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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길 Oct 14. 2021

케이크를 샀습니다

아무 날도 아닌 날

케이크를 샀습니다. 오늘은 아무 날도 아닙니다만, 그냥 생크림이 듬뿍 올라간 케이크가 먹고 싶었거든요.

집 근처 빵가게에 들렀습니다. 아무 데서나 볼 수 있는 프랜차이즈점은 아니고, 동네 특유의 촌스러움이 묻어나는 작은 빵가게입니다.


두개 남은 케이크를 번갈아 보고 고민합니다.

케이크를 살지 말지 말입니다.

특별한 날에 누군가와 함께 먹던 케이크를 오늘같이 평범한 날 혼자 사먹으려니 어색하기 짝이 없습니다.


"이 케이크 하나 주세요."

결국 저렴한 케이크 하나를 고릅니다. 친절한 가게 주인은 케이크를 포장하며 묻습니다.

"초는 몇 개 드릴까요?"

사실 초는 필요하지 않습니다. 오늘은 아무 날도 아니니까요. 그렇지만 초 세개를 달라고 합니다.


집으로 향하는 길. 아무도 없을 저만의 공간을 생각합니다.

집에 가서 해야 할 일들을 떠올리니 오늘도 틀림없이 날을 새고 잠이 들겠구나 싶습니다.


집에 도착한 후 옷을 갈아입습니다.

혼자만의 조용한 공간에서 케이크를 꺼내보니 

누군가와 함께 케이크를 먹던 날들이 떠오릅니다.

누군가와 함께일 땐 그런 걸 떠올릴 새가 없었는데

혼자 케이크를 먹으려니 그런 게 다 떠오르더라고요.


의식처럼 초 하나를 케이크에 꽂아봅니다.

촛불을 켜고 가만히 바라보다 후 입김을 불어 초를 끕니다.

케이크 하나를 샀을 뿐인데 어쩌다보니 혼자만의 파티가 되었습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스스로에게 그동안 고생했다는 말도 건네봅니다.

타인에겐 아무것도 아닌 일들일테지만, 나름 최선을 다 했으니 그걸로 되었습니다.


어느새 아무 것도 아닌 평범한 날이 기억에 남을 소중한 날이 되었습니다.

다시 힘을 얻어봅니다.

혼자만의 작은 이벤트도 나쁘지 않은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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