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를 숨겨왔던 너에게 쓰는 편지
안녕 빛길. 참 오랜만에 너를 위로하는 편지를 쓰는 것 같아. 그동안 나는 너에게 무언가를 바라고 채찍질하는 글만 써왔으니까. 오늘은 오랜만에 학교선배들을 만났어. 내가 우울증과 식이장애로 힘들어한다는 걸 아는 선배들이었지. 선배 중 한명이 꽃 한송이를 내밀더라. 내 기분이 좋아졌으면 좋겠다고 말이야. 그 작은 꽃 한 송이 덕분에 그날 나는 꽤 괜찮은 하루를 보냈던 것 같아. 어떤 선배는 진심으로 나를 위로하는 말을 건네고 또 어떤 선배는 자기가 다니는 요가 스튜디오에 나를 데려가기도 했어. 몸과 마음이 건강해졌으면 좋겠다면서. 내 상처를 안아주고 감싸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신기하고 고마웠어. 얼마 전엔 택배 하나를 받았다. 오랜 친구가 보내온 택배였는데 그안엔 찬거리가 잔뜩 들어있었어. 꼬박꼬박 규칙적으로 밥을 챙겨먹으라며 보내온 거였지. 그 친구 역시 나의 정신과 내원 사실을 알고 있던 친구야. 참 무뚝뚝한 친구였는데 그런 방식으로 나를 응원하고 위로하더라.
학창시절 너는 친구들에게 이런 말을 참 많이 들었어.
"난 너랑 친하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생각해보면 네가 어떤 아이인지 잘 모르겠어"
많은 친구들이 네게 서운해했지. 네 이야기를 잘 하지 않는다고 말이야. 그럴만 해. 너는 늘 실없고 웃긴 이야기, 가볍게 사라져버릴 이야기들로 친구들과의 시공간을 채우곤 했으니까. 넌 무겁고 힘든 이야기를 하는 것 자체를 어려워했어. 다 똑같이 힘든 세상일텐데 혼자 유난떠는 사람처럼 보이긴 싫었겠지. 또 너의 약한 면을 보이는 게 흠이 될까 무서워했어. 언제 떠날지 모르는 사람들에게 굳이 약한 면을 보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지. 그만큼 사람들을 믿지 못했던 거야. 한번 너의 마음을 터놓으면 그 사람에게 온전히 의지하게 될까봐, 그게 습관처럼 굳어질까봐 걱정했어. 세상은 혼자 살아내는 거라고, 네 상처는 너만 이해할 수 있다고 고집을 부렸지. 지금 보면 그게 네 병을 키우는 원인이 되기도 했던 것 같아.
빛길아, 나는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참 많아. 내 아픔에 공감하고 꾸준히 나를 응원해주는 사람들이 있어. 이제야 조금씩 깨닫는건데 가끔은 그 사람들에게 내 마음을 이야기하고 기대도 괜찮은 것 같아. 종종 마음을 터놓고 공유한다는 게 타인과 나를 끈끈하게 만들어주기도 하더라. 마음을 터놓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되는 면도 있고 말이야. 지금의 난 온전히는 아니더라도 조금씩 사람들을 믿어가고있어. 내 아픔과 흉을 흥미거리로 여기는 사람들만 있는 건 아니라는 것, 진심으로 나를 걱정하고 안아주는 사람들이 더 많다는 것을 깨닫고 믿어가는 중이야.
이제는 내 몸과 마음이 얼른 건강해져서 나도 누군가의 아픔을 감싸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싶다는 바람이 있어. 내 아픈 경험들이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는 데 더 많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하고. 세상 곳곳엔 사랑이 있다는 걸, 그 사랑에 가끔은 기대도 된다는 걸 네가 더 어서 깨달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너 역시 사람과 세상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어. 넌 잘 이겨낼 거야. 그럼 또 편지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