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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길 Mar 23. 2022

편지의 기쁨을 알게 해준 당신께 쓰는 편지

세계의 일부를 내놓는 경험

누군가에게 편지를 부치는 일은 설레면서도 걱정되는 일입니다. 말과 글은 비슷하면서도 성질이 참 다른 것 같아요. 시간과 함께 흘려보내지는 말과 달리 글은 몇번이나 곱씹어 읽을 수 있다는 점에서 더 세세히 정리하고 다듬어보게 된달까요.


상인님이 빌려주신 서간문 형태의 책을 보며 저도 편지를 쓰고싶어졌습니다. 평소에도 편지 주고 받는 일을 좋아해 종종 쓰고는 하는데 생각해보니 예전보다 편지를 쓰는 횟수가 부쩍 줄었더라고요. ‘다음에 전하자’는 미룸, ‘굳이 전하지 않아도 알겠지’하는 합리화, ‘상대가 부담스러우면 어쩌지’하는 걱정같은 것들이 한 데 엉켜 쓰는 일을 더욱 어렵게 합니다.

 

편지 이야기를 하니 누군가에게 마음을 전하는 일에 대해 생각하게 되네요. 마음을 전하는 일에는 참 많은 용기가 필요하죠. 제 마음 깊은 곳엔 언제나 거절에 대한 두려움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용기가 부족하다는 말 대신 ‘표현에 서툴다’는 핑계로 스스로를 포장하며 마음 전달을 피하는 편이었어요. 마음을 전달하는 것은 나 자신의 일부를 보여준다는 것이잖아요. 스스로를 보이기 앞서 늘 걱정이 앞섭니다. 제가 보인 저의 모습을 상대가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지나친 신경이 쓰이거든요. 혹여 저의 일부가 거절당하거나 부정당할까 전전긍긍하다가 상처받을 일을 사전에 예방하는 쪽을 선택했습니다. 십대 때부터 시작된 이 습관은 이십대 중반이 되어도 여전히 이어지고 있네요. 그래도 편지는편하게 마음을 터놓게 되는 수단인 것 같아요. 오글거린다며 피했던 표현들을 조금이나마 부드럽게 쓰게 된다는 점에서요. 원할 때 언제든 쓸 수 있도록 집 책장 한편에는 편지지가 떨어지지 않도록 하고 있어요. 성격이 급해서 하고싶은 일은 당장 해야 하는 편인데, 편지지가 없어서 편지를 쓰지 못하는 건 참 맥빠지는 일이잖아요.


아직 상인님이 빌려주신 책을 다 읽지는 못했어요. 처음부터 책을 읽다가 상인님이 쓰신 부분이 견딜 수 없이 궁금해 뒷부분을 먼저 읽고 있답니다. 책을 쓴다는 건 부담되지만 멋진 일이에요. 여러 차례 책 출간에 참여하셨던 상인님도 책을 쓰는 기쁨과 부담을 동시에 느끼시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책을 통해 누군가의 세계를 만나고 오는 경험은 작게나마 여행을 하는 기분을 줍니다. 그래서 떠나고싶지만 그럴 수 없을 때마다 책을 읽곤 해요. 특히 주위에 있는 누군가와 책과 글을 공유하는 것은 더더욱 즐거워요. 사람의 빙산 일부를 지나 수면 아래 숨겨진 곳까지 마주한다는 것, 그래서 그와 더 가까워지는 듯한 기분을 느낀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설레고 따뜻한 경험입니다. 상인님의 글을 보고 공감하며 상인님과 한 발자국 더 가까워진 기분이 들어 기뻐요. 물론 저만의 설레발일 수도 있겠지만요.


상인님 덕분에 새로운 무언가를 읽고, 쓰면서 앞으로 더 자주 편지를 써야겠다는 다짐이 듭니다.

누군가에게 좋은 여행 경험을 선물해줄 수 있다면 저의 세계 중 일부를 개방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세계와 세계가 만나고 헤어지는 과정을 통해 사람은 더 단단해지는 게 아닐까요? 어쩌면 그게 삶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닌 것 같은 기분도 듭니다. 상인님이 어떤 세계를 만나고, 어떤 세계에 사시는지는 모르겠으나 되도록이면 그 세계들이 의미있고 사랑이 넘치는 곳이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오늘도 무탈하시길 바라며 편지를 마무리해봅니다.


2022. 03. 23.

빛길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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