인이 아닌 오로지 나의 게으름때문에 하루를, 한달을, 인생 전체를 망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스스로가 한심했다. 죽어라 노력해도 무엇 하나 이루는 게 힘들 세상인데, 이렇게 누워있을 시간이 어디있냐고 스스로를 다그치고 비난해도 나는 전혀 말을 듣지 않았다. (나는 이 무기력이 우울증의 대표적인 증상이라는 것을 나중에서야 알았다.)


  몸과 마음은 상호작용한다는 말을 수없이 들었지만 막상 와닿지는 않았다. 몸이 건강해야 마음도 건강하다는 말에는 공감했지만 마음이 건강해야 몸이 건강하다는 말에는 그다지 공감할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나는 우울증을 겪으며 절실하게 느꼈다. 마음의 병이 몸을 지배하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무섭고 큰 일이라는 것을 말이다. 사실 아직도 무기력을 받아들이는 일이 가장 힘들다. '내가 지금 아무것도 하기 싫구나'라고 온전히 나의 감정을 받아들이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에는 영 익숙해지지가 않는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동안 끊임없는 우울과 불안감이 들기 때문이다. 


  병원에 다니며 이 감정을 털어놓았을 때 의사는 "지금의 계획에서 10-20% 정도의 계획만 짜고 계획을 다 이행한 후에는 마음 편히 노세요. 놀면 어때요."라고 말했다. 스물 다섯 인생에서 처음으로 '놀아도 된다'라는 말을 들었던 날이다. 뒷통수를 한대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그렇지. 놀고 쉬어야 에너지가 생기고, 그 에너지로 다시 일을 하지. 일하기 위해 놀자. 일하기 위해 쉬자. 지금 나는 무기력할 때 "그럼 어때"라는 말을 의식적으로 되뇌인다. 그놈의 완벽한 사람놀이를 하다가 나 자신을 잃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오늘도 역시 중얼거린다. 놀면 어때. 그럼 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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