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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길 Mar 17. 2022

글쓰기 싫은 날

불완전한 글을 쓴다는 것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매일 하나씩 글을 쓰고자 마음먹었다. 이른 아침 세수도 하기 전 커피를 탄 후 컴퓨터 앞에 앉는다.

일어나자마자 글을 쓰고 책을 읽는 습관을 들이고 싶어서다. 오늘 쓸 글의 소재를 정하고 대략 서문을 작성한 뒤 다른 할일을 하다가 글을 이어쓰는 게 요즘 일상이다.

오늘도 별다를 것 없이 일어나 커피를 타고 컴퓨터 앞에 앉았는데 도무지 글의 서두가 써지질 않았다.

커서가 깜빡이는 빈 화면 앞에 멍하니 앉아 몇분을 보내다가 다시 침대에 누웠고 늦은 오후까지 자다 깨기를 반복하다 무거운 몸을 이끌고 카페로 나왔다.

도무지 글이 써지지 않을 때는 참 당황스럽다. 소재가 없는 것도, 하고싶은 말이 없는 것도 아닌데 아무 말이 떠오르지 않아 오늘 글쓰기는 글렀다 싶었다. 이렇게 억지로 글을 써봐야 마음에 드는 글이 나올 리 없다. 거지같은 글을 쓸 바엔 차라리 글을 쓰지 말자. 이런 생각을 하다가 오늘은 오기로 키보드를 잡았다.


완벽하게 하지 못할 바엔 차라리 하지 않겠다는 나의 방식.

제대로 해내질 못할 바엔 차라리 빨리 손을 떼는 식의 삶.

겁이 많은 나는 대부분 그런 식으로 예, 아니오를 택했다.

일이나 도전에 있어서 뿐 아니라 애정이나 인간 관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였다.


며칠 전 동업자인 J를 울린 일이 있다.

J와서로 다른 업무 방식을 보며 과연 오래 동업을 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다. 이러다 업무는 커녕 좋은 사람 하나를 잃는 건 아닐까. 시간을 낭비하는 건가. 벌써 이런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글러먹었다. 뭐 이런 생각을 하다가 극단적으로 사업을 파기하자는 결론에 이르렀다.

동업을 다시 생각해보자는 내 말에 J는 눈물을 흘렸다.

자신과 방식을 맞춰볼 생각도 하기 전에 관계를 포기부터 하려 했던 게 서운하다고 했다.

당황한 마음에 그를 달래고 집에 오는 길에 곰곰이 생각해보니 서운하다는 말을 듣는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잘할 자신이 없다는 이유로 애써 멀어지려 할 때마다 사람들은 나에게 서운해했다. 노력도 해보기 전에 겁부터 먹고 관계를 포기하려 하는 게 당연히 서운할만 하다.

그런 식을 멀어진 사람들을 생각해보았다. 만약 내가 용기를 내 그들과 더 깊어져봤다면 어땠을까.


넓고 얕은 인간 관계에 익숙한 내게 누군가와 깊어진다는 건 아직 낯설고 두려운 일이지만,

남과 나를 서운하게 하며 무난한 완벽을 추구하기보다 지지고 볶아가며 완벽하지 않은 관계를 유지하는 법을 배워보기로 한다.

머리를 뜯으며 불완전한 글을 완성한 오늘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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