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공황장애 환자입니다.
꽃이 있었다.
지구는 제 몸 썩을 대로 썩어,
온 세상엔 암흑뿐이었고, 아무리 밝아봤자
썩은 물빛이 최선이었다.
지구는 최선을 다했다.
인류에게 몇 번 경고를 했지만
자신을 막 다루는 인간들에게 이제 더할 것도 없어
자신이 죽는 순간을 기다렸다.
그렇게 썩어빠져서
더 이상 어떤 것이 살 수 없을 정도로 몸 상한 지구에
웬 꽃 한 송이가 있었다.
그 꽃은 울타리 안에 있었다.
아무도 건들지 못하게.
그중 살아남은 인간이,
유일하게 밝은 꽃 하나 밟아 죽여버릴까 겁나,
어느 착한 인간 한 명이 울타리를 만들어놓았다.
앞에는 소심한 팻말이 있었다.
"밟지 마시오!"
꽃에 물을 주는 사람 한 명 없었다.
남은 건 썩은 물 뿐이라 꽃한테 줄 자비 따위 없었다.
꽃은 세상 모든 것들이 잠들었을 때,
뿌리를 뽑고 제 발로 나왔다.
숨 돌리며 주변에 고인 물을 간신히 빨아들였다.
울타리에서 매일 같은 광경만 보니
자신도 썩을 것 같았는지 연약한 뿌리로 걸으며
세상을 돌아다녔다.
그때 웬 부지런한 인간이 꽃이 걸어 다니는 것을 봤다.
"너도 걸을 수 있구나!"
세상에 남은 전기로 여전히 전자기기 따위나 만지며
제 몸 죽이고 있었던 인간은 유일한 꽃을 찍어댔다.
카메라에서 난 불빛은 세상에서 가장 밝은 색이었다.
꽃은 카메라를 향해 달려들었다.
인간의 고함소리와 함께 세상이 깨어나고,
남은 인간들이 소리를 향해 달려왔다.
소리마저도 썩어 고요했던 세상은 몇 년 전,
썩기 이전과 같이 지구는 소란스러웠다.
꽃은 괴로워 달려오는 인간에게 다시 달려갔다.
달려가서 인간에게 제 발로 밟혔다.
ㅡ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며
시끄러운 와중에 꽃이 밟아 죽는소리를 듣고서
착한 인간은 멀리서도 뛰어왔다.
그도 그들과 같이
괴성을 지르며 죽은 꽃을 찍어댔다.
카메라로.