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그가 알려주고 떠난 것
시간이 지날수록 미화되는 기억이 있는 반면, 시간이 지날수록 미워지는 기억도 있다. 때로는 한 사람과의 기억에 애와 증이 뒤섞여 미화인지, 미움인지 마침표를 찍기 어려운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엄마도 나에게 늘 나쁜 사람은 아니었다. 경양식 돈가스와 동해바다를 좋아하는 취향도 엄마가 알려준 것이다. 그러나 엄마와의 행복한 기억을 모두 모아도 덮어지지 않는 상처는 좀처럼 미화가 어렵다.
군밤 파는 삼촌을 모른 체하던 나, 동생의 미래에 모진 말을 뱉던 나, 보지 않던 시간 동안 서서히 그들을 잊어버린 나 또한 누군가에게는 미운 기억으로 남아있을지도 모르겠다. 상처받아 울어놓고, 기어코 누군가에게 상처 주는 나를 생각하면 그들도 일부러 그런 건 아닐 거라고, 의지와 다르게 흘러간 시간일 거라고, 으르렁대는 마음을 다독일 수 있다. 비록 그들이 온전하게 이해되지는 않더라도.
M과 먹었던 경양식 돈가스도 맛있었고, 함께 봤던 바다도 아름다웠다. 그를 따라 좋아하게 된 것과 보게 된 것도 분명 있다. 하지만 그에게서 보이는 엄마의 모습과, 나의 유년시절을 마주하는 때가 많아질수록, 나는 현실을 부정하다 그를 미워하게 되었다.
주저앉아 떨던 내게 일어나라고 채근하던 엄마, '감히'라는 말을 종종 뱉던 엄마,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이라 말하던 엄마. 나는 꽤 오랜 시간 그것을 믿으려 애썼지만, M과의 마침표를 찍은 이제는 안다.
애쓰지 않아도 사랑하게 되는 관계가 있다는 걸.
우리는 서로에게 꽤 많이 애썼다는 걸.
어쩌면 이건 M에게 받은 가장 큰 선물이자 배움 일지 모르겠다.
어제 쌓인 물건들을 또 한 번 버렸다. 사는 건 별로 없는 듯한데 매번 버릴 물건이 왜 그리 잘 쌓이는지. 지금 내 집처럼 공간이 좁을수록 자주 살피고, 고르고, 버려야 한다.
하나의 관계가 사그라질 때마다 삶이 지겨워질 것만 같은데, 하루에 몇 번은 돈가스나 바다 같은 기쁨을 발견한다. 또 하나 작은 기대를 하고, 만남을 갖고, 여전히 사랑을 꿈꾸는 걸 보면 아직도 나는 나를 잘 모르는 것 같다.
속이 좁은 나는 앞으로도 때때로 그들을 미워하겠지만, 대체적으로는 그들이 안녕하고, 건강하기를, 각자의 사랑과 행복을 찾기를 진심으로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