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속 없는 삶을 마주한 날
대학교를 졸업했다. 올해로 스물여섯이 되었으니 이십 년 가까운 시간 동안 학생 신분으로 살아온 셈이다. 누군가 내게 직업을 물을 때 프리랜서니, 이것 저것 한다느니 하는 애매한 답변을 내놓기 싫어 '대학생입니다'라는 한마디 말로 퉁쳤는데 이젠 그럴 수 없게 되었다. 시국이 시국인지라 제대로 된 식 없이 졸업을 하게 되었지만 나름 열심히 학교 생활을 했고 대학에 대한 애정이 대단했기에 역시 졸업은 아쉬운 기분이 든다. 더구나 간간이 일을 받아먹는 초짜 프리랜서 입장에서 학교 품을 떠나는 것은 대단히 부담스러운 일이다.
아주 잠시, 대학원 진학을 생각한 때도 있다. 뒤늦게 공부에 재미를 붙이기도 했고, 배우고 싶은 것들이 많으니 대학원을 가도 나쁘진 않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대학원에 가려는 궁극적 이유를 따져 물으면 소속 없는 나의 모습을 받아들일 용기가 없다는 것이 솔직한 대답이었다. 누군가 내게 직업을 물으면 '그냥 이것저것 하는 프리랜서예요'라는 애매한 답변보다 '대학원 다녀요'라는 답변이 더 그럴듯할 테니까. 그러나 언젠가 맞이해야 할 일을 유예하기 위해 또다시 큰돈과 시간을 들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그렇게 할 경제적 여건도 되지 않았다.) 어영부영 시간을 보내고 학교 홈페이지를 통해 '졸업 가능'이라는 문구를 보았을 때의 당혹감이란.
청년 실업 문제가 여전하지만 유독 내 주변 친구들은 일찍이 취업을 했고, 명확한 목표를 가졌으며, 목표에 맞는 루트가 있는데 나는 취업 계획도, 명확한 목표도 없다. 그저 막연한 꿈을 가지고 오늘 할 수 있는 것, 내게 주어진 것을 하루하루 해나갈 뿐이니까. 나는 연기를 하고, 글을 쓰고, 영상을 만들고, 강연을 나가고, 리포팅을 한다. '이런저런' 일 중에 무엇 하나 비중 있게 하는 게 없기에 배우라고 말하기도, 작가라고 말하기도, 리포터나 선생님이라고 말하기도 애매한 N 잡러. 사람들은 나를 배우라고 부르기도, 작가라고 부르기도, 리포터나 선생님이라 부르기도 한다. 이런 직업들을 일일이 나열할 수도 없으니 앞으로 나는 '대학생'이라는 말 대신 '프리랜서'라는 말로 이런저런 일을 설명하려 할 것이다. 간혹 '무슨 일 하시는데요?'라는 질문이 돌아올 테니 차라리 '백수예요'라고 말하는 게 더 편하려나. 일을 하는 날보다 자기계발을 하거나 쉬는 날이 훨씬 많으니 '백수'로 스스로를 설명하는 것도 아주 틀린 것은 아닌 것 같다.
학생 신분을 벗어던지고 뛰어드는 세상은 또 얼마나 다를까. 날이 밝으면 나는 여느 때처럼 운동을 하고, 책을 읽고, 집밥을 해 먹을 것이다. 명목은 프리랜서, 사실 상 백수나 다름없는 나의 삶은 내일도 다르지 않을 테니까. 소속 없는 일상에 서서히 익숙해지리라 믿을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